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일을 마주 할 때, 엄마의 꽃꽂이를 떠올립니다

by 성게를 이로부숴

우리 엄마는 꽃꽂이를 참 잘했다.


문화센터에서 몇 번 배운 것이 전부였지만, 모두가 감탄할 만큼 예쁜 꽃꽂이를 만들어 냈다.


엄마는 종종 남대문 새벽시장에 가서 꽃들을 잔뜩 사 오셨다. 그리고 여러 작은 작품을 만들어 거실이나 복도에 두셨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나무와 잎사귀, 계절마다 피는 꽃들을 만지며 자랐다. 식물 백과사전이 나의 애착 물건이 된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엄마와 함께한 교회 꽃꽂이 봉사가 지금도 눈에 선명하다.


엄마는 교회에서 여러 일을 맡으셨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신 일은 강대상을 꾸미는 꽃꽂이였다. 한 달에 몇 번 꽃시장을 다녀와, 커다란 오아시스가 담긴 화병에 근사한 작품을 만들었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늦은 저녁, 나는 엄마를 따라가 꽃꽂이 과정을 지켜보곤 했다.


길게 누워 교회 의자에서 잠이 들기도 하고, 엄마가 긴 꽃들의 줄기를 자르는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졸기도 했다. 엄마의 꽃꽂이가 끝날 즈음이면 아빠가 오셔서 잘린 줄기와 잎들을 치우셨다. 한참 기다린 끝에 완성된 꽃꽂이를 꼼꼼히 살펴보고 나면 덩달아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예쁜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떨 때는 몇 가지를 골라 집으로 안고 돌아온다.


꽃병을 꺼내고 머릿속에 생각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리고 꽃을 꽂는다. 그러다 보면 나는 언제나 엄마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새삼 느끼고 만다.


어떤 그림을 마음에 그려도, 그에 맞는 꽃을 고르기란 쉽지 않다. 생각대로 색과 모양을 맞추어도, 막상 꽂아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 일쑤다. 그런데 엄마는 언제나 머릿속의 청사진을 현실로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건 단순한 손재주가 아니라, 결정력과 추진력, 그리고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었다.


여러 일들 사이에서 결단을 내리고, 직접 뛰어들어 완성해 나가는 일은 참 어렵다.


가끔 복잡한 일이 닥칠 때면, 한 송이 한 송이 꽃을 꽂아가던 그때의 엄마를 떠올린다.


묵묵하고, 경쾌하고, 확신에 차 있던 희망찬 손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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