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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y Soul Kim May 24. 2024

휴직하고 런던으로

3. '캡틴 손흥민'의 의미

경기 전 몸 풀고 있는 손흥민 선수 / Tottenham Hotspur Stadium

런던의 삶을 생각했을 때 내가 가장 기대한 것이 있다면, 단연 손흥민 선수가 토트넘 스타디움에서 뛰는 모습을 직관하는 것이었다. 나는 운 좋게 손흥민의 EPL 100호 골 장면을 현장에서 직관했는데 그 기억만으로도 영국 생활에 더 이상 바랄 게 없었을 정도였다. 게다가 손흥민 선수가 일본의 라이징 스타, 미토마 선수를 상대로 팀 승리는 물론 골까지 기록했으니 더욱 짜릿한 순간이었다.


손흥민은 현재 토트넘의 캡틴인데, 자존심 강한 영국인들 사이에서 아시아인이 주장을 차지했다는 것은 그의 엄청난 위상을 드러낸다. 리그에서 반복되고 있는 인종차별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견제와 차별조차 극복한 손흥민의 클래스를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손흥민과 관련해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이, 여전히 런던 지하철이나 버스에 붙어있던 여러 토트넘 지면 광고에서는 토트넘 부주장인 영국 출신 백인 선수 메디슨이 사진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주장 손흥민과 다른 대륙 출신 선수가 그의 양 옆에 위치한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만큼 영국에서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눈에 보이게 자국 출신 선수를 우대하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을 통해 나는 손흥민이 국가적, 인종적 한계를 뚫고 캡틴이 되었다는 사실을 더욱 체감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손흥민의 최고의 업적으로 EPL 득점왕을 꼽는다. 전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득점왕을 차지했으니 그야말로 엄청난 업적이다. 나 역시 그가 EPL 득점왕을 결정짓는 골을 넣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그 골보다 더 멋졌던 것은 그 순간을 축하하기 위해 달려온 토트넘 팀원들과 그들 위에 올라탄 손흥민 선수의 모습이다. EPL 역사에서 이렇게까지 득점왕을 위해 함께 응원해 준 팀원들이 있었나 싶은 장면이었는데, 그것이 내겐 매우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것도 심지어 아시아인이 국적 다른 외국인들 사이에서 주인공이 되던 순간. 그 순간 나는 팀원들의 리스펙을 받던 리더로서의 손흥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손흥민은 캡틴이 되었다.


글로벌 무대에 서있는 한국인에 대해 떠올려보면, 우리 스스로를 전 세계 리더 이미지로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리더보다는 서양인 리더를 옆에서 잘 보좌해 줄 것만 같은 겸손하고 조용한 동양인, 이러한 이미지가 한국인, 아시아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아닐까? 스타플레이어 루니와 호날두 옆에서 성실하고 겸손하게, 그리고 묵묵히 굳을 일을 하는 '박지성' 선수와 같은 이미지 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캡틴 손흥민’은 더욱더 소중하다. 득점왕을 넘어 그가 캡틴이 된 것은 그의 실력뿐 아니라 팀원과 팬들을 사로잡은 태도와 리더십 덕분이었을 텐데, 통념상으로는 이런 부분이 아시아인에게 특히 약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는 감정표현에 소극적인 아시아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밝게 웃는 미소를 장착하고는 자신만의 시그니처 골 세리머니까지 만들어 본인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선수 정도가 아니라, 스타플레이어로서 경기 중에 골 욕심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자기에게 패스를 안 한 동료에게 거세게 소리치기도 하며 라커룸에선 팀원들과의 언쟁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경기장 밖에 줄 서 있는 팬들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해서 선수단에서 가장 늦게까지 사인을 해주는 그런 튀는(?) 행동도 주저하지 않았다. 손흥민은 이런 모습들을 통해 리더십을 쟁취한 것이다.


그가 바랐던 바라지 않았던, 캡틴 손흥민은 유럽 최전선에서 한국인과 아시아인에 대한 오랜 고정관념들을 깨고 있다. 현재 전 세계 가장 가치 있는 팀 중 하나인 영국 런던의 토트넘 핫스퍼스, 그리고 그 팀의 캡틴 손흥민. 나는 ‘캡틴 손흥민’이 ‘아시아인 최초 EPL 득점왕’의 기록을 넘어서는 엄청난 의미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가 한국 국가대표뿐 아니라 토트넘의 주장 역할도 가능한 오래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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