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쓸쓸한 날이었다. 어떤 생을 살고 있는 걸까? 방구석에 틀어박혀 상념에 잠긴다. 지금. 네모 박스 속 삶이다. 아침의 상쾌한 공기를 폐 속 깊이 들이마시고, 싱그러운 기운을 느껴보기도 전에 네모 상자 안에 들어간다. 네모 테이블 속 시간을 보낸다. 네모 공간에 이은 네모난 시간 테이블이다.
어찌할 수 없는 인위적 통제로 야기된 시간구조 속에 박혀있다. 더 깝깝하게 격하게 올라오는 것은 시간 감옥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다. 타임 테이블에 갇힌 제한된 총량 안에서 아주 비좁게 움직여야 한다. 짜인 시간과 돈에 속박되어 있음을 느낀다. 시간에 속박된 채 한 번뿐인 삶을 흘려보내 버리고 싶지 않다. 시간의 진창 속에 내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음이 더 강렬히 요동친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이 온다고 했던가. 맞다. 딱 그렇게 왔다. 내 인생살이의 변곡점에, 시간에 붙들려 이리저리 호소만 늘어날 뿐, 어떤 막막함이 있다. 쏜살같이 흘러가버리는 시간에 조급함과 시간 부족을 주야장천 호소하지만, 시간을 마구 써버리는 태연함도 있다. 결국 이리저리 탓해가며 스팀 받아 뿜어대도, 별 수 없이 꾸역꾸역 네모 속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는 옴짝달싹하지 않은 채, 시간을 왕창 흘려보내 버리고 만다.
나이를 먹어가며, 거짓말처럼 절절히 와 닿는 한 가지는, 인생은 참 짧디 짧다는 것이다. 거짓말처럼 늘어나는 나이의 숫자가 어떤 압박과 부담이 되는 것일까? 갈수록 쏜살같은 시간의 흐름에, 시간을 아까워하면서도, 지극히 평범하게 굴러가는 보통의 나날들이 굴레처럼 느껴진다.
가슴이 늘 지지직거린다. 수신이 끊긴 TV 소음처럼 지지직거린다. 무엇이 수신이 안 되고 무엇이 송출이 안 되길래 말이다. 이러다 외부 자극 수용체로만 기능하다 죽어버리면 어쩌지... 이렇게나 문제의식 투철하게 불만만이 부풀어 오른다.
새로움이 전무한가? 못 느끼는가?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시간에, 그토록 원하는 날과 자유로운 시간 사용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막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일어날 일을 당장 발생시키기 위한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얼마나 익숙한 대로의 삶을 이끌어 가는지 정말 화가 난다.
스스로가 인생 참 무료하게 만들어간다는 내면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면서 삶의 무료함에 지친다는 것이고, 내게 한번 주어진 삶이 단순히 인간 종족의 번영과 무언의 종속적인 삶에 머물러 있다는 오만가지 생각만이 머릿속에 꽉 들어선다. 마치 거대한 통제 속에 자발적으로 머물러야만 하는 아니, 머물러 있다. 뜨악스럽게 거북스럽다. 이러한 거북함으로 인한 피로와 권태가 숨쉬기조차 귀찮게 만들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