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할지 말지 조금 망설였습니다. 제 글이 혹시라도 누군가의 신념과 믿음을 부정하는 것처럼 읽힐까 싶어 단어 하나를 고르는데도 고민하게 되더라구요. 그럼에도 용기내어 글을 쓰는 이유는 더 많은 분들이 함께 고민해주셨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네팔에는 개인 선교자뿐만 아니라 종교 기반을 가진 국제구호 단체가 상당한 규모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수혜자의 종교와 무관하게 지원하는 단체도 있지만 개종을 전제로 선택적 지원을 고집하는 곳도 많습니다. 해당 단체에서 운영하는 종교 시설에 매주 출석하는 가정에 경제적 지원을 약속한다던가, 집안의 아이가 개종하면 장학금을 지원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상대적으로 '믿음'을 전파하기 쉽다는 이유로 방과후 교실이나 고아원을 기반으로 활동을 하는 경우도 꽤 많이 보아왔습니다. 지난주에 잠시 언급했던 관광과 봉사활동이 융합된 볼룬투어리즘과 비슷한 결에서, 선교와 봉사 그리고 관광을 겸하여 2주에서 한 달 정도의 단기 코스로 네팔에 방문하고 선교사가 활동하는 고아원이나 마을에 들러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프로그램도 많습니다.
참가자들은 적게는 수십만원 많게는 수백만원의 비용을 기부 명목으로 지불하고 '선교봉사' 활동에 참가합니다. 이러한 단기 프로그램의 문제점은 첫째로 그 활동의 목적이 아이들의 교육권 신장이나 의료 환경 개선보다 믿음의 전파에 있다는 것이며, 둘째로는 장기적인 지원 계획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의료나 교육 등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5년에서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활동하시는 종교인들을 만나뵌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지진으로 무너진 이후 컨테이너 박스용 철판과 철골을 엮어 3만루피(30만원)에 얼기설기 지은 간이 주택들 사이로 홀로 우뚝 솓은 4층짜리 교회가 이질적이고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아이들 앞에 덩그러니 달밧 그릇을 놓고 한국어로 된 찬송가를 부르지 않으면 밥을 못먹게 한다던지, 마을의 정기와 민속 신앙을 상징하는 나무 아래에 물을 길어놓고 기도를 드리는 마을 아주머니들을 향해 한 선교사가 잡신아 물러가라며 소리를 지르던 장면은 도저히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최근 네팔 남부 떠라이 지방에서 온 친구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본인의 고향 마을에도 외국에서 온 선교사가 찾아왔었다는 이야기를 하던 그녀는 평온한 얼굴을 하고 몇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신은 다른 이름과 형상을 하고 그저 우리 곁에 존재할 뿐이야. 우리가 그렇게 믿는다면 저 길가의 돌에도, 저 나무에도, 고요한 호숫가에도 신은 존재할 수 있어. 서로 이름이 다른 신을 믿는다고 해서 우리가 서로에게 각자의 믿음을 강요하거나 다툴 이유는 될 수 없지."
저는 종교를 믿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믿음과 신념의 영역은 제가 헤아릴 수 없는 드넓은 해역과도 같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저 그리고 싶은 미래가 있다면 나의 소중한 믿음이 누군가의 믿음을 부정하고 상처입히지 않으며, 나의 믿음도 당신의 믿음도 함께 안녕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