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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지 May 28. 2024

내가 지도 밖으로
행군할 수 없는 이유

MZ가 국제개발협력을 하면 어떻게 될까?

이 이야기는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같은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될 수가 없다.

이 업계는 애초에 그런 극적이고 감동적인 서사가 나올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져있다.


나는 아프가니스탄까지 와서 지도 밖으로 단 한 걸음도 못뗐다. 왜냐하면 이 나라에 발을 들인 시점부터 일 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컴파운드 안에 갇혀 지냈기 때문이다. 다른건 모르겠지만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방탄 조끼를 입고 건물 잔해를 뒤지며 먼지 범벅 땀 범벅 피 범벅이 되어 뛰어다니는 게 아닌 것만은 일단 매우 확실해보였다. 실제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컴파운드 안에 위치한 사무소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데이터를 분석하고 차트를 만들고 레포트를 쓰면서 보낸다. 물론 불만은 전혀 없다. 어차피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되는 언어인 다리나 파슈토도 못하고, 덤으로 체력까지 약한 사람이 현장에 나가봤자 고액의 경호 비용과 현지 직원들의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낭비한 끝에 그들의 발목이나 붙잡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아마 필드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카불 컴파운드에 오순도순 모여사는 유엔 직원들은 그저 온실 속의 화초로 보일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인도주의 활동가라고 하기엔 우리는 높은 연봉과 파격적인 휴가 제도에 금세 만족해하는 너무나 전형적인 회사원이었으며, 그렇다고 통상적으로 정상의 개념에 부합하는 회사원이라고 부르기엔 자극을 쫓는 이질적인 별종이었다. 


 국제개발협력이란 도대체 뭘까? 

한 번 구글에 검색해보자. 국제개발협력이란 국가간, 또는 개발도상국 내에 존재하는 개발 및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 해결을 통해 인간의 기본권을 지키려는 국제사회의 노력과 행동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렇구나. 이 업계를 적당히 찍먹해본 입장에서 몇 마디만 더 얹고 싶다. 국제개발협력 및 인도적 지원 업계는 번지르르하게 포장된 겉껍데기에 비해 막상 뚜껑을 열면 구린내가 진동하는 모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 중 대표적인 모순은 이 업계가 자리잡은 근간에 있으며, 다른 하나는 이 업계에서 그 구성원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일단 애초에 개발협력이 필요한 이유가 뭘까? 이 세상에 분쟁과 빈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분쟁과 빈곤은 왜 존재할까?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걸까? 세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프리셋 값으로 자동 설정되어버린걸까? 단언컨대 아니다. 모든 분쟁과 빈곤은 다분히 의도적인 선택의 결과로 하여금 만들어진다. 총을 만드는 놈도 그 총을 가져다 파는 놈도 그 총으로 직접 방아쇠를 당겨 사람을 쏘는 놈도 인간이다. 누군가는 굶주릴 수 밖에 없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만든 놈들도 인간이다. 왜 지구 한 편에서는 가뭄 때문에 농작물이 거의 자라지 않는데 다른 한 편에서는 사람이고 가축이고 마을이고 다 쓸려내려갈 정도의 비가 내리는걸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일견 인간의 선택과는 무관해보이는 자연재해조차도 그러한데 분쟁과 빈곤에는 보다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개발학이 유명한 나라로는 영국이 대표적이다. 적극적으로 타국을 착취함으로서 부의 기반을 쌓아올린 나라에서 개발학이 가장 발전했다니 이미 느낌이 쎄하지 않은가? 이 학문은 일단 그 기원부터가 글러먹은것이다. 개발학을 전공하면 학교마다 학풍이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초반 한 달 동안은 개발이 필요한 환경을 만드는 것에 지대한 공헌을 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 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이 과정에서 지금껏 한 톨의 의심없이 음식을 씹어삼키듯이 해왔던 공부, 당연하게 믿어왔던 가치관, 그리고 졸업 후 계획했던 모든 일들이 이 불평등한 구조를 고착화하는 것에 일조하지 않을 보장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여기서 일차적인 현타가 온다. 

그들은 고마워 할 필요가 없고 우린 감사를 받을 이유가 없다. 

내 몸이 고달프고 일이 힘들며 박봉이어도 누군가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선한 마음하나로 이 업계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은 사실 이 업계에 가장 발을 들여서는 안될 사람들이다. 사실 그런 보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당신을 쳐다보는 아이들의 불신 가득한 의심 어린 눈초리에 당신은 아마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무너져 내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가슴에 손을 얹고 과거 수십년 동안 이 땅을 전쟁터로 쓴 자들이 누군인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본다면 애초에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지금 당장 임시방편으로 내밀어진 밀가루와 렌틸콩 몇킬로그램에 고마워 할 필요가 없으며, 그저 사업을 집행하는 대리인에 불과한 유엔 직원은 감사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 돌이나 맞지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그 다음 모순은 바로 이 업계에서 구성원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개발협력 꿈나무였던 나는 대학원을 다니면서 매일같이 구직 공고를 찾아 헤맸다. 대학원만 졸업하면 그야 물론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더라도 꿈꾸던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출근할 수 있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다. 물론 그런 환상은 채용 공고란에 적힌 자격 기준과 세전 연봉을 본 순간 아주 산산하게 부서져내렸다. 석사까지 했으면 좋겠고, 영어와 불어를 포함한 3개 국어 능통자였으면 좋겠고, 국제개발협력 업계 경력도 2년 이상 있었으면 좋겠는데 공고에서 제시하고 있는 연봉은 최저 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월급을 조금이라도 적게 주려는 단체들의 노력은 정말 눈물날정도로 진부하면서도 동시에 창의적이었는데, 업계에 갓 입문한 견습 노동자들을 저렴한 가격에 부려먹으면서 전문가로 성장할 기회는 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엿보인다는 점이 매우 한결 같으면서도 인상 깊었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체험형 인턴", "활동비를 일부 지원받는 직업체험 프로그램 참여자", "전문 봉사단" 등의 자매품들은 모두 무난하게 동의어로 해석될 수 있겠다. 



자, 그럼 국내의 한 개발협력 단체에서 올린 공고를 예시로 살펴보자.


- 재학, 대졸 또는 석사 학위 후 2년 이내

- 영어 회화, 작문 가능자 (불어 등 제2외국어 가능자 우대)

- MS 오피스 사용 가능자 

- 국제기구 업무에 관심이 많은자

- 해당 활동은 소정의 활동비를 지급받는 XX시 직업체험 프로그램 참여자 개념 (정식 인턴은 아님)

- 해당 활동에 대한 참가확인서가 발급되며 참가자는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는다 (1일 최대 4만원) 


국제개발협력 업계에는 유독 월급을 월급이라 부르지 못하는 공고가 많다. 특히 아직도 몇몇 단체에서는 “너 좋은 일하러 온거지 돈 벌러 온거 아니잖아”라는 문화가 버젓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결국 한국에서 국제개발협력이란 세전 180만원 혹은 그 이하로 받으면서 석사까지 할 경제적 여력이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혹은 해외 유학 경험이 있었던 특정 계층의 사람들만 구매할 수 있는 허울 좋은 경험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당연히 유엔 인턴도 마찬가지다. 일부 기구를 제외하고 아직도 많은 유엔 기구에서 인턴은 무급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월급을 받지 못하는 상태로 이십대 중후반을 버텨낼 수 있는 중산층 이상 가정 출신이 아니라면 이 지난한 과정에 뛰어들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결국 유엔에 남아 근무하는 한국인들의 프로필을 모아보면 출신 학교, 가정 환경, 경제적 수준 등이 상당히 유사한 지점에 수렴하는 것에는 다 이러한 배경이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젊음과 아이들을 향한 알량한 마음을 바치고, 
그 대가로 얼마만큼의 보람과 함께 푼돈이 돌아오는 이 상황에 넌덜머리가 났다. 


주변엔 대학 졸업 후 수년에 걸쳐 대학원 학비를 스스로 벌어서 오거나 학자금 대출을 끼고 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기에 적어도 부모님이 학비를 지원해주시고 생활비만 감당하면 되는 나는 상황이 매우 몹시 좋은 편에 속했다. 그럼에도 런던의 물가에는 허리가 휘었고, 생활비는 언제나 빠듯했다. 특히 졸업 이후에 바로 취업이 안될 수도 있는데 그 기간을 또 무급에 가까운 박봉으로 버텨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자체가 내 가슴을 강하게 억죄어왔다. 그러다가도 도전조차 해보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텐데 이렇게 불평을 내뱉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위선이고 기만이라는 생각에까지 다달으면 기분은 한 층 더 바닥으로 처박히기 일쑤였다.


어느 날엔 테스코에서 파는 1파운드짜리 쿠키를 점심 저녁 두 번에 걸쳐 나눠먹었다. 또 다른 어느 날엔 코로나 때문에 로마에 있는 국제기구를 방문하는 학과 연수가 취소된 것에 실망하는 친구들 앞에서 참가비를 내기엔 빠듯했던 지갑 사정을 저울질하며 속으로 내심 안도하는 내 모습이 미웠다. 지금껏 읽어왔던 국제개발협력에 관한 책과 논문에 이런 구질구질한 내용은 단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았기에 나는 이 얼룩진 감정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가 언제나 의문이었다. 나는 내 젊음과 아이들을 향한 알량한 마음을 바치고, 그 대가로 얼마만큼의 보람과 함께 푼돈이 돌아오는 이 상황에 정말이지 넌덜머리가 났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이 꼭 하고 싶었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하고 싶었다. 하루에 8시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평생 일하면서 써야만 한다면 오로지 이 일에 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빈약하고 기만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이기심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랬다. 그저 일하다가 죽어도 후회가 남지 않을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 위선 밖에 없는 자리임을 알아도 그 알량한 위선자 역할이나마 부디 나에게 주어지기를 바랬다. 


이왕 위선을 할거면 제대로 해라


때문에 그 어떤 노력도 다하지 않고 기존의 편견을 재생산하는데 기여한다면 그건 개발협력업계 종사자로서 남은 일말의 직업 윤리를 저버린 것이며, 게으르고, 멍청한 것을 넘어 몹시 비겁한 행위에 가담하는 것이다. 아. 아프리카의 불쌍한 아이들. 굶어죽어가는 아이들. 밥을 못먹어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들의 사진을 허락도 받지 않고 찍어 자극적인 문구를 붙여 기부금을 모으는 행위. 개발협력을 빙자해 특정 종교로의 개종을 암묵적으로 강요하거나 그 선택지를 의도적으로 좁히는 행위. 특색있는 여행을 체험해보고 싶은 여러분께, 시골쥐 아이들이 떠나는 단 한 번의 도시 탐험기 등의 문구로 아이들을 데리고 장사하려는 인간들은 특히나 죄질이 나쁘다고 할 수 있다. 받은 기부금이 100억이던 10억이던 1억이던간에 그 액수에 관계없이 우리에겐 제한된 예산을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시기에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다. 조막만한 뇌를 비틀고 쥐어짜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한다. 그렇게 도출해낸 방법이 사실은 최선이 아니었을지라도, 그럼에도 최선을 지향하려는 궁리를 멈추면 안된다. 그제서야 비로소 수헤자들에게 갈 기부금에서 쪼개진 월급을 나눠 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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