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뭐 있다? 없다?

인생에서 뭐가 있기를 바라는가.

by Toi et Moi

“인생 ‘뭐’ 있을 줄 알았지”라는 말이 잔상에 머문다. 그 ‘뭐’ 말이다. '' 인생살이에 항상 매번, 무언가가 없다.라는 뜻으로 다가온다. 뭐 없으니 지금을 만끽해라가 아니라, 뭐가 있기를 바라지만 결국에는 뭐가 없다는... 참, 그 뭐, 거시기하고 덧없고, 무상한 뭐. 결국에는 다들 그렇게 무상하게 덧없이 살아가는 것일까? 하지만 누구나 무언가를 이루리라, 기대 혹은 염원이라고 할까? 그러한 걸 갖고 살아간다. 누구나 진실로 원하는 바가 있으니 말이다. 그래야 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인생 뭐 없다.’라는 말은 뭐 없이 이룸 없이 사라지고 말아 버리게 되는 것일 테다.


하.. 탄식을 내뱉게 된다. 인생에서 뭐가 있기를 바라는가? 그 뭐를 망각한 채, 하지만 뭐를 간직한 채 여태껏 미련하게 눈 질끈 감고 보지 않거나, 살짝 실눈을 떴다 감으며 참아왔음을 말이다. 이러한 나를 경험하고 나니, 꽁꽁 숨겨두었던 나도 몰랐던 나의 속내를 속살을 마주한다.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서, 여태껏 갖고 있는지도 몰랐다. 갖고 싶어도 갖고 싶지 않은 줄 알았다. 피어오를 원함도 애초에 차단해버렸던 것을 알아차렸다.


막연히 기대하기에는 무작정 가까운 미래를 기약할 수도 없이 나이가 들었기에 자각한다. 이토록 욕망하지 않기. 금욕의 일상화? 욕망 거세? 욕망 자체 제거? 할 필요가 있었을까? 욕망을 외면하거나 유예하며 도망쳤기에, 몰려든 욕망을 거리낌 없이 다시 한번 재확인한다. 소비 패턴만 해도 그렇다. 물질주의의 천박함에 덩달아 매몰되고 싶지 않은 나로 상정했기에. 소비적 라이프 스타일을 거부했고, 소비적 욕구 남발도 불편했다. 견물생심이 일어나기도 전에 박차고 일어났고, 구매력이 있든 없든 갖기 조차 바라지 않았다. 자본주의 속성의 현란한 유혹에 걸려 들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속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또한 물질주의 반대급부로 저항에 지나지 않다. 절대적인 것은 없기에 정말 진심으로 물질적 가치를 두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고상하게 소비 욕망을 거세하고, 대신에 지적, 정신적 욕망을 장착한 건 아닐까? 그저 물질의 반작용의 가치를 욕망한 건 아닐까? 이런 채로 눈만 끔뻑거리며 살다가는 억울해 죽지 않을까? 더는 아니기에 그제야 진짜로 스스로 감내한 것들을 감별하기 시작했다. 어쨌건 가져야만 하는 것들과 마땅히 내가 누려야만 하는 것들을 분별하기 시작한 것이다. 도덕적인 말, 사회적 바람직성, 시답지 않은 말들에 종속된 것도 아니라고 여겼는데, 더 무섭게도 자가 설정에 속아서 지낸 건 아닐까? 어쨌든 미련하다. 충분히 체감했다. 그 뭐를 추구하자!



* 여러분 인생의 뭐, 원함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