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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중 탈레반의 경호를 받았다

근데 누가 누굴 경호해

by 최승지

이번 출장지는 아프가니스탄 남부에 위치한 칸다하르, 우르즈간 그리고 자불이었는데, 아마도 전 세계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나라일 아프가니스탄에서조차 손에 꼽힐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칸다하르는 미군이 떠나고 탈레반이 재집권한 이후로 사실상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적 수도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보면 되는데, 특히 그 옆 동네인 자불은 탈레반이 처음 시작된 장소이기도 하다.


휴가 일정이 애매하게 꼬여 남부 출장 직후에 경유 비행기로 바로 크로아티아로 갈 정신나간 계획을 세워버린 나는 수트 케이스 한 편에는 아바야와 히잡을 대신할 스카프, 다른 한 편에는 크로아티아의 해변을 만끽하기 위한 비키니와 크롭 탱크탑 물안경과 오리발을 야무지게 챙겼다. 유엔 항공은 연착 지연 스케줄 변경을 밥 먹듯이 하는 항공사이기 때문에 과연 오늘 비행기가 무사히 뜰 것인가 라는 고민을 잠깐 했었지만 놀랍게도 정시 출발 정시 도착이었다.



공항 출입문을 나서자 마자 새롭게 지은 것으로 보이는 I LOVE KANDAHAR 조형물 옆에 최근 아프간에서 맹렬하게 유행하고 있는 에너지 홍삼 음료 프로모션 조각상이 나를 반겼다. 그 옆에는 탈레반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웰컴 투 탈레반 월드. 공항에서 사무소가 위치한 칸다하르 시내까지 이동하던 중 거리 풍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니 밖을 돌아다니는 여성이 정말 거의 없었다. 공항에서 컴파운드까지 약 19km, 20분 넘게 달리면서 딱 2명 봤다. 온 세상이 나를 상대로 연극을 하는 것만 같다.


여름에도 30도 초반 기운을 유지하는 카불과는 달리 남부에 위치한 칸다하르는 딱 만두 찜통같은 날씨였다. 끔찍하게 더웠다. 차량 안에 놓인 온도계에는 45도가 찍혀있었다. 칸다하르로 떠나기 전에 받은 세큐리티 브리핑대로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게 헤어 밴드로 머리를 꽁꽁 싸메고 그 위에 스카프를 걸치고 아바야를 입었다. 그 결과 바깥을 나선지 10분 만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잘 익은 찐 만두가 되었다. 이런 날씨에 필드를 돌아다닌다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다. 물론 이 푹푹 찌는 날씨에 필드 데이터 수집 계획을 세우고 조사원들을 에어컨 하나 없는 마을에 파견해 하루종일 뺑뺑이 돌리는 스케줄을 짠 건 나였기 때문에 불평을 할 수는 없었다.


총 맞아도 응급 처치는 셀프란다.


인터내셔널이 많은 카불 사무소와 달리 칸다하르 사무소는 구성원 대부분이 아프가니스탄 남성 직원들이며 확실히 보수적인 분위기라는 소문처럼 굉장히 조용한 분위기였다.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는 내셔널 여성 스태프는 한 명도 없고 (이 지역에서 여성은 사무소 출입 및 외출이 안되기 때문에 전원 재택 근무 중이다), 딱 한 명 있는 인터내셔널 여성 스태프도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오피스를 통틀어 여자는 나 하나였다.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신기하게도 흔히 생각하는 식당 건물이 아니라 웨어 하우스에 있을 것 같은 초대형 천막 안에 카펫을 깐 형태였다. 즉, 직원들 모두 사이좋게 옹기종기 바닥에 앉아 밥을 먹어야 하는 구조이다. 밖에서 보면 여기가 식당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천막이었는데 아마 살벌한 더위 때문에 최대한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가려놓은 것 같았다.


천막을 열고 안에 들어가니 당연히 전원 아프간 남성 스태프들밖에 없었고 나는 적당한 자리에 혼자 앉아 야무지게 밥을 먹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밀린 일을 몇 개 처리하는 도중에 모니터링 팀 직원이 끊임없이 먹을 것을 권했다. 커피, 사탕, 케이크, 요즘 남부에서 제철이라는 멜론, 다시 차, 견과류.. 필드에 가면 살이 빠지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이러다간 살이 붙어서 갈 판이다. 도저히 더는 못 먹겠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다음날 아침 일찍 자불로 떠나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잽싸게 튀었다. 내일은 아침 9시에 자불의 칼랏이라는 도시로 떠난다. 3일 동안 트레이닝과 데이터 수집 참관 & 피드백을 하고 칸다하르로 잠시 복귀했다가 차량을 교체해서 다시금 우르즈간 지방의 타린콧으로 이동하는 일정이다. 즉, 그 날은 하루에 9시간 차를 타야한다.


다음날 아침. 예상대로 통역과 현지 안내를 겸한 필드 오피스 직원들과 경호 인력 10명, 그 외 조사원 5명으로 구성된 대형 집단 중에 여성은 나 하나였다. 출장 전, 남부에서는 남녀 간의 신체 접촉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사고를 당한 경우 아무도 너를 도와줄 수 없으니 차량 뒷켠에 실린 응급 키트를 찾아 알잘딱깔센으로 응급 처치를 하라는 안내를 받은터라 별로 놀랍진 않았다. 탈레반 앞에서는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데 특히 대놓고 남성 직원에게 지시를 내리거나 리드를 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고 안전 담당관이 신신당부를 했었다. 한 평생을 독불장군처럼 살아왔던 나로서는 참 힘든 요구였다.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는 무선 전파가 닿는 구역을 벗어나기 때문에 규정상 경호 인력을 동반해야한다. 차가 한 대 밖에 없으면 유사 시에 도망치기가 상당히 곤란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방탄 처리가 된 유엔 차량이 2대, 그 앞뒤로는 장총 권총 수류탄으로 시-원하게 풀무장을 때린 탈레반이 차 한 대 당 각 5명씩, 총 10명이 탄 경호 차량이 2대가 붙는다. 4열 종대로 늘어선 이 과도하게 요란한 행렬을 도대체 누가 습격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여기서 재밌는 건 이들은 사실상 이 집단에서 납치되기 딱 좋은 외국인인 나를 경호하기 위해 파견되었지만, 동시에 여성인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해야 한다는 점이다. 열린 교회 닫힘같은 소리다. 이 탈레반 아재들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뷰를 위해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는 내 주변을 5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쪼르르 따라다녔는데 그 어느 누구도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는 않았다.



물론 무장 군인들한테 둘러쌓여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술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에 눈치껏 잽싸게 튀어서 여성 수혜자와 인터뷰한다는 명목으로 집 안 가장 안쪽에 있는 부엌으로 냉큼 들어가버렸다. 가족 외의 남성이 허락없이 여성만 있는 집 안에 들어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여기까진 못 쫓아오겠지.



이번 출장은 하루에 2개씩, 총 스무개의 마을을 방문하는 일정이다. 가장 처음 방문한 곳은 자불 지방 Qalat 시내 근교에 있는 마을이었다. 상황을 파악할 겸 먼저 마을 촌장님과 인터뷰를 했는데 이 할아버지, 무려 아내가 셋에 자식은 8명이었다. 연이어 방문한 두 번째 마을은 산꼭대기 언덕 위에 대여섯 가구가 모여있는 정도인 작은 규모였다. 언덕 위에 있는 학교를 기준으로 동서를 나누어 각각 조사원을 배정하고 담당 구역을 조사하기로 했다. 인터뷰 중 옆으로 아이들이 수레 차를 끌고 나귀 사료로 팔기 위해 누군가가 먹다 버린 수박 껍질을 열심히 주워담고 있었다.


그 다음날에는 Seuri라는 지역에 있는 마을에 방문했다. 마을 옆으로 작은 개울이 흐르는 곳이었다. 이 마을 아이들 많은 수가 피부병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얼굴과 머리가 벗겨져서 분홍색 살이 보이는 아이들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학교는 도보 왕복 3시간 거리에 있는데 선생들이 제대로 출근하지 않아 아이들이 기껏 학교에 가도 선생이 없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했다. 수확철이고 바빠죽겠는데 학교를 왜 보내냐 그냥 일시키고 말지라는 부모가 대부분인 것 같았다. 어떤 여자 아이 하나가 다가와 "나 학교를 못가고 있는데 너 혹시 교과서 주려고 온거야?" 라고 물었다. 나는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 가면 하루에 고열량 영양 비스킷 한 팩을 받을 수 있다고, 그리고 한 달 동안 제대로 출석하면 해바라기 오일 한 통을 받을 수 있으니까 꼭 학교에 가렴. 무려 5L 짜리야. 가족이 다 같이 한 달 동안 쓸 수 있는 양이지. 부모님이 좋아하실거야. 이따위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마을 구석에 자리를 잡고 인터뷰를 하고 있던 중 얼마 지나지않아 아이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었다. 처음엔 멀리 떨어져서 쳐다보다가 호기심을 못이기고 다가와 내 옷에 묻은 먼지와 흙들을 그 작은 손으로 털어주곤 배시시 웃음짓곤 했다. 양 옆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내 손을 꼭 잡고 이야기를 들었다. 이 손을 놓고 싶지가 않았다. 한 아이가 자기가 끼고 있던 반지를 나에게 끼워줬다. 너희는 왜 이렇게 상냥하고 따스한걸까. 왜 만난지 30분 밖에 안 된 이방인에게조차 웃음 지어 주는걸까. 왜 내가 보답해 줄 수 없는 만큼의 마음을 허물없이 나눠주는걸까. 차가 떠나는데도 아이들은 계속 뛰어서 손을 흔들며 따라왔다. 나는 이제 도무지 모르겠다. 이 업계에 들어온지 햇수로 어느덧 5년이 되었지만 받은 마음에 보답하는 방법도, 이 일이 옳은 일이라는 확신을 잃지 않는 방법도, 그리고 적당히만 괴로워하는 방법도.


내가 지금껏 당연하게 누렸던 그 모든 기회들이 이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주어졌다면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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