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가 보낸 편지
2027. 6. 빈
이번 오스트리아 투어는 슈베르티아데 영아티스트 선발전에서 수상한 2명의 아티스트(성악과 기악 각 1명)에게 주어진 부상의 일환으로 마련되었다. 두 아티스트는 슈베르트의 고향 빈을 방문해 그의 음악적 발자취와 예술적 유산을 직접 체험하며 깊이 있는 예술적 자극을 받을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투어에는 선발된 영아티스트 2명 외에 슈베르티아데 코리아 임원 3명(민철, 태유, 소라)이 동행하여 총 5명이 참가했다.
빈에 도착한 일행은 슈테판 회장의 환영을 받고는 바로 호텔에 짐을 풀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본격적인 투어 일정을 시작했다. 첫 방문지는 빈 9구의 한적한 골목 안, 슈베르트의 생가. 좁은 복도를 지나 들어선 공간에는 슈베르트가 직접 쳤던 피아노, 자필 악보, 빛바랜 편지들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아티스트들은 “이 조그마한 방에서 거장의 첫 음표가 시작됐구나” 하며 한참을 서 있었다.
저녁에는 오래된 살롱에서 열린 ‘슈베르티아데 음악회’에 참석했다. 프로그램은 슈베르트의 가곡으로 시작해, 피아노 소나타, 마지막엔 현악4중주 '죽음과 소녀'가 흐르며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슈베르트 초상화 아래서 연주되는 음악은, 그 자체로 헌정이었다.
다음 날은 슈베르트 뮤지엄을 찾았다. 클림트의 ‘피아노를 치는 슈베르트’와 에곤 쉴레의 ‘죽음과 소녀’가 전시되어 있었고, 작곡가의 일기와 편지, 그리고 당대 예술가들과 주고받은 서한들이 좁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민철이 일일 도슨트로 나섰다. 아티스트들은 슈베르트라는 음악가를 조금 더 가깝게 이해하게 됐다.
이후 벨베데레 궁에서 ‘키스’를 감상하고, 자허 카페에서 전통 초콜릿 케이크를 맛보며 19세기 빈을 음미했다. 성 슈테판 대성당과 중앙묘지를 돌며, 슈베르트와 동시대를 산 예술가들의 흔적을 따라갔다.
빈에서의 즐거운 투어를 마치고 마지막 날 저녁에 슈테판 회장이 만찬을 열어주었다. 만찬에는 우리 일행과 슈테판 회장, 슈베르티아데 오스트리아 재단의 그라미트 사무장이 함께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즐거운 시간이 지나가고 만찬이 거의 끝날 즈음 슈테판 회장이 민철에게 상의할 일이 있다며 따로 보기를 청하였다.
슈테판 : 민철~ 난 오늘 자네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고 또 부탁하려고 하네.
민철 : 저에게요…
슈테판 : 맞네. 오늘 자네에게 매우 의미 있는 제안을 하려 하네. 그라미트 사무장도 잘 들어주게. 사실 난 200년 전에 슈베르트가 보낸 편지와 악보 봉투를 갖고 있네.
민철 : (깜작 놀라며) 네? 슈베르트의 편지와 악보 봉투를 갖고 계신다고요? 무슨 말씀이신지 도무지…
슈테판 : 사실 내 고조부는 슈베르트의 절친이셨네. 슈베르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내 고조부에게 자그마한 상자를 하나 건넸다고 하네. 그 안에는 한 장의 편지와 악보 봉투가 있었고, 슈베르트는 그 편지를 꼭 읽어보라고 당부했다지. 고조부께서는 슈베르트의 유지를 가슴 깊이 새기고, 상자를 자식에게 전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네. "이 상자는 후손에게 전해져야 하니 잘 간직하게.” 그렇게 상자는 내 증조부, 조부, 아버지를 거쳐 지금 나에게로 왔다네. 그리고 지금, 이 상자가 바로… 그 상자라네.
민철 : 아 네 그러셨군요. 근데 이 상자엔 어떤 편지와 악보 봉투가 들어 있길래…
슈테판 : (상자에서 편지봉투를 꺼내며) 이 편지가 슈베르트가 200년 후의 그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라네.
민철 :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슈테판 : 사실 나는 이 편지를 오래전에 보았네. 그리고 슈베르트 사후 200주년에 이 편지에 쓰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그라미트 사무장과 함께 준비해 오고 있었지.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요즘 내 건강이 좋지 않아 미션을 수행할 자신이 없어졌네. 그래서 슈베르트의 말처럼 미션을 수행할 다른 적임자를 찾던 중, 자네가 최고의 적임자라고 생각되어 오늘 이렇게 제안하네. 민철, 자네가 슈베르트의 미션을 수행해 주게.
민철 : (엄청나게 놀라며) 제가요?
그라미트 : 회장님 그건 안 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민철 회장이 적임자라 해도 슈베르트와 한국의 서울은 연결도 되지 않을뿐더러 우리가 극비리에 준비하고 있는 노력도 허사가 되고 맙니다. 그리도 회장님의 조부와 아버지도 이런 걸 원치 않아셨을 겁니다. 전 절대 반대입니다. 절대…
슈테판 : 사무장은 좀 진정하시게 나도 고민을 많이 하고 어렵게 내린 결정일세. 너무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 당황스러웠겠지만 지금 상황을 잘 살펴 보면 민철이 최적의 인물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라네… 사무장도 부인은 못하겠지...
그라미트 : 회장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안 됩니다.
슈테판 : 민철, 이 상자를 받아 주게나. 그리고 슈베르트의 편지대로 미션을 꼭 수행해 주게나.
민철 : (당황스럽고 어쩔 줄 모르는 표정) 회장님, 아무리 그래도 제가 어떻게 이걸… 물론 흥미롭긴 한데 너무 갑작스러운 의외의 제안이라 뭐라 말씀드리기가…
슈테판 : 그래 그럴걸세. 너무 갑작스러운 의외의 제안이란 거 나도 인정하네. 그러나 내 건강을 고려하면 이제 슈베르트 서거 200주년이 코앞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이해해 주기 바라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얘기하고 낼 아침 일찍 호텔 커피숍에서 다시 만나 이야기하세…
다음날... 민철은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침에 호텔 커피숍에서 슈테판 회장을 만나 슈베르트의 상자를 건네받으면서 회장님의 부탁대로 열심히 해보겠다고는 했지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라미트 사무장의 거친 반대를 설득하면서까지 민철에게 상자를 건넨 슈테판 회장의 제안과 슈베르트의 미션은 분명 민철에겐 커다란 부담이면서 큰 모험이었다. 장거리 비행이라 모두가 잠든 시간, 민철은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머리 위 독서등을 켜고, 메모지에 이런저런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슈베르트가 보낸 편지… 미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