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가 보낸 편지
1828. 10. 빈
1828년의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들어서면서, 빈의 날씨는 서서히 쌀쌀해지고 있었다. 슈베르트의 건강도 그 계절의 변화처럼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마치 작은 모래성이 조용히 허물어지듯이.
슈베르트의 건강은 들쭉날쭉했다. 어떤 날은 평온하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피아노 앞에 앉을 수 있었지만, 또 어떤 날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어려웠다. 피로와 오한, 그리고 위장의 고통이 번갈아가며 습격해 왔고, 하루하루가 예측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오히려 그 불안정한 육체 위에 자신의 혼을 실어 불타오르듯 작곡에 몰두했다.
슈베르트는 지금 쇼버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슈베르트는 친구들의 도움 없이 홀로 생활하기에는 너무 쇠약해진 상태였다. 그러나 그 방 안에서 슈베르트의 영혼은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슈베르트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B단조(8번) 교향곡, 자신의 일생이 응축된 최종 걸작을 매만지고 있었다.
슈베르트 : 이 교향곡… 이 B단조(8번) 교향곡은 내 음악의 전부야. 내가 걸어온 길, 내가 사랑한 화성, 내가 느낀 고독… 모두가 이 곡에 있어. 베토벤 선생의 교향곡을 계승하는, 아니… 어쩌면 그것을 넘어설 수도 있어.
그 말에는 희망이 담겨 있었지만, 동시에 애틋한 체념이 배어 있었다
쇼버 : 프란츠, 그렇게 말하니 듣고 싶어 미치겠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네가 피아노로 들려줘.
슈베르트 : (힘겹게 웃으며) 과연 네가 이 곡의 완성을 듣게 될까… 아니, 내가 이 곡을 끝내긴 할 수 있을까.
슈베르트의 목소리에는 담담한 체념이 담겨 있었다. 죽음이 멀지 않다는 예감은 분명했다. 슈베르트는 그 직감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슈베르트의 창작은 죽음과의 경주였는지도 모른다.
슈베르트는 동시에 또 다른 교향곡, D장조(10번)의 스케치를 시작했다. 그 곡은 1826년에 작곡한 9번 ‘그레이트’가 공연 거부를 당한 이후, 다시 꺼내든 슈베르트의 반격이었다. 이 새로운 D장조는 단순한 화려함이나 대편성의 위압감을 넘어서, 인간 내면의 깊이를 들여다보는 음악이 될 것이었다. 후기 피아노 소나타들에서 발견되는 명상적인 사유, 낭만주의 초기에 등장한 표제음악적 감성, 그리고 고전의 엄격한 형식을 고스란히 녹여내는 슈베르트의 실험정신이 모두 깃든 작품이었다.
슈베르트는 이 교향곡이 낭만주의의 서막을 여는 곡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악보를 그리다 말고 고통에 쓰러지는 날이 많아졌고, 도시엔 전염병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베르트는 쓰러지지 않았다.
슈베르트 :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것은 음악이 아니라… 시간과 기억의 조각이야. 언젠가 누군가 이 조각들을 읽어낼 수 있다면, 난 그걸로 충분해.
슈베르트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결코 패배하지 않고 있었다. 슈베르트의 펜 끝은 여전히 살아 있었고, 슈베르트가 쓰는 악보 한 줄 한 줄은 생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그 가을의 빈. 창밖으로는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고, 방 안에는 한 사내의 숨결이, 그의 손끝에서 흔들리는 잉크처럼 섬세하게 번져갔다. 마지막 선율은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슈베르트는 그렇게,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가장 찬란한 음악을 남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