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페디아

Meet Perry There | 3.

by 성게를 이로부숴

결국 우산을 꺼냈지만 거리에 우산을 쓴 사람은 나뿐이었다. 모두 회색 비로 가득 찬 공기를 마시며 걸었다. 곧 돌로 만든 종탑이 보였다. 신발가게 같은 것이 하나 있긴 했지만 오래되어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아닌가? 이제 없어졌나?”


바지가 축축해 한기가 올라왔다. 코트 주머니에 종이 지도가 부스럭댔다.


‘차라리 류노스케 씨의 아뜰리에에 가봐야겠어.’


이렇게 비 오는 날에 종이 지도라니 아날로그는 불편하다. 스마트 폰을 열어 주소를 검색했다. 오후 세시가 좀 넘었을 뿐인데 벌써 어둑어둑했다. 운 좋게도 멀지 않은 곳에서 버스를 탔다. 삼위일체교회를 지나 쿤스트아카데미 역에서 내렸다. 마부 할아버지말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무작정 걸어갔다간 비만 쫄딱 맞을 것 같았다. 내비게이션은 반드시 길을 안내할 것이다.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질수록 길을 헤매게 된다. 인생이란 것도 잘 닦인 길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수록 방황하게 된다.


큰 도로를 걷다 갑자기 작은 샛길로 화살표가 꺾였다. 그곳엔 누렇게 바랜 거친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지 군데군데 높은 수풀이 길을 침범해 있었다. 날이 더욱 어두워졌지만 고작 오후 네 시. 그 길로 접어들어 지도를 껐다. 길은 하나뿐이었다.






‘네오페디아를 켜 볼까?’


류노스케 씨가 다시 물어볼지도 몰랐다. 로키가 보낸 링크를 눌렀다. 휴대폰이 꺼지는 듯하더니 미묘한 검은색 화면으로 넘어갔다.


“뭐야, 왜 이래? 바이러슨가? 로키 이 자식….”


그때 다시 하얀 화면이 들어왔다.


“네오페디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당신의 의지대로 마음껏 결정하십시오.”


‘사용하고 싶은 이름을 입력하십시오.’


“게임인가?”


어떤 사이트든 가입할 때마다 쓰는 닉네임을 넣었다.


‘임금.’


‘데이터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시겠습니까? 검색 기록이나, 소셜미디어 등 이 기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말합니다. 심도 있는 사용을 위해 권장합니다. 원하지 않으시면 ‘기본정보사용’을 누르십시오. ‘기본정보사용’을 선택하시면 1일 이내 정보만 제공됩니다.’


나는 ‘기본정보사용’ 버튼을 눌렀다. 페이지에는 ‘임금’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안내 창이 한 번 더 켜졌다.


‘GPS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지도 찾기에 좋은 건가?”


‘예.’


아무것도 없는 창에 류노스케 씨의 아뜰리에가 떠 있었다.


‘몇 백 미터 앞.’


“뭐야. 어떻게….”


주변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창에 오직 류노스케의 아뜰리에만 둥실 떠 있다. 길을 따라 걸어갔다. 갑자기 수풀이 움직였다.


“류노스케 씨?”


걸음이 빨라졌다.


후훅- 후, 후훅-


거친 동물의 숨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말인가? 저게 뭐지?”


수풀 속엔 꽤 커다란 동물이 몇 마리나 있었다. 펜스도 쳐져 있지 않은 벌판에서 정체 모를 것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늑대?”


로키의 말이 떠올랐다. 유럽에는 늑대가 많다지. 마부 할아버지 말대로면 여긴 자연보호구역이다.


‘정말로 늑대일까?’


어둑어둑한 하늘, 아무도 없는 누런 벌판, 흙 길. 아무리 그래도 4차선이 딸린 길이 지척이다. 나는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뛰었다. 나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여러 개의 그림자가 수풀을 스쳐 뛰었다. 길 끝까지 달렸다. 나는 숨소리를 낮추고 기다렸다. 수풀 속에서 여러 개의 그림자가 뛰어나왔다.


“뭐야, 무슨 도시에 이렇게 큰 사슴이 있어?”


이슬비에 젖은 사슴의 몸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뿔에 맺힌 빗방울이 한없이 신비로웠다. 재빨리 사진기를 꺼냈다. 사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벌판으로 달려갔다. 멀리 한 줄로 심은 커다란 나무들을 지나 깊은 숲으로 사라졌다. 그 뒤로 검고 촘촘한 숲이 보였다.


“포르토의 숲에는 경계가 없지.”


겨울이라 잎이 다 졌음에도 굵은 나뭇가지들이 촘촘했다. 몇 분 만에 주변은 더욱 어두워졌다. 낮에도 보이지 않던 그림자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어디로 기울었는지 그 기척조차 알 수 없는 시간이었다. 멀리 꽤 큰 건물이 보였다. 불은 꺼져 있었다.


“아무도 없나?”


네오페디아의 창을 보았다. 류노스케의 이름과 사진이 임금 밑에 달려 있었다. 다시 보니 류노스케의 이름 옆에 돋보기 표시가 붙어 있었다.


“돋보기? 내가 찾고 있다는 건가? 어떻게 알았지?”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페이지를 껐다.






‘쿵.’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본능적으로 건물 벽 뒤로 숨었다. 커다란 유리창 안으로 아뜰리에 안에 있는 여러 캔버스들과 조각이 보였다. 대형 조각 작업을 하는지 중장비 같은 기구들이 많았다. 아뜰리에 안에는 분명 누군가 있었다. 누군가 불을 끄고 도둑처럼 숨죽여 움직였다.


‘도둑인가? 그럼 신고를….’


스마트폰을 꺼냈다. 불빛이 밝아 성 가셨다. 물론 도둑이 아닐지도 몰랐다. 퇴근을 하는 류노스케 씨 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숨어 있는 내가 제일 수상하다. 마음을 놓고 웅크린 몸을 폈다. 손을 대고 창문 쪽으로 바짝 다가가 아뜰리에 안을 들여다보았다.


“류노스케 씨?”


안에는 앉아 있는 사람 모양의 조각이 있었다. 포즈가 어딘지 낯이 익었다. 어두워 무엇인 지 정확히 보이진 않았다. 어둠 속에서 묘한 광채를 내는 검붉은 그림자가 지나갔다.


‘쨍그랑-!’


누군가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요란한 경보음이 울렸다.


“뭐야.”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일단 어두운 길로 다시 달려 나갔다. 역시 로키 말 대로 아무것도 하지 말고 호텔방에 얌전히 있어야 했다.


‘하필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이슬비에 온몸이 젖었다. 땀과 흙, 시든 풀이 잔뜩 묻었다.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큰길까지 쉬지 않고 뛰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가로등은 아직 켜지지 않았다. 버스의 커다란 헤드라이트가 지나가며 몸을 훑었다. 그제야 발에 묻은 진흙, 도망치다 까진 손, 가방에 묻은 짓눌린 이끼가 보였다. 나는 도시의 외지인이었다. 버스를 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한 밤 같은 뮌스터의 저녁에 숨어 최대한 빠르게 걸었다. 잘못을 저지른 죄인처럼 상점이 없는 주택가를 골랐다. 구시가는 외곽보다 더욱 고요했다. 뮌스터 사람들이 우산을 쓰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아무도 쫄딱 비 맞은 차림을 의심스러워하지 않았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젖은 옷을 벗었다. 속옷마저 땀과 비에 젖어 기분이 나빴다. 진흙이 묻은 신발과 레인코트, 가방을 닦아 냈지만 군데군데 짓이겨진 이끼 물이 들어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목격자다. 독일 경찰 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면 본 대로 말하면 돼. 하지만 독일어를 못하니 잘못하면 오해를 살 수도 있어. 아무 일도 없을 수도 있지만….’


페리가 떠올랐다. 로키도 떠올랐지만 페리 쪽이 훨씬 더 믿음직스러웠다. 로키는 그림자 같은 걸 좇아 다니는 이상한 녀석이다.


‘난 단지 사진을 찍으러 간 거야. 사슴 사진 말이야. 마부 할아버지에게 자연보호 구역이란 말을 들었고, 달력 사진을 찍으러 간 거라고. 진도 증인이 되어 줄 수 있고….’


“경찰들이 바본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페리에게 일을 부탁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한결 마음이 편안했다. 빨래를 들고 나섰다. 무인 빨래 방에 앉아 세탁기가 도는 동안 음악을 틀었다. 뿌연 안개가 자욱이 밀려드는 아득한 트럼펫 소리. 휴대폰을 이것저것 만지다 다시 네오페디아를 열어보았다.




임금

류노스케 – (돋보기)/ 쳇베이커- Strollin’ (돋보기)




새로운 것이 떠 있다.


“쳇 베이커가 왜 떠 있어? 듣는 노래도 마음대로 트래킹 하는 건가?”


나는 앱의 사용방법 및 이용정보 란을 눌렀다.




‘본 앱은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직관적으로 나타냅니다.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용을 원하지 않으시면 삭제를 누르십시오. 앱 삭제 시 저장된 모든 정보도 삭제됩니다.’




개인정보 사용목적 페이지에는 여느 사이트처럼 조그맣고 빽빽한 글씨로 가득했다. 여느 소셜네트워크시스템 앱과 다를 것 없는 설명이었다. 쳇 베이커의 이름 옆에 뜬 돋보기를 눌렀다. 지는 해와 떠오른 별이 보라 빛 하늘에 떠 있는 앨범 아트. 그 밑에 놀라운 것이 적혀 있었다.




‘Strollin' live at 7th Jazz Festival in Münster,

West Germany, recorded in June 1985.




‘쳇 베이커가 뮌스터 재즈페스티벌에 왔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뮌스터의 이 안개 소리를 들어왔던 것이다.


“뭘 어쩌라는 거지? 대체 이 앱은…”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페리의 연락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


‘그림자 같은 것을 찾아다니다니. 나도 참 철이 없다. 진이 말한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여행을 하는 편이 훨씬 현명하지.’


몇 분 만에 마르는 건조기는 아직 개발이 안 됐다. 인류는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아직도 사람은 감기에 걸려 죽기도 하고, 꽃가루 때문에 죽기도 한다. 바다 속도 제대로 모른다. 그러나 그림자를 찾는 것은 그보다 더욱 실체가 없는 일이었다.


“그림자가 물리적으로 떨어져 나가는 현상이 실제로 존재할지도 모르지.”


로키가 보낸 세 권의 책 중 아직도 두 권이 남아 있었다. 무료한 시간을 유익하게 보낼 겸 다음 책을 폈다. 첫 장의 굵은 글씨가 눈에 들었다.




'미친 사람만 볼 것 –'







작가의 말 :

그림자 이야기를 따라 천천히 임은의 여행이 깊어져 갑니다.

어서 오세요. 네오페디아의 세계로...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