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가 보낸 편지
2028. 12. 빈
슈베르트의 8번 교향곡이 완전한 형태로 초연된 직후, 전 세계 언론은 일제히 대서특필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음악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초연된 그 음악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냉소적이던 일부 언론과 단체들도 침묵을 거두고 감탄으로 돌아섰다. 슈베르트의 편지와 악보를 의심하던 시선들조차 그 실체 앞에 무너졌다. 초빙 연주 요청이 빗발쳤고, 음반 발매를 위한 제안도 쏟아졌다.
소라 : 아니 연주회 끝나면 좀 한가해질 것을 기대했는데 어떻게 더 바빠졌어요.
민철 : 그러게... 슈베르트 선생이 우리를 아직 놓아주지 않나 봐요. 참 난 빈에 출장을 다녀와야겠어요. 아직 미션이 하나 남아 있기도 하고, 또 슈테판 회장께 연주회 성과를 설명도 해드려야 하고...
태유 : 아직도 남은 일이 있다고요?
민철 : 음, 그렇죠. 아직 슈베르트가 맡긴 마지막 숙제가 하나 남아 있어요. 어렵진 않지만… 의미 있는 일입니다.
소라 : 네 알겠습니다. 잘 다녀오세요. 여기 서울은 우리에게 맡겨 두시고요.
민철은 빈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줄곧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안주머니에서 오래된 봉투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악보를 처음 개봉했을 때, 함께 들어 있던 편지였다. 봉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악보가 무사히 연주되었다면, 이 편지를 베토벤 선생님의 묘 앞에서 직접 읽어 주세요.” 그날, 민철은 편지를 곧장 품속에 넣고 간직해 왔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그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
비엔나 중앙묘지.
* 베토벤의 유해는 원래 빈의 베링묘지에 안장되었지만 1888년, 오스트리아 당국은 국가적 예우의 일환으로 그의 유해를 빈 중앙묘지의 음악가 묘역으로 이장했다. 이때 슈베르트도 함께 이장되며, 두 사람은 나란히 중앙묘지에 잠들어 있다.
하얀 눈이 희미하게 내리는 겨울의 빈. 그곳에, 민철은 조용히 서 있었다. 앞에 놓인 묘석에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
"Ludwig van Beethoven"
민철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리고 한참을 서 있다가 인사를 건넸다.
민철 : 베토벤 선생님. 인사가 많이 늦었습니다. 저는 슈베르티아데 코리아의 호민철입니다.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슈베르트 선생의 부탁을 전하러 왔습니다. 그는 당신의 음악에 무한한 경외를 품었습니다. 당신의 9번 ‘합창’을 듣고 충격을 받았고, 언젠가 당신의 길을 이어, 그 너머로 향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방식으로 그 답을 찾아냈습니다. 삶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곡을 완성한 슈베르트는 이 음악을 당신께 바치고자 했습니다. 그 뜻을 담아, 지금 이 편지를 선생님의 앞에서 낭독하겠습니다.
민철은 봉투를 꺼내 들고 조심스럽게 편지를 펼쳐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지만, 그 안엔 200백 년의 시간을 관통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슈베르트가 베토벤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
존경하는 베토벤 선생님께,
빈, 1828년 11월
이미 먼 여정으로 떠나신 선생님 앞에 감히 이 글을 올립니다.
저는 평생 선생님의 음악에서 길을 찾고, 빛을 받았습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 울리는 선생님의 선율과 정신은
제가 펜을 잡을 때마다 저를 이끌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끝내 다다를 수 없는 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산을 바라보며 오늘까지 작고 느린 걸음을 이어왔습니다.
이번에 제가 남기고 떠나는 교향곡을
미래의 시간이 이어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비록 이 작은 시도가 선생님 앞에 한 송이 들꽃에 불과하더라도
저의 진심과 감사, 그리고 사랑을 담아 드리고자 합니다.
부디 저의 음악이 선생님께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먼 미래 어느 누군가가 이 곡을 연주해 세상에 울려줄 때,
그 소리가 선생님께도 전해지기를 소망합니다.
저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선생님의 한낱 작은 후배로서
영원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편지를 올립니다.
부디 제 교향곡의 소리와 마음이
선생님 앞에 닿아 울릴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곡을 감히 선생님께 헌정합니다.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잠시 묘지에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겨울의 공기는 차갑지만, 민철의 마음은 어딘가 따뜻했다. 단 한 번의 스침으로 시작된 둘의 인연이, 200년 만에 이곳에서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