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가 보낸 편지
1827. 3. 빈
슈베르트가 거주하던 집에서 불과 2km 남짓 떨어진 곳에 그의 우상, 베토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수줍음 많은 청년 작곡가 슈베르트는 그 거장을 직접 찾아갈 용기도, 계기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간절히 바라던 기회가 마침내 찾아왔다. 슈베르트의 절친 안젤름 휘텐브렌너가 베토벤의 비서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고, 그 인연으로 어렵게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슈베르트는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마음으로 베토벤의 집을 찾았다. 병약한 몸을 침상에 기대고 있던 베토벤은 힘겹게 몸을 일으켜 후배 작곡가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베토벤 : 슈베르트 군, 어서 오게. 반갑네. 요즘 빈에서 자네 명성이 자자하다고 들었네. 익히 자네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찾아와 주니 고맙네.
슈베르트 : 아닙니다, 선생님. 오히려 제가 더 영광입니다. 오래전부터 선생님은 저의 우상이셨고, 언젠가 꼭 뵙고 싶다는 꿈을 품어 왔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 역사적인 날입니다. 선생님, 제가 쓴 곡을 가져왔습니다. 선생님 작품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부디 한 번 봐주십시오.
베토벤은 슈베르트가 건넨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 연가곡집 악보를 펼쳐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반응을 알 수 없어 초조한 듯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베토벤 : (감동하며) 아, 훌륭한 연가곡집이로군. 가사와 곡의 운율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곡 분위기는 서정적이면서도 인간 내면의 고독을 깊이 있게 표현했네.
슈베르트 : (놀란 표정으로) 아, 그렇게 평가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사실 이 연가곡집은 선생님의 ‘멀리 있는 그대에게’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아 작곡한 곡입니다. 그동안 많은 가곡을 썼지만, 선생님처럼 연가곡에 도전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베토벤 : 아, 그렇군. 이 연가곡은 내 곡을 뛰어넘는 작품일세.
슈베르트 : 과찬이십니다. 아울러, 감히 말씀드리자면, 선생님 9번 교향곡 ‘합창’ 초연 때 저도 그 연주회장에 있었습니다. 파격적인 형식 파괴와 합창이 전하는 인류애의 메시지에 깊이 감명을 받았습니다.
베토벤 : 그랬었나. 사실 나도 9번 교향곡은 오랜 고통과 진통 끝에 힘겹게 완성한 곡이라네. 오래전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3년간 작업한 끝에, 1824년에야 겨우 완성할 수 있었지. 쉴러의 시 ‘환희의 송가’가 큰 영감을 주었네.
슈베르트 : 아,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그런 명곡은 쉽게 나올 수 없겠지요. 저는 ‘합창’을 듣고 나서 교향곡 작업에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선생님의 거대한 산을 넘을 수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도 파격적인 시도를 해보고 싶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고, 그렇다고 선생님을 똑같이 따라 할 수도 없습니다. 언젠가 저만의 방식으로 제 정체성을 담은 곡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베토벤 : 아~ 그랬군. 자네는 평범한 예술가가 아니야. 내가 자네를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분명히 자네는 음악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남길 걸세. 내 말을 꼭 기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