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의 무게

인생 변곡점 앞에 꼬꾸라진 신념

by Toi et Moi

나이 앞자리에 삼자를 붙이는 변곡점에 이르자 삶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여태껏, 함양해왔던 뜻과 가치관이 상황에 의해 참 쉽사리 가벼워지고 일그러졌다. 나름 소신과 가치관대로 살아왔고 삶을 형성해왔음에도, 정작 3자를 붙인 변곡점에 이르자 원했음에도 원했는지조차 모르겠다. 얼마나 허망하고 웃긴가?


신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본다. 신념은 사전적 개념으로는 ‘자기 자신이나 세계에 대한 의미부여의 총체’를 뜻한다. 그 총체는 반드시 지켜내야 할 무엇으로, 그렇게 살아낼 것으로 있었으나, 신념의 무거움은 조약돌 무게만큼은커녕 티슈 한 조각에도 지나지 않았다. 저절로 당장에 얼마든지 신념과 행동은 분리가 가능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막강한 상황의 힘 앞에 어떤 진실, 진심조차도 꼴까닥 가볍게 금방이고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히고 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머릿속 관념과 신념만을 탄탄히 한다 한들, 조금만 시험이 주어지는 상황이라면, 쉽사리 뒤집어질 수 있다. 생각으로 일구어왔으니 그러하다고 착각한 것일 뿐, 그렇게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나 관념은 인생살이와 밀접한 듯 동떨어져 작용한다. 상황 변수 앞에서도 신념을 삶 속에서 어떻게 쓸지 그리고 어떻게 구현해내며 살아갈지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축적된 개념과 이념만큼이나 허무맹랑하게 사그라드는 게 있을까? 어쩜 그동안 그냥 허상과 개념만을 망상처럼 믿으면서 나라고 생각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신념과 행동이 상충되고 마는 상황에서야 신념을 버리는 것이 더 손쉬운 일이라. 인간은 신념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나 또한 화장실 들어갈 때 나갈 때 마음이 달라지는 간사한 인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음을 말이다. 당장의 손아귀에 잡히는 이익과, 욕망 실현 앞에 서서, 감정이 동하는 것 앞에서 속수무책임을 말이다.


드글거리는 욕망의 소굴을 지켜보며, 뻔 하디 질 낮은 욕망조차 이렇게나 빤빤히 당당히 고개들 수 있음을 본다. 거꾸로 내게 물어본다. 그들을 아니꼽게 바라보기 전에 스스로는 그렇게 욕망해보았는지 말이다. 나는 무엇을 원하나? 뚜렷하고 선명하게 욕망해보지 않았다. 아니 못 한 것인가? 안 한 것인가? 아니면 이 조차도 숨기나? 그렇기에 욕망을 부리지 않음에 평범할 수 있었던 것이다. 평범하고 유순한 사람들이, 세상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이 이리저리 자신도 모르게 치이는 이유이다.


욕망의 움직임들, 분출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욕망하지 않음이 어찌 말이 되지 않은 것인지, 욕심부리지 않음이 얼마나 성인군자, 공자 같은 말로 포장한 우스운 것인지 말이다. 이제야 결핍을 느끼는 것일까? 노골적인 질 낮은 욕망이 아니라면 더 당당히 드러내 놓아도 좋지 않을까?


부질없고 소용없는 개념과 관념에 치우쳐 사는 건 가짜다. 관념, 이념 생각에 고취되어 만취되었을 뿐이다. 결국 독보적인 욕망이 움직이게 한다. 당장 발 벗고 뛰쳐나가게 하는 것임을 말이다. 강력한 원함. 원함에 손을 들어준다는 것, 숱하게 보지 않았는가? 평범한 일상에 길들여져, 난 욕구를 철회했나? 욕구가 무엇인지도 몰랐나? 아니면 뭉게 버렸나... 이조차 눈 감았는데 눈뜨는 각성의 순간이다.


가면인지 조차도 몰랐던 가면을 한 꺼풀 벗겨 내려놓는다. 도대체 욕망 정체가 무엇이냐? 현실의 탈을 벗어던지고 속내를 본심을 묻는다. 여러 겹의 포장으로, 남들이 원하는 만큼 적당 선상에서 규정할 것도 아니다. 아닌 척하는 욕망, 거세된 욕망이 아닌 진짜 원함으로 기름기 빠진 구멍 난 의식을 메꾸려 한다.


* 여러분의 신념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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