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스토리 계정 없이 살아보리라 다짐 또 다짐하다가, "아, 그곳이 아니면 내 자아는 어디에다 진열할 것이며, 내 환상은 어디에다 붙여놓을 것이냐"며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마치 어릴 적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잃어버린 것처럼. 스토리를 삭제한 후에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허전함이 남아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중, 시장을 다녀온 듯한 젊은 아주머니를 마주쳤다. 갑자기 충동적으로 말을 걸었다. “저기요, 제가 스토리 앱을 탈퇴하고 지웠어요.”
아주머니가 깜짝 놀란 것은 단지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그렇게 하면 어떡해요? 거짓말이죠? 그러고 어떡해요? 그동안 올렸던 글들은?”
나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 내가 이런 이야기를 굳이 남에게 하고 있는 걸까? 엘리베이터 버튼을 다시 쳐다보았다. 9층 버튼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 이 아주머니는 9층에 사는구나.” 나는 생각했다. 나는 33층에 사는 사람이니까, 저 아래라면 헛된 꿈을 꾸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9층과 33층, 그 사이에는 마치 두 세계가 놓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아주머니의 표정이 변화했다. 약간의 경계심과 함께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33층에 살면서 왜 그걸 지웠을까요? 그런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기 자아를 남들 앞에 두어도 되고, 그렇게 하는 것이 필요할 지도 모를 텐데요." 그녀의 말은 마치 도전처럼 들렸다.
“아주머니, 스토리 하세요?”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물었다.
“당연히 하죠. 그거 안 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걸 지우다니! 살아가는 데 아주 불편할 텐데.” 그녀의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약간의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그럼 앞으로 어떡하려고요? 사람들하고는 어떻게 소통해요?”
나는 갑자기 호기심이 일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도 지금 바깥에서 장 보고 들어오셨잖아요. 스토리에서 산 게 아니고요. 살아가는 데 스토리가 필요하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그녀는 나를 마주 보며, 약간의 웃음을 참으려는 듯 입을 다물었다가, 마침내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중요한 걸 모르고 있군요.” 그녀가 말했다. “그걸 지운다고 해서 시간을 표면으로 사는 걸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시간을 표면으로 산다’는 표현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 이 아주머니는 그저 시장에서 장을 본 것이 아니라, 스토리를 통해 삶의 일면을 꾸미고, 그것을 현실로 가져온 것이겠구나. 어쩌면 아주머니는 스토리 속 자신의 자아를 진지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스토리는 단순한 앱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또 하나의 세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9층에 멈추고 문이 열렸다. 아주머니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 직전, 나를 한 번 더 쳐다보며 말을 던졌다. "당신 같은 사람들은 스토리를 지운다는 게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걸 모를 것 같아서 그래요. 그냥 해보는 척하는 거죠."
그녀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나의 내면을 꿰뚫어 본 것처럼 보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는 잠시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12층에 멈춰 서더니, 다른 이웃이 탔다. 12층의 남자는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스토리 앱을 지우셨다고요? 요즘 그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셨나요?”
그의 눈빛에는 어떤 확신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하지만 그게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전 그냥 진짜 나를 찾고 싶어서 그랬거든요.”
그는 약간 웃으며 말했다. “진짜라는 건 뭘까요?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하지만 현실과 디지털의 경계는 점점 더 흐려지고 있잖아요. 중요한 건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어떤 공간에서든, 그곳에서 의미를 찾고, 자신을 발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엘리베이터는 12층을 지나 계속 올라갔다. 나는 그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곳에서 의미를 찾고, 자신을 발견하는 것…”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나는 그 문장이 점점 더 마음에 와닿았다. 우리는 각자의 층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결국 우리가 바라는 건 같은 것이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마침내 33층에 도착했고, 문이 열렸다. 나는 천천히 집으로 걸어 들어가며,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매웠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정말 중요한 건 무엇일까?”
그 순간, 손목시계가 다시 한번 반짝이며 시간을 알렸다. 나는 시계를 바라보며, 그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이 진짜 현실인지, 아니면 그저 또 다른 형태의 환상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결국 나는 스토리를 지우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일지 모르니까. 나는 다시 소파에 앉아 스토리 앱을 열었다. 그리고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간을 표면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제는 그 답을 찾기 위한 새로운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브런치 생활을 한 지, 벌써 몇 해가 지난 것 같아요. 햇수로 2년인지, 3년 인지도 헷갈리네요.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인 이유는 이제 희미해졌지만, 그동안 이곳에서 많은 소중한 인연을 만났습니다. 올해 들어 문득문득 탈퇴를 할까 고민하게 됩니다. 함께 글을 쓰던 동료 작가님들이 하나둘 떠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져요. 얼굴 한번 뵌 적은 없지만, 때로는 직접 대면하는 사람들보다도 더 깊고 친밀한 감정을 느끼곤 했습니다. 오독과 오독 사이에서 생긴 상처들이 있다면, 그 또한 너그러이 품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곁에 계시지 않는, 브런치 세상을 떠나간 작가님들. 저는 작가님의 얼굴은 알지 못하지만, 목소리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어요. 섬세하고 아름다웠던 그 음성, 차분한 문체와 순수했던 감성... 작가님들이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돌아와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제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지만, 그것은 제 욕심일 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작가님들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부디 어디서든 평안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