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비일상 사이

유착된 일상

by Toi et Moi

일상의 평범함에 유착되어 갔다. 새롭게 경험하지 못하고 자동화되었다. 그 어떤 기쁨도 어려움도 고됨도 적당히 처리 가능한 수준과 범위 내에서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어느새 익숙해진지도 모르게, 그 익숙함은 선호도 원함도 아니기에 무미건조함을 낳고 낳을 뿐이다.


무미건조한 건 싫다. 건조한 현실 모드는 '어차피'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어차피 이럴 테니까... 어차피가 고정된 생활을 불러온다. 고정된 지루함이 잠시의 환희를 위해 더 더 열심히 일해서 ‘열심히 일한 자여 떠나라’가 되어버리고, 더욱 휘발되어 버릴 꿈같은 동화를 찾게 한다. 물론 반복적인 삶에서 여행지의 새로움은 한껏 맘을 부풀어 오르게 한다. 늘 하던 일상적인 먹고 자는 행위도, 걸음도 새로운 마음의 풍경을 자아내고, 이전과 다른 기운을 입힌다. 마치 순수하고 아름다운 동화와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낯섦이 기대와 설렘을 불러오고 맑고 청정한 기분을 불러온다.


하지만 비 일상성에서만 느끼고 싶지 않다. 평범한 일상도 동화와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일까? 고착된 일상을 생성하면서 엉뚱하게 바라고 있다. 일상에서 기대와 설렘을 느낄 수 없는 건 스스로 구속했기 때문이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어떤 자유를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화하려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비현실적 바람이 아닌, 축 쳐져버린 일상에서 삶의 순간의 강도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발을 딛고 있는 현실세계에서 난 얼마나 꿈꾸고, 상상하며, 환상적으로 얼마나 많은 감각을 감정을 느끼려 하고 했나?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이미 다 음미해버린 듯이 웬만해서는 호기심과 기대는 잘 일어나지 않았다. 일렁이기는커녕, 진부하고 루즈한 것들 사이에, 어떤 틀 안에서 머물렀다. 너무나도 틀 적인 삶에서 숨통을 틔지 못했다. 그것이 현실적 삶인 듯 살아왔다. 이러한 탑재와 설정 방식의 삶에서 남는 건 무엇인가? 평균적, 균질적 삶으로의 방식이자, 해치워버리는 식이다. 어떤 감상도 의미도 남지 않는다. 그저 했다만 남는다. 너도 한 거 나도 했다.


현실세계로 인해 내면의 요구와 멀리 떨어졌다. 자기와 외부세계, 경험되는 자기와 욕망 사이의 분열이다. 본래적인 자기를 뒷전에 내버려 두고, 철저히 나 자신을 외부세계의 논리에 내맡기고 포섭되어 움직이고 말았다. 그저 철수하고 공상 속에서 만족을 구할 뿐이다. 그럴수록 잠재적 화신이 되어간다. 그러니 내 안에 익어가고 있는 내실물이 탐스럽게 열매 맺지 못하고, 추수하지 못하고 추수할 도구도 만들지 못한 것이다.


외부세계가 요구하는 압력은 내면세계나 정체성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추어야 했거나 애매하게 피해야 했다. 또한 충동질하는 내면의 요구를 느끼면서 꺼내어 보기보다는 모호히 떨어지라는 신호로 해석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그럴듯한 변명일 테다. 그냥... 어쩌면 계속 차일피일 너무나도 물렀다. 그래서 모든 것을 치워버리고 무력화해 버렸다. 애초에 없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었다. 무엇이 다가와도, 무엇이 생겨도 어차피 이래도 저래도라며 단물은 쏙 뺀 채 급작스럽게 현실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그러자 어이없게도 작동되어야 할 이상이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다. 현실로 무마시키고 행동하지 않은 채 평범하게 만든다. 꿈꿔라 기대하라, 상상하라~이런 말도 빤하다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자처해서 빤하게 만드는 오리무중 상태로 지속했던 것이다. 이제는 숨 막힘으로 아닌, 숨이 차서 헐떡이도록 나의 힘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