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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에 다녀왔습니다.

소설가의 여행

by 성게를 이로부숴

2024년 12월, 연말의 포르투.


내리자마자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었습니다.

축축한 북쪽의 도시의 습기를 말끔히 말리는 기분 좋은 햇볕을 받으며 활주로에 내렸습니다.

다시 떠올려도 노랑인지 보라인지 여전히 헷갈리는 트린다드 행 공항선을 탔습니다. 시내로 가는 동안 작은 역에 설 때마다 선물과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잔뜩 타고 내렸습니다. 크리스마스 연휴라 웃는 얼굴이 많았습니다.


여전히 붐비는 데다 공사 중인 길과 건물이 많아서 시내의 골목에서는 먼지 냄새가 났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 벤투 역 역시 공사 중이었습니다. 다시 보고 싶었던 카르무 성당의 거대한 아줄레주 벽에도 보호 필름이 붙어 있어 아쉬웠습니다.


클레리고스 종탑에 오르는 동안 역시 종종 멈춰 서야 했습니다. 다만 기다리는 동안 사진을 찍고 그것을 종탑 꼭대기 난간에 합성해 주는 서비스가 생겼더군요. 덕분에 재미있는 사진을 갖게 되었습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 지 모르겠으나 귤나무를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골목마다 드리운 나무에 주렁주렁 달렸던 귤들을 보기 힘들더군요. 기후 때문인 지 땅에 곯아떨어지는 열매를 처분하기 위해 나뭇가지들을 꺾은 것인 지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커다란 귤나무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아쉬웠습니다.


루이스 다리는 여전히 아찔했습니다. 여전히 사람으로 북적이고 지상철이 다니고 세차게 흐르는 도루 강이 흘렀습니다. 하나, 둘, 셋. 해가 기우는 순간 도시는 오렌지 빛의 영역에 있었습니다. 보랏빛으로 물들 때쯤 포르토 와인 칵테일을 비웠습니다. 아쉽게도 파파피고스는 한 잔도 못 마셨습니다.


가장 슬펐던 점은 도루 강변에서 자라던 거대한 야자나무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바짝 마른 누런 잎을 나풀거리며 하늘을 향해 파란 잎을 너울대던 그 거대한 야자수가 사라진 것이 얼마나 슬프던 지 아예 다른 도시가 되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이것 때문에 페리도 섭섭한 감정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설명을 한다면 이해해 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번엔 큰맘 먹고 미리 표를 사서 렐루서점을 방문했습니다. 예약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 시간이었지만 줄이 길어서 한참 기다렸습니다. 별 것 없을 것이라 예상을 했지만 실제로 보고 훨씬 더 실망했습니다. 그 작은 서점 난간을 보고 떠올려 써낸 장면의 묘사가 궁금해졌습니다만 곧 책장에서 발견한 반지의 제왕 책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파쎄오 알레그레 행 전차를 탔습니다. 베드로 교회를 찾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그 문이 작게 보여서 놀랐습니다. 그때는 분명 거대한 바위 성 같았는데요. 언제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마노엘 레스토랑을 다시 찾았습니다만 카타플라나를 맛볼 수 없었습니다. 마노엘이 말하길 '같은 방식으로 요리한 거고 플레이팅이 달라졌을 뿐.'이라고 했지만 알가르브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커다란 삼각 UFO 모양의 냄비에서 직접 덜어 주는 카타플라나와는 절대 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가장 기대를 했던 것 중 하나여서 매우 실망했습니다. 그래도 부드러운 문어 요리와 부드러운 바람 냄새를 맡으며 파도를 타는 서퍼들을 볼 수 있어 위로가 되었습니다.


세하를베스 빌라에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붉은 토양과 유칼립투스 향기는 대신 다른 곳에서 맡았습니다. 자동차를 빌려 작은 국도를 달렸는데 포르투갈의 야생 숲을 볼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해변을 끼고 넘실대는 파도를 바라보며 햇볕을 듬뿍 받는 반짝이는 성긴 숲을 보았습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것 중에 하나입니다.


하얀 절벽과 죠리퐁을 흩뿌려 놓은 듯한 집들, 몇 킬로가 넘는 긴 파도에 관한 이야기는 언젠가 책에 등장할 것 같습니다. 선인장 꽃으로 뒤덮인 절벽 위의 들판에 대해서도 써야겠지요. 빨갛게 익은 구릿빛 피부의 젊은 청년의 노래와 유칼립투스 숲에서 길을 잃었던 이야기도 써야겠습니다.


서쪽 바다는 항해하고 싶은 물의 높이를 가지고 있더군요. 그 바다는 참으로 온화하고도 잔인해 보였습니다. 사나운 나는 언젠가 기억 속 온화했던 바다를 넘습니다. 잔인한 바다가 주는 모험심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일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더 나아갈 수 없는 육지의 끝에서 완전히 새로운 매질을 향한 발산의 의지를 굳게 다집니다. 에덴동산을 나온 호기심으로 우리들은 그 파도를 넘은 거겠지요. 이 이야기도 잘 다듬어 보겠습니다.






포르투갈 여행 내내 햇볕이 따뜻해 털로 짠 스웨터를 입지 않았습니다만 북쪽의 도시로 돌아오자마자 축축한 한기에 몸이 움츠러들었습니다. 따갑게 느껴지던 스웨터가 따뜻한 체온을 머금어 부드러워집니다. 이슬비가 내려 바짓단이 젖어듭니다. 우산이 있어도 소용없는 날씨입니다.


새해의 폭죽이 터지는 시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라디에이터를 틀어 식어 있던 집을 데웁니다. 바깥은 바람이 불고 여전히 비가 내립니다. 페리가 추천한 로열 오포르토 콜헤이타를 사지 못했지만 대신 집어 온 위스키를 한 잔 마시고 잠들었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가 됐습니다. 이곳이야 말로 회색코트를 입기 좋은 도시지요.


<거기서 페리를 만나 - 북쪽의 도시들> 편 연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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