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부터일까? 더 이상 기억을 차곡차곡 쌓기를 거부한다. 한 해를 마감할 때가 오면, 작별하는 해에 대한 아쉬움으로 다달이의 기억을 곱씹으며 파노라마를 착 펼쳐보고는 했지만, 해의 끝을 붙잡으며, 굳이 기억을 퍼올려가며 추억을 되새기고 떠올리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니 지난 한 해 한 해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새겨 넣지 않아서일까? 시간의 경과에 따라 기억이 자연 소각 처리되어 버린 것일까? 겨우 무엇을 했는지만 사실적으로 몇 가지가 띄엄띄엄 재생될 뿐이다. 사실 기억의 용량이 있다면, 꽉 차도록 두기에는 불필요했다. 뇌에 기록 따위도 하고 싶지 않았기에, 망각할 것조차 없도록 통으로 기억을 즉각 싹 날려버린 것이다. 아마 그저 그냥 그런 날들을 쌓아 올렸으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지극히 보통의 날들 있을 수밖에 없는, 다들 그렇게들 사는 일상이지만 그랬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날들에게 난 왜 이렇게 못되게 굴고 있을까? 정녕 이럴 수밖에 없나? 맘에 들지 않는 날들을 만들어 놓고 불평을 하는 건가? 사실 그렇다고 나쁜 날들도 아니다. 아니, 이도 다 아니다. 기억을 잃고자 한 것이 아니다. 지나간 것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도 아니다.
과거에 저장된 것들에 연결되기보다 예측 불가능한 무한한 가능성에 접속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저 지금과 강력한 연결을 원했다. 그래서 쉬이 과거에 지난날에 무게도 중점도 주지 않았기에 곱씹지 않았다. 바로 지금 순간에 와 닿는다면 절로 깊이 각인되고 새겨질 테니 말이다. 잊을까 두려워 새기지 않아도 될 터이니 말이다. 그렇게나 지나감에 얽매이지 않으려 했나 보다. 그러면서도 쉬이 순간을 살아내지 못했던 거다. 하나를 마음먹고 하나를 잊어버렸다.
깊은 하루를 살고 싶다. 매일매일을 각인하듯 살아내고 싶다. 오늘에 순간에 뿌리 깊게 내려 시야에 담아지고 접촉되는 모든 것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풍성하고 다채롭게 감도를 드높일 수 있는 이로, 깨어있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갉아먹는 하루가 아닌 평범한 오늘이 매일 공기가 달라지는 접촉과 그윽한 기억에 남는 오늘로 채워갈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