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다섯 남매 중 막내로, 세상의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쌀가게를 하던 외할아버지 덕분에 넉넉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바나나 하나를 까먹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그 시절 바나나는 귀한 과일이었으니 엄마는 어린 시절만큼은 여유와 풍요의 플렉스를 마음껏 누렸던 듯하다.
가게에서 자란 아이답게 엄마는 물건을 고르는 눈썰미, 손님을 대하는 장사 감각, 그리고 돈의 흐름을 읽는 눈을 타고났다. 사업에는 영 소질이 없던 아빠와 달리, 엄마는 무엇을 하든 손에 쥐면 흑자를 남기는 사람이었다.
대학교 시절, 홍대 근처 상권을 눈여겨본 엄마는 용감하게 카페를 열었다. 그 카페는 하루 종일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잘 되었고, 결국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팔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 번은 그 카페에서 경찰의 비밀 작전이 펼쳐졌는데, 잠복 중이던 형사들이 엄마에게 협조를 구했고 엄마는 흔쾌히 허락하며 직접 작전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웃음이 나오지만, 그 안에는 ‘두려움보다 용기가 먼저인 사람’의 DNA가 꿈틀대고 있음을 직감한다.
엄마는 부동산에도 능했다. 언제나 필요한 자금을 미리 준비해 두는 사람이었고, 그 돈이 아빠의 사업과 더 잘 맞아떨어졌다면 우리는 지금쯤 꽤 부자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에는 더하기와 빼기의 순서가 정해져 있는 법이다. 그 모든 오르내림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려 애쓴 엄마를 생각하면 내 마음속엔 자연스레 존경이 피어난다.
엄마는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새로운 일을 떠올리면 곧장 실행으로 옮기는 추진력을 가졌다.
'타고난 손재주와 감각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사람.'
나와 동생이 인터넷 상점을 열었을 때도 아이디어의 출발점은 늘 엄마였다. 지금도 엄마는 백화점에서 일한다. 자기 가게처럼 열정적으로 일하는 엄마를 믿고 일을 맡기는 사람들이 많다.
엄마의 근면함과 성실함, 그리고 꾸준함.
그 끊이지 않는 에너지야말로 내가 물려받은 가장 큰 자산이다.
때로 삶이 흔들리고, 스스로가 작아질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엄마를 떠올린다.
무에서 유를 만든 여자, 나의 엄마.
그 믿음이 여전히 내 안을 흐르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엄마처럼, 언제나.
아자 아자 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