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힘든 계절을 걸어야만 하는 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꼭 작년의 제가 그랬습니다. 삶을 향한 열정도 열의도 순식간에 닳아 없어질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지금은 제 마음이 완연하기 때문에 비로소 이 글을 덤덤하게 적을 수 있지만, 제 부모님도 삼시세끼를 구독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 살짝은 떨립니다. 물론 제가 매주 몰래 몰래 구기고 찢어서 버렸던 진단서와 처방전, 약 봉투들을 이미 보시고도 모른척 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이 감정의 타래를 조용히 되짚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런던의 길거리입니다. 미처 끝내지 못한 리서치 페이퍼로 머리를 점점이 채운 채 막차가 모두 끊긴 한산한 거리 사이로 꾸역꾸역 자전거 페달을 밟아 기숙사로 돌아가던 시간들이 수많은 이론과 논문보다도 그저 선명하게 제 안에 남아있습니다.
가을 바람이 불 무렵 시작한 석사는 런던의 겨울과 맞물려 건조하고 몹시 추웠던 것도 같습니다. 울적한 기분을 떨쳐내려 몇 번 짧은 여행을 떠나기도 했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정신과에 문을 두드릴 수 있었던 건 그로부터 딱 반 년 뒤의 일이었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웅크려 밑으로 한없이 가라앉다 떠오르기를 반복했습니다. 마치 누군가 양손을 넓게 펼쳐 내 가슴을 세게 내리 누르는 것 같았어요. 심장이 등을 뚫고 침대 밑으로 가라 앉을 것만 같았습니다. 제 세상이 완연하게 가라 앉은 날이었습니다. 취업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원인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코로나 상황이 무색하게도 여기저기서 일은 끊임없이 계속 들어오고, 늘 꿈꿔왔던 직장에 취업하고, 이력서에 빛나는 커리어가 차곡차곡 싸여가는 그런 나날이었습니다.
애초에 슬픔의 이유를 찾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람의 마음은 원인을 안다고 해서 해결되는 공식이 아닌걸요. 난 더 잘하고 싶은데, 더 잘할 수 있는데, 가라앉기 위해 시작한 일들이 아니었을텐데. 혹시 지금까지의 글을 보고 철인 같은 강한 사람을 생각하셨다면 기대와는 조금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속이 좀 배배 꼬여있는 것도 같습니다. 봄이 올 때 즈음 시작한 치료는 처음엔 영 차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더운 여름 날씨와 맞물려 더 나빠지기만 했습니다. 어지러운 매미 소리와 함께 턱턱 막히는 숨.
때문에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다시 찾아온다는 것이 조금 두렵기도 했습니다. 지금껏 주춤하거나 멈춰서 본적이 없어서 더 그랬습니다. 이루고 싶은 목표와 꿈을 향해 그저 내달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네팔에 오고 나서는 완전히 약을 끊었습니다. 그럼에도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은 나날이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일들 하나 하나에 진심으로 마주하고, 기대처럼 잘 풀리지 않는 업무에 짜증을 내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면서 시간은 잔잔하게, 하지만 그 어떤 멈춤도 정체도 없이 그저 흘러갔습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사계절을 보내고 여름의 끝자락에 서서 다시금 생각합니다. 이제 나는 정말 괜찮아진 것이 맞나? 아니 애초에 괜찮다는 게 뭐지? 누군가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있지만, 아마 그 누구보다도 도움이 필요했던 건 저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은 네팔이 나를 필요로 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하염없이 네팔을 필요로 했던 것이었을지도.
그럼에도 비가 쏟아지고 난 후에 선선하게 부는 바람이 못내 반갑고, 앞으로 찾아 올 그저 그런 잔잔한 나날들이 조금은 기대됩니다.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나를 위한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정신없이 업무 메일을 확인하고, 바쁜 하루를 끝내고 멀리 떨어져 있는 그리운 사람들과 종종 영상 통화를 하는 그런 일상이요.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나는 나고, 당신은 당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