슈베르트가 보낸 편지
2027. 12. 서울-빈-런던
슈베르트가 건네준 상자에서 나온 곡은 연주 때까지 극비리에 부쳐야 하므로 모든 게 조심스럽게 진행되었다. 일단 연주자 섭외가 급했는데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보통 이름있는 유명 연주자들은 5년 이상의 연주 스케줄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곡을 연주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0순위의 연주자는 슈베르트 스페셜리스트인 에드워드 하딩이였다. 그러나 1년밖에 남지 않은 시간을 생각하면 거의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일단 접촉해 보기로 했고, 소속사에 정중한 제안 메일을 보내 놓았다. 또 다른 연주자 섭외는 앞이 깜깜할 따름이었다. 너무 생소했기 때문이었는데 아르페지오네 악기와 연주자를 찾기 위해서는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 민철과 소라는 유럽 출장길에 올랐다.
한편, 서울에 남아 있던 태유에게 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얼마 전 하딩의 소속사에 하딩의 연주회 참가 여부를 타진했던 메일의 답장이었다.
“당신들의 제안 메일은 잘 보았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딩은 그 연주회에 참가하기 힘들 듯합니다. 이미 하딩은 향후 10년간의 연주 일정이 예약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참가하고 싶은 연주회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입니다. 당신들의 연주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메일은 읽은 태유는 깊은 시름에 빠졌다. 우리가 원하는 0순위의 연주자 섭외는 이제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올인 하느라 차선의 연주자는 생각도 안 해 놓았는데...
한편, 빈에서는 민철과 소라가 슈테판 회장의 도움으로 아르페지오네 연주자 섭외에 어느 정도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이제 형식적인 계약만 남은 상태까지 진전되었다. 고민하던 한 가지 숙제를 해결한 셈이다.
민철 : 소라 씨~ 서울에 연락을 해보면 어떨까? 우리 일은 이제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으니까, 하딩의 섭외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체크해 보고 우리가 다른 할 일이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소라 : 네 알겠습니다. 사무장님에게 바로 전화해 보겠습니다.
소라는 태유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어 하딩의 섭외에 관해 물어 보고는 이내 실망하고 만다.
소라 : 회장님... 어떡하죠? 사실 며칠 전에 하딩의 소속사에서 답 메일이 왔다고 하네요. 근데 회장님이 너무 걱정하실까 봐 이런저런 궁리를 세우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연락을 못 했다고 합니다.
민철 : 그랬군요. 어째 연락이 올 때가 된듯한데 연락이 없어 좀 느낌이 좋지 않았었는데...
민철과 소라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하딩의 소속사를 직접 찾아가 설득이라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는 태유에게 하딩의 소속사가 있는 영국의 주소를 받아 들고 바로 런던으로 이동했다. 하딩의 소속사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유명한 아티스트를 다수 관리하는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하딩의 담당자는 바로 만날 수 있었다.
민철 : 담당자님 안녕하세요. 전 슈베르티아데 코리아의 호민철 회장입니다. 얼마 전 언론을 통해 들으시고 또 저희의 제안 메일을 보셨으니 더 자세한 설명은 생락하고 우리가 왜 하딩을 섭외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에 대해 보충 설명을 하고자 이곳까지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담당자 : ...
민철 : 사실 우리가 이 미션을 추진하면서 테너 한 명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하딩 외에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또 하딩 말고는 그 누구도 이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딩은 진정 이 시대를 대표하는 슈베르트 스페셜리스트로 우리 연주회에 꼭 참가해 주셔야 합니다. 전 몇 년 전 하딩이 쓴 ‘겨울나그네’ 책을 읽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하딩이 참여하는 슈베르트 음악회를 기획해 보고 싶은 생각을 가졌는데 이번이 그 기회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담당자 : 네 당신들의 제안 메일을 보고 무척 놀랐고, 또 그 연주회에 동참하고 싶다는 마음 간절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미안합니다.
소라 : 네 이해합니다. 당신들의 상황 백번 천번 이해합니다. 갑자기 여기까지 찾아와 떼쓰는 우리도 면목은 없습니다. 그러나 슈베르트의 미션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한 저희의 간절함 다시 한번 헤아려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담당자 : 미안합니다.
소라 : 그럼 담당자님 저희에게 잠깐 시간을 주십시오. 저희끼리 잠시 상의 좀 할 게 있어서요.
담당자 : 네 그러세요. 전 괜찮습니다.
민철과 소라는 소속사 앞 커피숍에 마주 앉아 대책을 논의한다.
소라 : 회장님 이제 마지막 방법으로 하딩에게 친필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요? 슈베르트가 미래의 누군가에게 간절하게 편지를 썼듯이... 우리도 하딩에게 간절한 편지를요...
민철 : 친필 편지라...
소라 : 네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친필 편지를 쓰고 그 편지를 하딩에게 전해달라고 담당자에게 부탁해 보려고요. 이래 봬도 제가 글 꽤나 쓰거든요. 모르셨죠?
소라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영어로 장문의 편지를 쓴다. 꽤 호소력이 있어 보이는 편지다. 민철은 편지를 쓰고 있는 소라를 바라보며 한 가닥 희망의 불씨를 살려본다. 잠시 후 다시 소속사를 방문해 담당자를 만난다.
소라 : 담당자님 미안하지만, 이 편지를 하딩에게 직접 전해 줄 수 있을까요?
담당자 : 편지를요? (잠시 스케줄 체크를 한 담당자는) 네 알겠습니다. 이번 주에 사무실에서 하딩과 마침 미팅이 있는데 그때 전해 드리겠습니다.
민철, 소라 : 네 감사합니다.
빈과 런던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민철과 소라는, 하딩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은 어쩌면 무모한 집착에 가까웠다. 언제 도착할지조차 모를 답장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기대를 품고 있는 마음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이제는 차선의 대책을 세울 때가 된 것이다.
소라 : 에휴. 하딩은 무심도 하지... 이러다가 눈 빠지겠어요. 이젠 미안하다는 답장이라도 받고 미련을 버리고 싶네요.
민철 : 그러게요. 이제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차선의 테너를 리스트업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태유 : 네 그럼, 며칠만 기다려보고 회의하시죠. 제가 차선책으로 섭외하면 좋을 테너 몇 명 조사해 놓았습니다.
며칠 후, 민철은 출근하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하딩을 포기하고 다른 테너 섭외 미팅을 하기로 한 날이라는걸... 사무실에 출근해 회의를 막 시작하려는데 태유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유 : 왔어요. 드디어 하딩의 답장 메일이 왔습니다.
소라 : 진짜요? 궁금해 죽겠어요. 빨리 열어보세요.
태유 : 전 떨려서 메일을 열어 볼 수가 없습니다. 자 두 분 이리로 오셔서 같이 보세요.
셋은 태유의 자리로 모여 숨죽이며 메일을 열어 천천히 읽어 나갔다. 하딩이 직접 답장한 메일이었다.
안녕하세요, 하딩입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제안 메일과 친필 편지, 잘 받았습니다.
그 편지를 읽으며 여러분의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저 역시 슈베르트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깊이 존경하는 음악가입니다.
이미 예약된 연주장 측에 여러분의 뜻을 정중히 전달했고,
다행히 일정 조율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저도 이 숭고한 미션에 함께하고자 합니다.
슈베르트의 새로 발견된 곡을 초연하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소중한 제안에 감사드리며,
연주가 더욱 완성도 있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 리허설 방문 일정을 넉넉히 잡겠습니다.
그날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 에드워드 하딩 드림 –
PS : 제가 초견 연주도 가능하지만,
더 나은 연주를 위해서는
악보를 미리 받아 충분히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재단의 배려를 기다리겠습니다.
메일을 다 읽고 난 셋은 환호를 지르며 뛸 듯이 기뻐했다.
소라 : 아 하딩이 우리의 진심에 응답해 주었네요. 연주회가 성공적으로 잘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민철 : 소라 씨의 친필 편지가 힘을 발휘한 거 같아요. 내가 편지 쓰는 내내 옆에서 지켜봤지만, 그런 편지를 받고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태유 : 모두 수고 하셨습니다. 이제 진정 맘이 놓입니다.
민철 : 태유 씨는 하딩에게 감사하다고 연락하고, 악보의 보안을 잘 지켜달라고 당부해 주세요. 악보 파일에 보안을 걸어 빨리 보내 주세요.
태유 :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