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Perry There | 13.
“넌 대체 뭘 바라는 거야? 그걸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네 말을 좀 더 진지하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익은 오리 가슴살을 잘랐다. 클뢰쎄는 감자를 반죽해 쫄깃하게 데쳐 낸 것으로 간간한 맛과 입안에서 으스러지는 촉감이 좋았다. 붉은 양배추를 달콤하게 졸여 낸 소스 역시 오리고기와 잘 어울렸다.
“고등학교 때 축구에서 졌다고 이러는 건 아닐 거 아냐. 아니면 치정인가?”
로키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 금방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페리는 여자애들한테 관심이 없었어요. 그 자식은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엔 통 관심이 없어요. 화려한 플레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눈에 띄게 빠른 것도 아닌데 수상할 정도로 공을 잘 몰았습니다. 어디가 빌 지 반드시 알고 있다는 얼굴로 무심하게 패스를 하는 스타일이죠. 하지만 일대일로 붙어서 진 적 없어요.”
“그게 골 결정력이라는 건데. 그런 걸 타고났다고 하는 거야.”
로키가 듣기 싫다는 듯 건성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땐 꽤 친했습니다. 뭐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니까 다 설명할 건 아니고요.”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내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오리너구리와 네오페디아는 함께 작업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였습니다.”
제법 흥미로운 대답이 나왔다.
“그래서?”
“나는 그 자식이 하는 방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는데,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방식으로 진행할 수 없었고. 그 이후로 안 만났습니다.”
나는 가늘게 눈을 떴다가 태연한 척 표정을 바꿨다.
“아니. 네 말은 틀렸어. 페리 회사 앞 건물에 네가 다니는 회사가 있다고 하던데.”
로키가 코웃음을 쳤다.
“맞습니다. 전 계속 그 녀석을 주시하고 있거든요. 구린 데가 있으면 예민해지게 마련이죠. 제가 지켜보고 있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더군요.”
넓은 와인 잔 입구까지 유칼립투스 향으로 가득 채워진 잔을 기울였다. 포르토의 태양, 솜처럼 날리던 유칼립투스 꽃, 렙터의 발톱 같은 뾰족한 잎이 바람에 흔들렸다.
“너 같이 눈에 띄는 녀석이 따라다니는 걸 눈치 못 채는 사람이 어딨겠어. 페리의 방식이 어땠는데?”
용의자를 향해 돌진하는 오병호나 총을 들고 열기구를 기어오르는 오상억이 되기로 했다.
“됐습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그 녀석과 연을 끊은 지는 오래라는 말입니다.”
로키는 별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없다는 듯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다시 메뉴 카드를 열어 진지하게 디저트를 골랐다.
“너희 둘 다 디저트를 참 좋아해. 화해를 하는 건 어때? 페리가 그랬거든. 너는 나쁜 짓을 할 녀석이 절대 아니라고. 너희들이 서로 말을 안 하고 지낸 지 몇 년이건 간에 그쪽에서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단 말이야. 너도 페리의 방식이 싫었다면 아예 관심을 끄고 지낼 수도 있었을 텐데. 걱정이 됐던 건 아냐? 페리에게 그림자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로키는 하얀 크림이 올라간 쇼코비르네 케이크를 주문했다. 녀석은 아무 말 없이 남은 물을 마셨다. 나는 작전을 바꿨다.
“내일 여기서 크리미 아벤트가 있어.”
로키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케이크에 열중하더니 엄지손가락 만한 작은 에스프레소 잔을 들이켰다.
“내일 오고 싶으면 오라고. 여덟 시야. 추리 이벤트인데. 독일어를 하나도 못 하는 나로서는 좀 부담스럽거든.”
“그러면 안 가면 되겠네요.”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는 여행지에서 모처럼 재미있는 이벤트를 만났는데 그럴 순 없지.”
나는 페리와 로키를 화해시키고 싶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추리를 하다 보면 오해했던 일들이 별 설명 없이 사라질지도 몰랐다. 오랜 친구라면 작은 계기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다.
“내일….”
“왜 다른 약속이 있어?”
로키가 입을 다물었다.
“내가 뭐…. 그걸 방해할 순 없지. 함부르크에서 뮌스터로 뻔질나게 다니는 이유야 따로 있겠지. 금요일 저녁을 나한테 쓰라고 할 수 없고 말고.”
로키와 나는 카페 파블로를 나와 구시가지의 회랑을 따라 걸었다. 로키는 코트 옷깃을 세우고 가죽 장갑을 꼈다.
“북쪽으로 가 볼까요?”
얼른 로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속도를 따라잡느라 평소보다 빠르게 걸었다.
“독일어를 좀 배워요.”
“어디서 배워. 이 나이에 새로운 언어는 힘들거든.”
“단어를 조금만 알았어도 며칠 동안 북쪽을 향해 걷지 않아도 됐을 테니 하는 말입니다.”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내가 물어볼 때 알고 있는 걸 그때그때 잘 알려주면 되잖아. 꼭 별 것도 아닌 걸 수수께끼 마냥 가르쳐 주질 않으니.”
로키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뭐든 스스로 아는 게 좋지 않습니까?”
“세상에 스스로만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 함께 사는 거야. 혼자 대단히 잘 살고 있는 것 같아도 사실 어디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없어.”
로키의 구두 발자국 소리가 돌길에 부딪혔다. 축축하게 젖은 바닥이 미끄러웠다.
“잘 보세요.”
“여기?”
그곳은 새오를 만난 카페 옆에 붙어 있던 신발가게였다. 그러고 보니 마부 할아버지도 내가 나온 곳에서 북쪽으로 가라고 했던가.
“아냐. 여기서 북쪽으로 가야 해. 그 할아버지 말이 북쪽으로 가라….”
가로등 반사된 금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Zum Norde, 여기가 그 ‘북쪽’이라고요.”
오래된 나무를 구부려 만든 쇼윈도와 고급스러운 신발들이 전시된 가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굴처럼 어두운 구석에서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여기서 그림자를 잃어버린 남자가 부츠를 샀다는 건가?”
“함부르크에서 만난 사기꾼이 한 얘기에 너무 몰입하는 거 아닙니까? 그럼.”
로키가 빠르게 멀어졌다.
“마법의 부츠를 뭐라고 해?”
“내일 여기서 마법의 부츠를 사려고요?”
녀석은 부끄러워 질색하는 표정으로 손을 저었다.
“나도 뭘 알아야, 조사를 하지.”
“날개가 달린 유니콘 그림이 그려진 부츠라도 하나 사세요.”
로키가 회랑이 떠나가도록 웃었다.
“알았으니까. 뭐라고 하는 지만 알려 줘.”
로키는 정말 질색하는 얼굴을 했다.
“부츠를 뭐라고 하냐고. 부우츠?”
“그냥 내일 서점에 가서 기본 단어가 적힌 그림책을 하나 사세요. 마법의 부츠는 분명 거기 있을 겁니다.”
녀석이 성큼성큼 회랑 끝으로 사라졌다. 검은 첨탑에 반딧불처럼 매달린 세 개의 철창 밑에 그림자가 아른댔다.
“Magische Stiefel!”
거리의 회랑을 타고 로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로키가 사라진 골목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렸다.
*Zum Norde 쭘노르데 = 북쪽으로
**Magische Stiefel 마기셰슈티펠 = 마법의 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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