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가 보낸 편지
1828. 9. 빈
빈 외곽 슈파운의 저택 응접실에 조용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슈베르트의 오래된 친구들, 그리고 그가 가장 신뢰하는 동료 예술가들이 모여 있었다. 이번 슈베르티아데는 대규모 공개 연주가 아닌, 친밀한 예술적 공유의 자리였다. 초대장도 없고, 악평을 쓰는 신문기자도 없었다. 대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만이 있었다. 슈베르트의 눈빛 어딘가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의 몸은 약해졌지만, 음악은 그 어느 때보다 깊고 무거웠다.
이날 연주의 중심은 ‘겨울나그네(D.911)’ 1부 12편이었다. 뮐러의 시에서 가사로 채택된 이 작품은 두 번의 시기를 나눠 작곡된 연가곡이다. 1부 12곡은 1827년 2월, 2부는 그해 가을에 완성되었고, 오늘, 슈파운의 거실에서 비로소 1부 전곡이 한자리에서 울려 퍼진다. 창밖에는 9월의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았지만, 거실 안은 정적과 쓸쓸함이 겨울처럼 감돌고 있었다.
슈베르트는 피아노 앞에 앉아 직접 반주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보리수’, ‘봄의 꿈’, ‘눈물의 태풍 속에서’, ‘거울 속의 환상’… 곡 하나하나가 끝날 때마다 거실엔 숨조차 쉬기 어려운 정적이 흘렀다. 그는 말없이 건반 위에 손을 얹었고, 목소리는 떨림 없이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청중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고, 슈베르트는 고개를 숙인 채 손끝으로 마지막 음의 여운을 눌렀다. 그 침묵은 외면이 아니라, 경외였다. 음악은 슬픔과 고독을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애도나 감상에 머무르지 않은, 날 선 사유였다.
슈베르트 : 너희들도 이 곡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연주가 끝난 뒤, 슈베르트는 쓸쓸하게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단지 슬퍼서가 아니었다. 그저 곡의 무게가, 청중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요제프 폰 슈파운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그날 밤, 슈베르트가 ‘겨울나그네’를 불러주었을 때,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분위기는 무거웠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슈베르트는 우리 반응을 오해하며 중얼거렸다. ‘이 곡들이 너희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나도 그럴 줄 알았어.’”
바우에른펠트 : 프란츠, 이건 우리가 감당하기엔… 아직 너무 깊어.
이날 연주된 또 다른 곡들도 만만치 않았다. 슈베르트는 이 시기 피아노 후기 3대 소나타를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
피아노 소나타 C단조, D.958
피아노 소나타 A장조, D.959
피아노 소나타 B♭장조, D.960
이 세 곡은 슈베르트의 내면적 사유가 고도로 정제된 상태로 녹아 있는 작품들이다. 베토벤의 무게와 모차르트의 선율, 그리고 슈베르트 고유의 서정성과 구조적 실험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 친구들은 그 곡들 속에서 무언가 작별의 기운을 감지했다. 그것은 말로 하기 어려운 예감이었고, 음악은 이미 이별을 말하고 있었다. 음악은 과거를 향한 애도이자 미래에 대한 유언처럼 들렸다.
슈베르트 : 지금 내가 작곡하고 있는 교향곡은 두 개야. 하나는 베토벤 선생의 뒤를 잇는… B단조(8번 교향곡). 그리고 또 하나는… 낭만주의의 시작이 될 D장조(10번 교향곡)야.
친구들이 놀란 눈빛을 보이자
슈베르트 : 놀랐지? 하지만 그건 내 안에 있는 서로 다른 두 세계야. 하나는 전통의 계승, 또 하나는 시작되지 않은 미래.
슈베르트는 말한 그대로, 완성을 거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전통의 끝과 미래의 문턱 사이에서, 오직 자신만의 음악으로 마지막 불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그 밤, 모두가 잠시 말을 잃었고 그 침묵은 어쩌면, 이 시대를 벗어나려는 한 영혼을 배웅하는 조용한 이별곡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의 연주는 기록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은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침묵 속에서, 슈베르트는 가장 위대한 고백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