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은 나를 부를 때 꼭 '우리 언니.'라고 한다.
얼마 전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엄마가 깔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모들이랑 여행을 갔다 왔잖니. 할머니 셋을 데리고 다니느라 걔가 고생했지. 근데 그러는 거야. ‘엄마는 엄마 언니 만나서 좋겠다. 나도 우리 언니, 내 언니 보고 싶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 언니’라는 말을 참 오랜만에 들었다. 멀리 떨어져 살아 그런 거겠지만, 마음이 울렁울렁했다.
내 동생은 어릴 적부터 나를 참 잘 따랐다.
초등학교 시절, 고학년과 저학년은 하교 시간이 달랐다. 내 동생은 집이 불과 십몇 분 거리인 집으로 가면 되는데도, 늘 운동장을 서성이며 나를 기다렸다. 함께 놀던 친구들이 다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동생은 꿋꿋이 구름사다리나 정글짐을 오르내리며 나를 기다렸다. 쉬는 시간이 되면 나는 교실 창가에 서서 운동장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잠깐 내려가 코를 닦아 주기도 하며 우리 자매의 유년 시절은 그렇게 흘러갔다.
5학년 때였다. 담임선생님이 수업 중 창밖을 보시더니 물으셨다.
“쟤 누구 동생이니? 추운데 올라오라고 해라.”
선생님은 종종 친구들의 동생들이 심부름을 올 때면 노래를 시키곤 하셨다. 노래를 잘 부르면 교실은 박수갈채로 떠나갈 듯했다.
나는 운동장으로 내려가 진지하게 말했다.
“야, 선생님이 올라오라 하시는데, 가면 분명히 노래시키실 거야. 그러면 잘해야 돼! 알았지?”
숫기 없는 동생이 잘하지 못할까 걱정되기도 하고, 며칠 전 엄청난 박수를 받았던 친구의 동생이 떠올라 괜히 경쟁심이 들었다. 올라가기 싫다고 버티는 동생을 밀어 올리며 교실 앞에 다다랐다. 끝까지 들어가지 않겠다 우기는 동생을 타이르느라 교실 앞에서 티격태격하는데, 우리를 발견한 선생님이 교실 문을 활짝 열었다.
“와, 이게 누구야. 00이 동생이네! 언니 기다리느라 안 추웠어?”
선생님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자기소개해볼까? 언니, 오빠들한테?”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동생이 자기 이름을 말했다. 겨우 고개를 든 그 애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어서 해!’ 하는 눈빛을 보냈다.
“우리 동생은 어떤 노래를 잘하니? 노래 한 번 불러볼까?”
동생은 금세 울상이 되었다. 너무 긴장한 탓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박수를 쳤지만, 결국 노래는 끝내 부르지 못했다.
선생님은 자연스레 수업으로 넘어가셨고, 동생은 교실 뒤 작은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나는 원망 섞인 눈길로 동생을 보았고, 동생은 미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눈물 맺힌 눈을 끔뻑였다.
“그날 언니가 얼마나 뭐라고 했는 줄 알아? 자기 친구 동생이 잘했다고 진짜 난리였잖아. 나는 그런 성격이 아닌데!”
지금도 동생은 가끔 그날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랬던 아이가,
내 결혼식 날—
수많은 하객들 앞에서 축복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날은 내가 울었다.
성시경의 '두 사람'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