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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잡지 뺨치는 우리집에 놀러오세요.

by 성게를 이로부숴

하얀 유럽식 격자창.

일 년에 열두 번도 더 바뀌는 커튼.

그 컨셉에 맞추어 침대보와 헤드보드, 이불보, 베개 커버가 함께 바뀌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쿠션 커버와 꽃꽂이,

엄마의 안목으로 고른 색으로 아빠가 손수 만든 수십 개의 나무 액자,

유니크한 스탠드와 이국적인 실링팬,

못 쓰는 이불을 안감으로 만든 매트와 카펫까지 —

우리 집은 정말 예뻤다.


엄마의 남다른 감각과 아빠의 부지런한 외조 덕분에 처음엔 엄마 친구들의 사랑방이 되었고, 곧 동네에서도 “그 집이 그렇게 예쁘다더라” 하는 소문이 났다. 구역예배든 티타임이든 늘 손님들이 오갔다.


손님이 오면 엄마는 직접 구운 쿠키를 내놓고, 예쁜 찻잔에 커피나 차를 내어 대접하셨다. 그게 엄마의 큰 즐거움이었다.


덕분에 나는 예쁜 집에서, 예쁜 원피스를 입고, 공주님처럼 유년을 보냈다.


엄마는 직접 수십, 수백 가지의 리본과 장식을 만들어 주셨다. 학교에 하고 가면 선생님들이 “그거 어디서 샀니?” 묻곤 했다.


아마도 그 감각은 타고난 것일 거다. 작은 이모 역시 손재주가 보통이 아니었다. 이모는 직접 뜬 가방에 큐빅을 장식해 주셨는데, 그걸 들고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도 다가와 물었다.


“그 가방, 어디서 샀어요?”


엄마와 이모 덕에 내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작은 집에 사시지만, 엄마는 여전히 예쁜 거실을 갖고 있다. 혼자 살게 되었을 때, 엄마가 제일 먼저 산 건 예쁜 조명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조명과 꼭 어울리는 화초와 화분을 들이셨다.


엄마의 집에 있는 식물들은 놀라우리만큼 싱그럽다. 정원의 나무들보다 더 반들반들 윤이 날 정도다.


한국에 갈 때마다 나는 그 비결을 물었다.

“엄마, 어떻게 그렇게 잘 키워?”


그러면 엄마는 항상 같은 말을 하신다.

“식물도 다 알아, 자기 좋아하는 거. 규칙을 정해서 물을 주고, 아침마다 바람도 쐬 줘야 돼.”


말로 들으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엄마가 얼마나 그 녀석들을 사랑하는지는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엄마는 물을 줄 때도 직접 만든 비료를 섞었다.


“그게 뭐야?” 하고 물으면

“별 거 아냐. 바나나 껍질이랑 당근 꼭지 좀 넣고 며칠 기다렸다가 식초 한 방울 떨어뜨려 주면 돼.”


나는 감탄하며 말한다.

“와… 그렇게 해줘야 식물들이 엄마를 좋아하는구나. 난 그건 못 하겠다.”


엄마는 정말이지 부지런했다. 그렇게 예쁜 집을 꾸미고, 그 많은 화분을 돌보고, 나와 동생을 키우고, 아빠를 사랑했다.


지금도 새벽이면 엄마는 건강주스를 갈고, 은행을 볶고, 작은 빵 조각을 버터에 굽고, 따뜻한 원두커피를 준비하신다.


예쁜 우리 집을 떠올릴 때면 이제는, 행주를 쥔 엄마의 물 묻은 손이 함께 떠오른다.


엄마도 이제 환갑이 훌쩍 넘으셨다.

속으로 생각한다.


‘이제는 좀 푹 쉬면서 하루하루를 즐기셨으면 좋을 텐데….’


한국이 그리워지면 「한국기행」을 보곤한다. 어느 마을의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얘가 막내요. 육십 좀 넘었으니께. 한창때지! 아유, 꽃 같은 나이여!”


‘엄마, 저 동네에선 엄마가 막내야. 그러니까, 오래오래 꽃같이 사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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