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라는 죄악.
파고드는 권태로움, 게으름..
by Toi et Moi Mar 25. 2020
한낮의 악마라 불리는 무기력, 게으름이 어느새 찾아와 깊숙이 파고든다. 권태로움에 모든 자극들이 시들해지고, 한숨만이 내쉬어진다. 더 이상 지루함을 제거해줄 달래줄 자극이 없다. 자극제를 찾아 여기저기 찾아다니도록, 일어나도록 하지만 밖으로 향해도 돌아오는 길에 허하다는 기분에 따분함, 지루함만 고구마 뿌리처럼 넝쿨째 딸려온다.
푹푹 내쉬어지는 한숨은 도무지 밖의 에너지로 식혀지지 않는다. 그저 내뱉어 버리는 뜨거운 한숨과 침묵이다. 눈만 감겨올 뿐이다. 이런 권태로움에 파생하여 번지는 에너지 쇠퇴와 반작용하여 끝끝내 탐닉하는 것은, 웃기게도 일회용 같은 자극, 쾌감, 소비, 흥분, 놀이로 다시금 재차 빠진다. 더더욱 무의미함과 공허함으로 전락시키는 악순환이다. 결국 더욱더 더 증폭된 불쾌감과 대치한다.
모든 일이 극도로 진부하게 보이고, 빤하게 보이리라는 것을 예감한다. 빤한, 정해져 있는 각본과 결론은 볼 필요가 없다. 하품이나 하게 한다. 이 지겨움의 근원은 어디서 오나? 지겨움으로 파생되는 반감과 화 혹은 분노, 무기력과 억압, 억제를 낳고 또 낳는다. 숨이 막히고 깊은 한숨이 푹푹 셔지는데, 답답하다, 갑갑하다는 단어만이 지금의 심정에 가장 근접한 단어로 설명을 희미하게 부연할 뿐, 완전히 부합하는 단어를 찾기 힘들다. 그저 지겹다, 반복이다, 지긋지긋하다, 지루하다, 똑같다는 말만 맴돌면서, 툭. 툭. 지겹게 또 내뱉어질 뿐이다. 어느새 방구석 바닥에 뱉어져버리고 마는 단어들이다.
지루함이 또다시 낳는 건 이미 다 삶을 음미해버린 것처럼 군다는 것이다. 이전과 다르게 새로운 유용법을 생각하지 못하고, 재생 반복으로 느낀 채 그러고 만다는 것이다. 끝끝내 이 팽팽한 답답함은 또다시 나를 막아선다. 막히고 막혀 뚫릴 것 같지 않은 깝깝함은 쉬이 희석되지 않는다. 권태로움은 어느새 스며들어 베어버렸다. 권태 덩어리를 소화시키고자 어느 하나 택하지 못한다. 동시에 그저 그런대로 거기서 거기인 대로 남들 마냥, 뻔하게 그럭저럭 하게 살아가면서도 그렇게 지내면서도 지금의 형태가 지독히도 싫다. 아마도... 그렇게, 그저 그런 나날의 연속에 지겹게도 머물러 있는 나 자신이 미워서 그럴까?
지루함을 피어오르지 못하게 하고자 하나, 지루함을 부채질하며, 시간을 죽이는 행동. 막아서는 생각들, 느낌들로 언제까지 머무를 것인가? 최근 알 수 없는 갑갑증, 막힌 듯 한 욱신거림, 무의욕 상태, 만성적인 피곤함, 부족한 자기 관리, 체력 부족, 해야 할 일에 대한 동기 수준이 떨어짐으로 끝까지 대치상황에 몰아가기에 그토록 꾸물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지못해 움직이지 않은 몸뚱이를 이끌고 월요병을 시름시름 앓는, 집에 가는 그 시간만을 고대하는 누군가들처럼 사는 것.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지내는 것. 그러나 별거 없는 집으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만을 열나게 생성한다. 지겹게 연속적으로 머물수록 심사가 뒤틀리는지, 만사가 짜증스러우며 원하는 바대로 굴러가는 일이 전혀 없다. 그렇게 삐딱하고 삐뚤게 곤두선다. 한숨은 뜨겁고, 질러지는 소리는 날카로우나, 땅으로 꺼질듯하다. 그렇게 지루해진 채로 시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