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전구) 버튼의 시간은 12월로 간다.

by 성게를 이로부숴

우리 집에는 거대한 벤자민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해마다 쑥쑥 자라 분갈이를 할 때마다 화분도 점점 커졌다. 나중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그 거대한 화분들이 애물단지가 되었지만, 나는 그 나무들을 참 좋아했다.


처음에는 거실 한켠에서 키웠다. 하지만 너무 커져서 결국 베란다로 내보내야 했다.


베란다 청소를 할 때면 아빠는 커다란 호스로 물을 뿌리곤 했는데, 그때 벤자민 잎사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을 맞으면 꼭 정글에 들어온 것 같았다.


반짝이는 새잎이 돋으면 나는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 말랑한 연두 빛 잎이 점점 짙어지며 단단한 초록으로 변해 가는 게 참 신기했다. 물 주고 난 뒤 흙에서 나는 냄새도 좋았다. 조금씩 마르는 흙을 손끝으로 만지며 ‘이제 물 줄 때가 됐나’ 가늠해 보는 것도 나만의 놀이였다.


우리는 그 나무들을 사람 이름처럼 ‘벤자민, 벤자민’ 하고 불렀다.

훗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왠지 우리 집 벤자민들이 생각나서 가슴이 뭉클했다. 영화를 보지도 않았는데, 제목만으로도 왠지 아련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이제 그 벤자민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빠는 거실에 커다란 트리를 세우셨다. 12월 25일의 트리 밑의 선물 보다 먼저, 나와 동생이 기다리던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벤자민 행사’였다.


12월이 초입이면 아빠는 두 벤자민 나무에 빨강, 노랑, 파랑, 초록의 작은 전구들을 감아주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엄마와 우리는 밖으로 나가 아빠가 전구에 연결된 버튼을 누르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와아! 위 위슈어 메리 크리스마스! 위 위슈어 메리크리스마스!”


아파트 15층이면 사실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검은 하늘 아래 반짝이는 불빛들을 올려다보며 우리는 손뼉을 치며 작게 노래를 부르곤 했다.


불을 켜고 나면 아빠도 밑으로 내려오셨다. 온 가족이 주차장에 모여 멀리 우리 집 벤자민이 반짝이는 걸 바라보며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기대했다. 그 행사가 끝나면 공식적으로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 축제 기간에 들어갔다. 커튼과 침대보, 식탁보를 바꾸고, 쿠키를 굽고,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든다. '벤자민 행사'와 함께 성탄절의 기쁨을 마음껏 즐기는 12월의 설렘이 시작되는 것이다.


엄마는 보온병에 따뜻한 차를 담는다. 우리는 내복 차림에 아빠가 만든 망토를 두르고 호들갑을 떨며스키장갑과 부츠를 꺼내고 털모자를 눌러 쓴다.


어둑어둑한 주차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신다. 하얀 입김이 흩어진다. 후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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