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어(死語) - 죽어버린 말 or 죽이는 말
어릴 적 나는 부모의 눈치를 보며 자랐다. 엄마의 감정 상태가 어떠한지 늘 살폈고, 아빠의 무표정은 감정을 읽을 수 없어 나를 불안하게 했다.
크지 않은 집에서의 부모님 싸움은 방에 있는 내게도 다 들렸다. 그 당시 나는 부부싸움을 말릴 용기가 없던 작은 아이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귀를 막고 우는 것뿐이었다.
초등학생 고학년이 되었을 무렵 그날도 부모님은 싸우고 계셨다. 나름 머리가 컸다고 생각한 나는 그만 싸우라며 소리쳤다. 내겐 큰 용기였다. 그 용기로 내가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나에게 딱 한 번 눈길을 줄 뿐 시선을 거두고 계속 싸우셨다. 부모님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떠한 상태인지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작은 초등학생의 말엔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렇게 내가 어렵게 내뱉은 말은 두 분의 귀에 닿자마자 죽어버린 말, ‘사어’가 되었다.
그때 이후로 말에 힘이 있길 원했다. 죽어 사라질 말을 할 바엔 내가 하는 말이 누군가의 가슴에 비수로 꽂혀 살아남길 바랐다. 그 방법으로 택한 게 날카롭고 거친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깊이 없이 뱉은 나의 말은 타인의 마음을 깊이 찌르는 칼이 되었다.
사회생활 하고부터는 칼 끝이 더 날카로워졌다. 군대식 문화가 강했던 직업이라 날이 갈수록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같이 일하는 동료, 심지어 나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분까지도 내 눈치를 보기 바빴다. 어릴 적 눈치를 보던 내가, 커서는 누군가에게 눈치를 주고 있었다. 뭔가 잘못됐다 느꼈을 땐, 이미 20대 후반을 지나고 있었다.
그쯤 어느 작품에서 온유한 분을 만나 일하게 되었다. 선비 같던 그분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있어 모든 이가 귀를 기울였다. 권위적으로 높은 사람도, 눈에 띄는 외형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단지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워딩으로 말을 할 뿐이었다. 그 따스한 힘에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분을 보며 날카롭고 거친 말에 힘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죽어버릴 말을 내뱉기 싫어 차갑게 찔렀던 나의 말은 사람을 죽이는 말, 또 다른 의미의 사어였다. 그분을 보면서 오히려 조용하고 따스한 사람의 말이 큰 울림과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울림이 있는 따스한 말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말이었다.
외투를 벗게 만드는 것은 차가운 바람이 아닌 따스한 햇살이듯, 따뜻한 말로 사람을 살리는 내가 되고 싶다.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고두사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