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 美완성으로 연주되다

슈베르트가 보낸 편지

by 황선형

2028. 11. 19. 서울


프란츠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200년이 되는 날. 오늘, 그의 ‘미완성’ 교향곡이 마침내 완성된 모습으로 세상에 울려 퍼진다. 2028년 한 해는 슈베르트를 기리는 다양한 행사로 가득했지만, 오늘 이 무대는 그 모든 여정의 마침표가 될 것이다. 음악사에 길이 남을 이 날, 우리는 한 작곡가가 남긴 ‘의도된 미완성’을 통해, 음악이라는 예술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연주회는 여느 날과는 다르게 기획되었다. 보통의 무대라면 서곡과 협주곡, 그리고 교향곡이 이어지는 전형적인 구성이겠지만, 오늘은 오직 단 한 곡. 슈베르트 교향곡 8번, 완성된 전 악장이 전부다. 이 한 곡이 가진 상징성과 무게가, 그 어떤 곁가지도 허락하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연주회가 임박한 11월이 되자, 전 세계 언론은 앞다투어 이 초연에 대한 추측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추측은 추측일 뿐, 어느 언론도 이 곡이 어떤 모습일지 정확히 짚어내지는 못했다. 슈베르트가 남긴 몇 마디 단서, 그리고 그의 사후 200년 동안 축적된 해석들...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오늘 밤 펼쳐진다.


공연장은 이미 인산인해다. 빈 좌석은 하나도 없다. 객석의 숨소리조차 조심스럽다. 긴장과 기대가 뒤섞인 공기가 장내를 감싼다.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이 역사적인 무대를 실시간 중계로 지켜보고 있다. 말 그대로, 음악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가 지금 이 순간 쓰이고 있다. 무대에 조명이 켜지고, 단원들이 천천히 입장한다. 그리고 마침내 남민수 지휘자가 무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기대와 숙연함이 뒤섞인 눈빛들이, 일제히 그를 향한다. 연주회가 시작된다.


육중한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저음으로 1악장이 시작되었다. 너무도 익숙한 음이다. 얼마나 많이 듣던 곡인가. 연주는 거침없이 흘러가며 2악장까지 마무리되었다. 어두운 색채와 빛을 절묘히 조화한 연주가 인상적이고, 절제된 표현과 긴장감이 돋보인다. 결코 빈 필이나 베를린 필에 뒤지지 않는 연주다. 그리고 드디어… 3악장,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낯선 세계가 시작된다. 미지의 악장이 시작되었다. 불쑥 튀어나오는 음형, 속삭이듯 이어지는 피치카토와 춤추는 듯한 묘한 리듬이 연주장을 가득 메운다. 익숙한 멜로디는 사라지고, 대신 깨어날 듯 사라지는 그림자들의 왈츠가 시작된다. 음악은 계속해서 불안정한 장단에 휘청인다. 어디론가 향하고는 있지만 도착하지 않는, 그런 길을 걷는 기분이다. 모두가 숨죽였다. 슈베르트의 이 마지막 유희는 과연 희극인가, 비극인가. 누군가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누군가는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듯 한숨을 쉰다. 이윽고 3악장의 연주가 끝났다. 정적, 숨이 멎는 듯한 침묵이 연주장을 덮는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방금 들은 것이 슈베르트의 손끝에서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든 감정이 압도되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4악장이 시작될 것이다. 슈베르트가 끝내 세상에 남기고자 했던, 마지막 이야기.


그런데 갑자기 지휘자가 퇴장한다. 청중은 당황한다. 다른 연주자를 데리고 들어오려나... 예상은 빗나갔다. 잠시 후 단원들도 모두 일어나 퇴장한다. 무대는 순식간에 텅 비었다. 그리고 모든 조명이 꺼졌다. 캄캄한 정적, 시간이 멈춘 듯한 어둠 속에서, 관객은 혼란과 기대 사이 어딘가에서 숨을 죽인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정적은 길게 이어졌다. 그러다 무대 정중앙, 단 하나의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그 조명 아래에는 키가 큰 남자가 악보를 들고 서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이 시대의 진정한 슈베르트 스페셜리스트인 에드워드 하딩이었다. 아 하딩이 저기에 서 있다니... 또 정적이 흐른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리고 잠시 후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아련한 소리가 들려온다. 아 이건 아르페지오네 소리다. 슈베르트가 이 악기를 위해 쓴 아르페지오네 소나타가 있어 우리에겐 익숙한 악기 이름이지만 소리를 들어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무대 뒤쪽,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아르페지오네가 연주되고 있다. 공연장 양쪽 스크린에 그 모습이 투사된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리고 애틋하게. 아르페지오네의 음색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온 어떤 메시지처럼, 무대 위 하딩의 침묵과 겹쳐지며 관객의 가슴 깊은 곳을 울린다. 아득한 미지의 소리다.


하딩이 조명을 받은 무대 중앙에서 천천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무대 뒤편, 희미한 어둠 속에서 아르페지오네가 잔잔하게 선율을 깔고 있었다. 그 소리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어딘가로 끌려가는 듯한 낯설지만 익숙한 울림이었다. 곧 하딩의 맑은 테너가 선율 위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말러의 2번 교향곡 4악장을 떠올리게도 했지만, 분명 그와는 다른 세계였다. 화려함이나 장엄함이 아닌, 끝없는 내면의 고독과 침묵에서 길어올린 소리. 그것은 슈베르트가 삶의 끝자락에서 바라본 세계, 그 섬세하고도 투명한 절망의 언어였다.


양쪽 스크린에는 노랫말이 자막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인간의 고독, 죽음의 문턱, 그리고 방황’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감정들이 조용히 객석에 내려앉았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고, 누구도 숨을 깊이 쉬지 않았다. 오직 한 사람만의 노래, 그리고 사라져 가는 선율만이 공연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밤의 끝에서


1.

서늘한 바람이 창을 두드린다

잠든 나뭇잎이 꿈결처럼 흔들린다

어둠은 나를 감싸 안고

조용히 속삭인다,

“이제 그만 쉬어도 좋아.”


2.

들리지 않는 이름을 부르며

나는 오래된 그림자 속을 걷는다

누구도 기다리지 않지만

마음 깊은 곳엔

아직 따뜻한 불빛 하나 있다


3.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말없이 나를 지나갔을 뿐

그대의 손길은 바람이 되어

내 어깨 위에 머물고

다시 떠나지 않았다


4.

죽음은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

다만 내 옆에 앉아

창밖의 별을 함께 바라볼 뿐

그 눈빛은 따뜻했고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5.

새벽이 올 때 나는 노래하리

잃어버린 것이 아닌,

품었던 모든 것들을 위해

고요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시 한 번, 살아 있음을 느끼리


연주는 파도처럼 정서의 흐름을 타고 이어졌다. 잠에서 깨어나는 듯한 서늘한 시작, 세상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인 듯한 깊은 고요, 삶의 이면을 받아들이는 수용, 그 안에서 피어나는 위안, 그리고 마침내, 잿더미 속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부활의 감정.


하딩의 노래는 그 정서의 심연을 관통하며 한 걸음씩 우리를 안쪽으로 이끈다. 무대에는 오직 그 한 사람뿐. 그러나 그의 노래 안에는 인간의 영혼, 시간의 흐름, 존재의 질문이 다 담겨 있다. 7분 남짓 이어진 연주는 어느 한순간도 방황하지 않고 명징하게 가슴을 울렸다. 음악은 마침내 페이드아웃처럼 잦아들었고, 그 끝자락에는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무대의 조명이 꺼지고, 숨소리조차 삼켜진 듯한 정적이 15초쯤 이어졌다. 마치 그 침묵마저 음악의 연장이기라도 한 듯, 관객 모두는 눈을 감고 여운을 음미했다.


그리고 마침내, 무대 조명이 환하게 켜지고 남민수 지휘자가 아르페지오네 연주자 브렌트와 함께 무대로 돌아왔다. 세 사람은 손을 맞잡고 인사를 올렸다. 그 순간, 마침내 참았던 감정이 터진 듯 객석을 뒤흔드는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오래도록 이어진 기립 박수 속에서, 우리는 슈베르트가 보내온 편지를 마음으로 읽었다.


이렇게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8번은 마침내 완성된 형태로 200년의 세월을 거슬러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단순한 복원이 아닌, 너무나도 극적이고 감동적인 방식으로. 무대 위에는 오직 하나의 목소리, 그리고 무대 뒤편에서 은은히 울려오는 아르페지오네 선율... 그것이 전부였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그 위대한 9번 ‘합창’을 듣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 기악 음악의 경계를 넘어선 베토벤의 시도... 교향곡에 인간의 목소리를, 철학을, 시를 담는 일은 그 자체로 ‘형식의 반역’이었다. 슈베르트는 그런 베토벤의 파격을 마음 깊이 존경했고, 자신도 그 뒤를 잇는 새로운 언어를 교향곡 속에 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합창이라는 절정의 혁신에 맞서는 또 다른 파격은 어디에 존재할 수 있을까?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베토벤이 교향곡의 문을 ‘인간의 목소리’로 열었다면, 슈베르트는 그 뒤를 이어 어떤 문을 열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을 그는 죽기 전까지 찾으려 했다. 삶의 끝에서, 병상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의 실험을 시도한 이유는 아마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완성은 단지 악장을 다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음악의 미래를 정의하는 일이었으니까.


슈베르트는 1827년, 베토벤의 죽음을 목도한 후 "겨울나그네"를 작곡하며 인간 본연의 고독과 죽음, 존재의 덧없음에 대해 깊이 성찰했다. 그 내면의 사유는 고스란히 8번 교향곡의 4악장으로 투영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어떤 작곡가도 이토록 대담한 형식의 혁신을 보여준 이는 없었다. 낭만주의 시대는 다양한 실험과 진보로 가득했지만, 슈베르트가 마지막 악장에서 보여준 ‘형식의 해체와 재창조’는 오직 그만이 이룰 수 있었던 경지였다. 교향곡의 무대에 단 한 명의 성악가가 서고, 무대 뒤편에서 희미하게 울려오는 아르페지오네의 반주... 이 상상조차 어려운 구조 속에서 청자는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 고독과 위안의 경계를 오가게 된다. 들릴 듯 말 듯 아득한 소리와 함께 홀로 노래하는 한 사람의 목소리. 그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아~ 이것이야말로, 슈베르트다.


이전 21화21. 슈베르트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