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최고의 복지, 공원
런던에 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한 가지, 런던의 개들은 좀처럼 짖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길을 가다가 본 개들은 서로 마주치기만 하면 짖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왜 런던 개들은 짖지 않는지 너무 신기했다. (내 영국친구는 이걸 신기해하는 나를 신기해했다) 길거리에서, 카페테라스에서, 버스에서조차 런던의 개들은 주인 옆에 가만히 잘 앉아있었다. 정말 웬만하면 짖지 않았다. 처음에는 반려견 문화가 오래되다 보니 주인들이 잘 가르쳐서 그런가 했는데, 친구들을 보니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고. 그런데 런던에서 지내면 지낼수록, 나는 그것이 런던의 많고 넓은 공원 덕분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에선 좀처럼 공원에 가지 않던 내가 런던에서는 공원에 자주 가는데, 어느 동네에 살든 주변 가까이 공원들이 많고 그 공원들이 넓기도 엄청 넓은 데다가 관리도 잘 되어서 깨끗하고, 또 아름답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원 시스템(문화)'은 런던 뿐 아니라 영국 시민이 누릴 수 있는 영국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인데, 그래서 영국인들은 공원에서 운동을 하고, 공원에서 친구들을 만나며, 공원에서 개와 놀면서, 많은 시간을 공원에서 보내고 있었다. 한 가지 웃픈 사실은, 내가 런던 공원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이 다름 아닌 런던의 개들이었는데, 평일이고 주말이고 공원에 나와 신나게 뛰노는 개들을 보면서 '개팔자가 상팔자, 너희 스트레스는 여기서 다 풀리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또 '개라는 동물은 원래 저렇게 뛰어야 하는 동물이구나' 새삼스레 깨닫기도 했다. 그리고 동시에, 런던 개들처럼 잔디밭을 뛰면서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개들을 떠올리곤 했다.
한국에선 도시 교외로 멀리 나가지 않으면 뛰어노는 개들을 보는 것이 쉽지가 않다. 공원 자체의 수가 적다 보니 공원에 사람들이 몰리고 그러다 보니 개들을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다. 또한 야근문화에 지친 주인들은 정작 개들과 보낼 시간도 많지 않아서 한국 개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조그만 아파트에서 갇혀 지낸다. 요즘에는 개들에게 값비싼 명품 옷, 명품 신발까지도 입힌다고 하던데, 고급 아이템들을 장착하고는 조그만 집에 갇혀서 주인만 기다리고 있는 개들을 보면 우리 모습을 많이 닮은 것도 같다. 과로 사회 속 스트레스 가득한 사람들, 그리고 그런 주인을 닮은 한국의 개들, 그 개들도 주인들의 스트레스를 이어받아서 길거리에서 짖고 카페에서 짖고 대중교통은 이용할 엄두도 못 내는 예민보스들이 된 것은 아닐까?
최근 나는 우연히 반려견 전문가 강형욱 씨가 출연한 유튜브 콘텐츠를 보게 되었는데, 그의 인터뷰 내용이 막연했던 내 생각들을 잘 정리해 주었다.
“아동복지와 노인복지가 잘 되어있는 나라는 개도 잘 키웁니다. 그 시대의, 그 지역의, 그 현재의 개의 모습이 우리 사회의 제일 빈곤한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복지라는 말에 나는 런던의 공원들을 떠올렸다. 영국의 공원 시스템이 영국 복지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영국 국민들에게 있어 최고의 복지 중 하나인 것은 확실하다. 영국 국민들이 무료로 누릴 수 있는 가장 가깝고 편안한 장소 '공원', 그것은 특히 영국의 가장 빈곤한 사람들, 그리고 영국의 개들에게 더욱더 소중한 복지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런던의 개들이 짖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런던의 짖지 않는 개들을 통해 영국 사람들도 다시 본다. 개들도 일정 나이가 지나게 되면 내 보호자의 감정을 읽게 된다고 하던데, 짖지 않는 개들을 통해 영국인의 안정적인 상태, 더 나아가선 그들의 매너와 교양 수준까지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