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재즈, 채움과 비움 사이

<재즈문화사>를 함께 읽어보아요 (4) - 청취와 친밀감

by 김소이

안녕하세요! 어느덧 재즈 문화사에 관한 네 번째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재즈를 평소 사랑하시는 분들, 그리고 처음 접하시는 분들 모두 <재즈문화사>를 함께 읽으면서 재즈에 더 가까워지셨길 바랍니다.




♪, 재즈, 채움과 비움 사이


제가 이번에 소개해드리고 싶은 재즈문화사에 담긴 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대개 우리는 ‘어떤 문장을 읽었기 때문에’ 감응할 수 있다. 단순히 양이 많지는 않더라도 분명히 문장이 존재한다. 그것이 충분히 좋은 내용이라면, 적은 단어, 짧은 문장, 몇 줄의 문장으로 구성된 문단만으로도 독자는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이때 얼마나 적재적소에 적확한 언어를 사용하여 경제적으로 말했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마일스의 음악에서도 그렇다. 그런 면에서 ‘절제’와 ‘발산’의 긴장을 달리 표현하면, ‘은근히 드러냄’과 ‘단도직입적으로 드러냄’ 사이의 긴장이라 할 수 있다. 그 긴장관계에서 절제미가 생긴다. 결국 ‘드러냄’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인데, 그 ‘드러냄’의 행간에서 적절히 ‘침묵’할 수 있다.

즉 음악에서 ‘침묵’은 ‘음 채우기’와 ‘음 비우기’의 간극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완벽히 침묵한다면, 일반적인 의미의 음악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음악의 침묵은 ‘음 최대로 채우기’와 ‘음 최소로 채우기’ 사이에서 태어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음 비우기’는 ‘음 아끼기’다. 단지 음을 아껴, 느슨해진 음의 행간에서 허용된 ‘침묵’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 가장 아름다운 침묵이 발생한다. 그것은 음이 사라지는 걸 기약하고, 음이 사라지는 순간 다시 발생할 것을 기약한다.

하지만 ‘음 아끼기’는 결코 쉽지 않다. 냉정한 자기비판과 통찰이 없을 경우, 어느 한 음도 아끼지 못하거나 중요한 걸 버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르면 쓸데없는 말까지 늘어놓거나, 말을 지나치게 아끼는 바람에 정작 할 말을 못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아끼기 위해서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하고, 자신의 발언을 천천히 음미해야 한다. 자연히 말은 느려지고, 말과 말의 행간이 벌어진다. 이는 치열한 논쟁을 하는 동안에는 잘 생기지 않는 현상이다.


이 글을 읽고서 저는 ‘청취’, 그리고 진정한 ‘친밀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친밀감과 청취에 대한 제 생각을 펼쳐볼까 합니다.




♪, 친밀감!


친밀함이란 무엇일까요? 영어 단어 'Intimacy'의 라틴어 어원을 살펴보겠습니다. 고대 라틴어 'interus'는 'inward, 안쪽'을 의미하고, 중세 라틴어 'intimus'는 'inward, 안쪽'을 의미합니다. 후기 라틴어 'intimatus'는 'to put in, 넣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어원을 종합해보면, 친밀함은 정신세계의 내면, 경계의 완화, 그리고 다른 존재와의 깊은 연결을 의미합니다.


후기 라틴어 ‘intimatus’의 또 다른 뜻은 ‘to declare’라는 뜻도 있어서, 친밀함은 다른 존재의 깊은 사적인 것을 자신에게 내보내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깊은 사적인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내보내는 의미도 갖게 됩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의 정신적 볼록함과 오목함이 들어맞아 섞이는 것이죠. 그러려면 서로 믿어야 하고 부끄러움이 없어야 합니다.


음악의 본질은 시간의 움직임에 담긴 소리의 예술로 정의됩니다. 음악은 시간 속에서 발생하고 서로 다른 소리들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져 그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 리듬이 태아인 순간부터 발생했다고 했듯이, 리듬은 친밀감의 뿌리가 됩니다.


여러분은 친밀감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 관심과 친밀감!


‘친밀감’에 대해 생각해 보기 전에 먼저 ‘관심’이라는 단어에 주의를 돌려보겠습니다.


도널드 위니콧이라는 영국인 정신분석가는 관심이란 관계의 파괴적 요소와 긍정적인 면모 사이의 연결을 표현한다고 말합니다. 관심은 자신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대상의 처지와 운명에 자신이 관련되어 있다고 느끼는 능력입니다. 그에 따르면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죄책감인 줄 모르고 느끼는 죄책감이라고 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친밀함은 관심이라는 단어와 꽤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다른 점이라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관심에는 뭔가 목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관심이라 부르지만,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죄책감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친밀감은 다릅니다. 연인의 관계에서처럼 상대방에 관련된 목표와 계획이 없을 때, 즉 기대와 목표도 없고 얻을 것도 없을 때 정말로 친밀해지는 것 아닐까요?




♪, 재즈, 음표와 음표 사이의 친밀


여러분은 재즈와 친밀한가요? 재즈는 음표와 음표 사이의 친밀함을 통해 우리의 감정을 자극합니다. 음악을 통해 우리는 소리들 사이의 관계를 느끼며 친밀감을 형성합니다. 여러분은 재즈를 통해 어떤 친밀감을 느끼시나요?


음악은 귀뿐만 아니라 소리 진동이 감지되는 모든 신체 표면 등 여러 감각 기관에 닿아 타자성과 동일성 사이의 관문 역할을 하며 친밀감을 형성합니다. 따라서 음악은 다른 어떤 예술 형식보다 훨씬 더 널리 퍼지고 광범위한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시간은 음악의 핵심 요소입니다. 이러한 시간에 대한 것은 굉장히 주관적입니다. 우리는 외부 세계에 대한 열림과 닫힘의 연속에서 리듬을 느끼는데, 그 사이 멈춤은 단순히 절대적인 시간이 아니라 자신만의 주관적인 멈춤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사로잡혀서 멈추느냐는 사람마다 극히 다릅니다.


지난 글에서 엄마 자궁에 있던 태아가 태어나면서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낸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엄마와 떨어지면서, 즉 대상을 상실하면서 주관적인 애도성이 그 리듬에 포함되어 있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멈추게 되는 것은 이 애도를 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죠. 따라서 음악에서의 시간성이란 주관적 애도를 포함하고, 잃어버린 대상과의 연결고리를 하나씩 풀어내며 전개됩니다.


위에서 소개해드린 <재즈문화사> 글에서 기술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음악에서의 애도는 연결의 해제 혹은 침묵을 통해 시간(멜로디)과 공간(화음)을 연결하는 작업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생물인류학적 연구에 따르면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음악은 언어가 발달하기 이전부터 개인과 집단 간의 응집력, 조정 및 협력의 도구였으며 생존에 선택적 이점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또한 언어는 수평적 경로를 따르고 문장의 교대가 필요한 반면, 음악은 두 가지 수직적 차원, 즉 조화와 리듬이 더해져 집단 선택의 결과로 정서적 조정과 공유를 용이하게 한다고 합니다.




♪, 청취, 분석적 청취 그리고 음악적 청취


프랑스 정신분석가 빈센트 에스텔롱에 따르면, ‘정신분석가는 내담자의 몸이 아니라 내담자의 말 속에 담긴 단어의 몸을 청진한다’라고 합니다.


음악적 청취는 소리의 유입을 물리적으로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수동적인 청취인 동시에 연결과 연결 해제, 의미화와 탈의미화의 끊임없는 작업 위에 놓여 있기 때문에 능동적인 청취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정신분석가 루이스 칸에 따르면, 음악은 청자와 음악적 대상의 만남에서 비롯되는 창조적 구축의 과정이며, 더 나아가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 정신분석가가 분석 대상의 정신적 피부를 만지듯 연주자의 신체가 악기가 만들어진 재료와 접촉하는 것을 지각한다고 합니다.


음악은 겉으로 보기에는 외부에서 우리에게 전달되지만, 음악에 집중하려면 정신분석가가 내담자의 말을 들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에 대한 집중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청취는 의식적인 의사소통을 우회하는 무의식 사이의 친밀한 관계에 기인할 수 있으며, 각 주체가 서로에게 이질적이거나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더욱더 서로에게 열려 있습니다. 또한, 재즈를 들으면 청취자는 감각적 기억뿐만 아니라 연상과 정신세계의 움직임을 시작하는 감각의 공백에 빠지게 됩니다.




♪, 재즈 청취, 그리고 청취의 미학


이번 글에서는 재즈의 음악적 특성인 '채움과 비움'을 통해 음악의 절제와 발산을 탐구해보았습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에서 나타나는 은근한 드러냄과 단도직입적인 드러냄 사이의 긴장은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감동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이는 결국 우리가 소리와 침묵 사이에서 어떻게 감정을 교류하는지에 대한 고찰로 이어집니다.


또한, 친밀감의 어원과 그 본질에 대해 살펴보면서, 우리가 음악을 통해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깊은 연결을 형성하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음악은 시간과 소리의 예술로, 우리의 감각을 통해 친밀감을 형성하고, 감정의 교류를 가능하게 합니다. 도널드 위니콧의 '관심' 개념과 연결하여, 음악적 청취는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감정 사이의 미묘한 연결을 의미합니다.


재즈는 특히 이러한 친밀감의 형성을 잘 보여주는 장르입니다. 음표와 음표 사이의 여백, 채움과 비움의 미학은 우리가 서로 다른 소리들 사이의 관계를 느끼게 하고, 이를 통해 깊은 감정적 연결을 형성하게 합니다. 재즈를 들을 때 우리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흐름 속에서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의 무의식적인 소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재즈와 어떤 친밀감을 느끼시나요?

함께 재즈문화사를 읽으며, 재즈의 매력과 그 속에 담긴 깊은 친밀감을 새롭게 발견하셨길 바랍니다.

재즈를 통해 우리 모두가 더 깊고 진정한 연결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며 연재를 마무리짓고자 합니다.







처음에는 짧은 호흡으로 10편 가량의 연재를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니 점점 재즈 이야기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정신분석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것 같아, 이번 글로 마무리 짓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연재글을 세세히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응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만약 제 글을 통해 <재즈문화사>를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이 드셨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함께 재즈의 매력을 탐구하며 깊은 친밀감을 나눌 수 있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재즈를 통해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모두들 JAZZ ^-^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재즈, 흩어지는 음을 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