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무심한 한마디로 봉인된 감정이 해방된다. 그 순간 자물쇠가 툭하고 끊어졌다. 얼마나 애써 잠가 놓았던지 감정이 뚝뚝 흘러나오더니 어느새 왈칵 쏟아져 나온다. 그 한마디는 어떤 위로도 위안도 공감도 아니었다. 전혀 애써 이해를 갈구할 필요도 없고, 애써 공감받으려 목말라할 것도 없다. 이해에 목말랐던 나로서는 또 다른 지점에 들어선 것이다. 울림으로 번지며, 파동을 일어내더니 스스로를 돌보게 된다. 아, 나 그랬구나. 그럴 수 있겠다. 선명히 분명히 나를 보게 된다.
이제야 취소했던 여러 감정들이 고구마 뿌리처럼 얽혀 뽑아져 올라온다. 그동안은 뽑아내기에는 너무 크고 무겁고 거칠어서 대충 표면의 것만 꼬리표를 하나하나 붙였다. 이제와 보니 겉만 대충 뽑아버리고, 무마하고 축소한 감정들이었다. 감정을 없는 척, 없애버리고, 다른 곳 자체에 시선을 돌려서, 환기시켜버리고, 겉만 싹 없애버리고, 후다닥 해치워 버렸다. 그동안은 그저 감정 무효화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덩굴채 덩어리 진 감정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서니 감정 파편들이 이물질화 되어 나를 콕콕 찌르면서도 소화해내지 못했다. 보지 못해, 보지 않아 그동안 없던 일, 애초에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굴었다. 덮어버리고 무마했다. 더 이상 붉어질 이유조차 없게 말이다. 사실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의식에서 멀어졌고, 티끌만큼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한들 그건 없는 게 아니다. 저 밑에서 잠자코 있을 리가 없다. 오히려 터지지 않았기에 더 더 터질 수 없게 요철처럼, 두드러기 마냥 올라왔다. 더 징그럽고 어떤 수를 써도 곪지도 않으면서 두들 거리는 표면으로 표정으로 더 티 나게 징그럽게 존재할 뿐이다. 존재하나 터지지 않게 말이다. 징글 거리고 지긋하여 저 멀리 떠밀어 두었던 감정들이 제 길을 찾아 쏟아내니 얼마나 억지스러웠는지를 알게 된다.
* 응시를 미루고 있는 떠밀려 있는 감정들을 인식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