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가 보낸 편지
2027. 7. 서울
한국에 돌아와 우선 밀린 업무를 처리한 민철은 며칠 만에야 슈베르티아데 코리아 사무실에 출근했다.
소라 : 회장님 피로는 좀 풀리셨어요. 40대인 저희도 아직 피로가 안 풀렸는데… 60인 회장님은 아직 많이 힘드시죠?
민철 : 그러게. 이제 유럽 같은 장거리 여행은 힘들 거 같네.
태유 : 맞아요. 이제 웬만한 출장은 젊은 우리가 다닐 테니 회장님은 제발 그냥 가만히 계세요.
소라 : 근데 회장님 피로도 피로지만 무슨 고민 있으세요? 투어 마지막 날 슈테판 회장님 만나고 나서부터는 영 안색이 안 좋으시네요.
민철 : 어 아무것도 아냐. 나중에 얘기해 줄게
밤늦게 퇴근한 민철은 어두운 서재의 책상에 앉아 스텐드의 조명을 켰다. 온갖 문화예술 서적, 수천 장의 클래식 CD와 오디오가 있는 서재는 깊은 정적이 흐른다. 민철의 책상 위에 슈테판 회장에게 받은 조그마한 상자가 놓여 있었고, 민철은 상자를 열어 편지를 손에 쥐었다. 더 늦기 전에 오늘은 편지를 꼭 읽어볼 요량이었다. 편지봉투에는 ‘슈베르트가 미래에 보내는 편지’ 라고 씌어 있었다. 민철은 편지를 꺼내 천천히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빈, 1828년 11월
먼 훗날, 이 편지를 펼쳐보는 그대에게
나는 지금 지극히 쇠약한 몸으로 이 글을 씁니다.
부디 이 글이 먼 세월의 흐름을 넘어
진심 그대로 그대에게 닿기를 바랍니다.
함께 전하는 상자 안에는 한 통의 편지와 하나의 악보 봉투가 들어 있습니다.
이 편지를 읽는 그대가 이미 확인하였으리라 믿습니다.
나는 이 악보 봉투 속에 내가 혼신을 다해 남긴 하나의 곡을 담아 두었습니다.
어떤 곡인지, 어떤 형식인지 이 자리에서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단지 이 곡의 온전한 연주가 지금, 이 시대에는 시기상조라 판단하였습니다.
나는 이 곡이 세상에 울려 퍼지기까지 앞으로 많은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편지를 읽는 그대에게 다음과 같은 부탁을 전합니다.
첫째, 이 악보 봉투를 열어볼지는 전적으로 그대의 판단에 맡깁니다.
이 편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연주할 책임을 스스로 느끼고,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다고 확신이 선다면 개봉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주저 말고 보다 적합한 적임자에게 이 편지와 악보 봉투를 온전히 전달해 주십시오.
둘째, 이 곡은 반드시 내 사후 200주년이 되는 해에 연주해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는 그때가 되어야만 이 곡의 진정한 의미와 아름다움이 온전히 전해질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대가 이 길을 맡아 끝까지 걸어가 준다면
나는 이곳에서 감사의 마음으로 그 모든 여정을 지켜볼 것입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민철은 편지를 내려놓은 채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고요한 서재 안에서 시계 초침 소리만 또렷이 들려왔다. 그리고, 슈테판 회장이 왜 이런 제안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서거 200주년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이 2027년 7월이니까 200주년이 되는 2028년 11월 19일까지는 1년 4개월 정도뿐이다. 저 악보 봉투 안에 어떤 곡이 들어 있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미션을 수행해 보겠다고 상자를 받아온 민철은 좀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더 지체되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 다음날...
민철 : 사무장님, 총무님, 잠깐 회의 좀 할까요?
태유, 소라 : 네…
민철 : 사실은 내가 이번 오스트리아 투어 때 슈테판 회장에게 제안을 하나 받았고, 난 그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슈테판 회장이 제안하며 건네준 편지가 여기에 있으니 읽어 보세요.
태유와 소라는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둘 다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편지를 다 읽고 나서 태유과 소라는 동시에 외친다. “이게 슈베르트가 보낸 편지라고요…?”
민철 : 맞아요. 나도 믿기지 않지만 이게 슈베르트가 보낸 편지입니다. 이제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짐작이 갈 겁니다. 근데 난 아직도 결정을 내리질 못했습니다. 너무 놀라운 일이기에 그 중압감이 너무 큰 게 사실입니다. 오늘, 이 편지를 보여 준건 같이 고민을 해보자는 겁니다. 자 이제 두 분도 같이 고민해 주세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태유 : 회장님 말씀처럼, 쉬운 결정이 아니네요. 아직 악보 봉투를 열지 않았으니, 우리가 꼭 이 미션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또 흥미로운 미션인 건 분명합니다.
민철 : 맞아요. 아직 악보 봉투 개봉 전이라 우리가 못 하겠다는 결정이 내려지면 다시 이 상자를 슈테판 회장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소라 : 근데 저도 이 모든 게 충격적이고 부담스러운데요... 또 이런 행운(?)의 기회를 놓쳐 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미션입니다.
민철 : 그럼 우리 셋이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이사회를 소집에서 정식 안건으로 논의를 해봅시다. 어차피 이 미션을 하더라도 우리 슈베르티아데 코리아 재단에서 해야 하고 또 그러려면 이사회의 승인이 있어야 하니까요.
태유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더 늦기 전에 빨리 이사회 소집하시죠?
민철 : 소라 씨, 바로 이사회를 소집해 주세요. 최대한 빠른 시간으로 잡아 주세요.
소라 : 네 알겠습니다.
이사회가 소집되었다. 안건이 상정되고 상정된 안건에 대한 이사들의 표정 또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일부 이사는 “거짓이거나 위작일 가능성을 어떻게 배제합니까?”라며 날을 세웠고, 다른 이사는 “이건 우리가 처음으로 음악사의 판도를 바꿀 기회입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회의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결국 투표에 부친 안건은 과반이 넘는 80퍼센트의 찬성을 얻어 이사회의 승인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