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 일곱 살의 기도

by 성게를 이로부숴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아빠가 신문을 넘기는 소리가 났다.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 속보 방송이 흘러나왔다.


“소리 좀 더 켜 봐라.”


아빠는 급하게 리모컨을 찾았다. 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소파에 앉았다. 화면 속에는 장난감처럼 부러져 물에 떠 있는 도로가 보였다. 도로가 정말로 ‘뚝’ 끊겨 한강 위에 조각처럼 떠 있었다. 자동차가 몇 대 함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게 무슨 일이야?”


1994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성수대교 붕괴.’ 뉴스에서 착잡한 앵커의 목소리와 함께 다급한 현장 상황이 중계됐다.


아직 출근 전인 아빠,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동생. 모두 집 안에 있었음을 확인하고 안도했지만, 텔레비전 속 울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슬픔과 죄책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1995년, 여름이었다. 엄마는 그날 빨래를 널고 계셨다. 삼풍백화점 붕괴 속보가 TV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침대 사이를 뛰어다니며 얇은 여름이불을 덮어쓰고 일어나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혼이 났을 텐데, 웬일인지 엄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사망자 명단이 실시간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엄마는 TV를 켜 두었지만,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끄지도 않았다. 한참 뒤, 안방 뒤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던 엄마가 말했다.


“○○야, 기도해라. 아빠가 잘 돌아오시도록.”


그제서야 나는 사망자 명단에서 아빠의 이름이 나오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계속 이불을 펄럭이며 침대 사이를 뛰었다. 그러나 이불을 쓰고 풀썩 주저앉을 때마다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아 꾹 참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아빠가 무사히 돌아오게 해 주세요.’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날 아빠에게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엄마는 혹시나 아빠가 우연히 그날 삼풍백화점에 간 것은 아닌지 걱정하셨다고 했다.


그날 저녁, 현관 벨이 울렸다.


‘삐-’ 하고 울린 소리는 일곱 살 인생에서 들었던 소리 중 가장 반가운 소리였다.






그 날 그 곳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가족과 친구분들에게 삼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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