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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뉴질랜드의 자연과 문화

[기타] 뉴질랜드 1년 체류기 및 생태학적 소감문

by 생태비평가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1년은커녕 한 달 이상도 머무른 적이 없던 나는 뉴질랜드에서 인생의 첫 워킹홀리데이를 보내게 되었다. 왜 뉴질랜드를 선택했냐는 질문은 수도 없이 받았지만 (*왜 호주를 안 가고 여길 왔냐는 질문은 덤) 사실 적확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뉴질랜드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은 하나 없었고 막연하게 푸른 들판과 초원 위 양떼를 뉴질랜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뉴질랜드는 영어를 쓰는 나라여서 영어를 익히기에도 좋고, 기본 인프라를 갖춘 선진국으로서 장기 거주하는 데 불편함이 없으며, 무엇보다 드넓은 섬대륙에 '청정 자연'이 융단처럼 깔려 있어 자연을 좋아하는 내가 생활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곳에서 1년을 살았는데, 그동안 내 나름 보고 겪은 것을 토대로 '뉴질랜드의 자연과 사람이 어떻게 어우러지고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뉴질랜드(New Zealand)의 자연에 대해 기대를 품기 시작한 건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에어뉴질랜드 비행기에 몸을 싣고 기내방송에 귀 기울일 때부터였다. 에어뉴질랜드를 '하늘을 나는 카누'라고 부르며 기내 안전 수칙에 대해 설명하던 방송 영상은, 마오리족(*뉴질랜드 토착 원주민) 영웅 티아키(Tiaki)와 가디언즈를 그 주인공 및 모티브로 삼고 있었다. 영상에 따르면 티아키는 "우리의 이 아름다운 나라를 돌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기 위해" 가디언즈를 찾아나선다. 짧은 영상이지만 영화같은 퀄리티와 배경음악, 그리고 실제 뉴질랜드의 광활한 자연을 담아내고 있어 임팩트가 컸다.


땅이 건강하고, 바다가 건강하면, 사람들이 번창할 것이다.
하늘의 카누, 에어뉴질랜드와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모두를 뉴질랜드의 사람, 장소와 문화를 돌보는 티아키의 탐험에 초대합니다.


무엇보다 마오리 문화와 뉴질랜드의 자연을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이 영상에도 드러나 있어 뉴질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첫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사전에 식료품 및 외래 동식물 반입 등에 대한 입국 허가 절차가 비교적 까다롭다고 들은 덕에, 과연 뉴질랜드가 자연 보호 차원의 엄격한 법적 제재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기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온 상태였다. (*나는 환경을 중시하는 나라가 좋다.) 그렇게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나는 아오테아로아(Aotearoa, 마오리어로 뉴질랜드를 이르는 말)에 첫 발을 내딛었다.


에어뉴질랜드 이륙 당시 찍은 기내 모습


뉴질랜드를 한 숨 들이마시고 느낀 것은, -아 공기 참 좋다- 였다.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을 누려본 게 얼마만인지. 비록 햇살은 한국보다 따가웠지만 먼지 걱정 없이 마음껏 숨 쉴 수 있다는 점이 마냥 좋았다. 유난히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을 쳐다보는 것도 좋고, 해질녘 노을을 어디서나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도 꿈만 같다. 뿌연 먼지도 없거니와 하늘을 가리는 높다란 빌딩도 도심 외에는 없어 뻥 뚫린 시야를 가진 덕분이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하늘을 매일 누리는 것만으로 사람 마음이 이렇게나 풍요로워질 수 있다니. 자연이 가진 힘이 새삼 놀라웠다. (*사는 집 뷰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을 뉴질랜드에 와서야 깨달은 나...☆)


그렇다고 해서 뉴질랜드 사람들이 모두 매연 내뿜는 차를 버리고 걸어다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차 없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뉴질랜드에서는 1인당 차 1대가 기본적인 것이다. 오죽하면 사람보다 차가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차가 없을 때 따르는 불편함이 지리상 훨씬 크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오염원 배출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로는 로드킬도 있다. 도심 밖을 벗어나 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길 위에서 죽은 동물의 사체를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한 경우엔 하루에 대여섯 번까지 목격한 적도 있다. 새부터 포섬(possum), 고슴도치, 토끼 등 사고를 당한 동물들의 종류도 다양했고,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경우도 많았다. 처음에야 덜컥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R.I.P를 되뇌었지만 하도 많은 바람에 점점 익숙해져가는 나 자신이 얼마나 소름끼쳤는지 모른다.


KakaoTalk_20240320_154018240.jpg 아름다운 뉴질랜드의 저녁 하늘


뉴질랜드에 첫 발을 내딛은 뒤, 대도시인 오클랜드(Auckland)에서 초기 정착을 시작한 나는 도심 속에서도 자연을 찾아 헤맸다. (*자연에서 산책하기를 좋아하는 나의 오랜 버릇이기도 하고 그저 숨통 트이는 곳을 찾고픈 욕구이기도 하다.) 다행히 오클랜드에는 적지 않은 수의 공원과 정원들이 있었다. 규모가 큰 Auckland Domain부터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Albert Park, 그외 규모가 작은 소공원들까지, 비록 사람의 손길이 닿은 인공 자연이라고는 하나 도시에 이러한 공간을 부러 마련하는 것은 생태적으로도 중요하다. 게다가 햇볕 좋은 날이면 해바라기하는 사람들로 공원이 항상 북적였으니 시민 복지 차원에서도 공원 및 정원 조성은 그 중요성이 꽤나 큰 셈이다.


그런데 Park, Gardens로 표시된 구역 외 Reserves라고 따로 표시된 구역들도 눈에 들어왔다. 번역하면 보호구역이라는 뜻이 될 텐데, 원시 상태의 자연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사람들의 출입을 금하는 그런 본격적인 느낌은 아니었고, 그저 개발을 금하되 딱히 공원이나 정원처럼 가꾸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둔다는 느낌이었다. (*어떤 Reserve는 잔디만 있는 조그만한 공터에 지나지 않기도) 관리가 덜 되어있고 크기가 아무리 작다고 한들 도시 속에서 마주치는 이러한 자연의 여백이 나는 매우 반가웠다.


또, 뉴질랜드하면 바다도 빼놓을 수 없다. 섬나라답게 웬만한 도시에서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손쉽게 바다를 즐길 수 있다. 그 많고 많은 해변(Beach)이 제각기 다른 모래 색깔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하얀 모래, 검은 모래, 갈색 모래, 살구빛 모래 등등. 어느 하나 똑같은 곳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해수욕을 즐기기도 하고 바다수영이나 서핑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나이가 아주 어린 아이들도 조그만 서핑보드를 들고 서핑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평생 바다를 가까이 두고 살아가는 뉴질랜드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또 놀라운 건, 뉴질랜드의 해변에서는 쓰레기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비단 바다뿐만이 아니라 자연 관광지역 어디에서건 땅에 떨어진 쓰레기를 본 일이 손에 꼽을 정도다. 비닐 조각이나 담배 꽁초, 스티로폼, 페트병 등으로 가득한 우리나라 바다와 산지랑 비교가 되는 모습에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원인이 뭘까 궁금했다. 인구밀도가 적다는 단순한 그 이유 하나뿐일까? 1가지 발견해낸 것은 자연관광지역 내 길거리 상점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그 흔한 마실 것을 파는 가판대도 없다. 배를 채우고 목을 축이려면 멀리 떨어진 마트에서 미리 간식을 사놓거나, 카페나 식당까지 걸어가야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자연히 쓰레기 발생량도 줄어들지 않을까? 소비가 힘드니 쓰레기 생산 자체가 이루어지기 힘들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쓰레기 보고 눈살 찌푸릴 일 없는 이곳의 '청정 자연'이 한국에 가면 얼마나 그리워질까.


KakaoTalk_20240305_082106751.jpg 쓰레기 없는 깨끗한 바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분리배출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물음표다. 플라스틱, 캔, 스티로폼 등 재활용쓰레기도 종류별로 나누어 배출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뉴질랜드에서는 일반쓰레기(general rubbish)와 재활용쓰레기(recycle) 이렇게 딱 두 개로만 구분되어 있는 게 일반적이다. 일반쓰레기 통은 보통 빨간색으로 되어 있고, 재활용쓰레기 통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그런데 길거리 혹은 식당에서 그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무작위로 버려진 쓰레기를 목격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가정에서는 이보다는 낫겠지만, 종류를 가리지 않고 한데 모아진 재활용쓰레기가 추후 제대로 분류되어 재활용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자원의 순환 측면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보자면, 뉴질랜드는 중고시장(second hand market)이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는 나라인 것 같다. 매주 주말마다 커다란 벼룩시장이 열리는가 하면, 중고 옷 가게가 여러 개의 체인을 지니고 대규모로 유통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급만 많은 것이 아니라 수요도 그만큼 따라온다는 점이 놀라운데, 실제로 중고시장은 열릴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잡동사니부터 옷, 가구, 신발 등 시장에는 없는 게 없다. (*싼 가격에 명품 옷을 건지는 경우도 있어 보물찾기하는 심정으로 시장을 누비고 다니기도) Red Cross Shop이나 Hospice Shop 같은 자원단체가 운영하는 중고가게도 인기가 많은데 남녀노소 이런 데서 중고 쇼핑을 즐기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나도 미처 챙겨오지 못한 겨울옷을 중고로 구입하기도 하고, 나중에 늘어난 짐을 감당하지 못해 가져온 옷 몇 가지를 Recycle Boutique 라는 중고 옷 가게에 기부하기도 했다. 무조건 새것, 최신의 것만 고집하는 세태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나 역시 자원의 순환에 쉽게 동참할 수 있었는데, 진정한 선진국다운 문화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KakaoTalk_20240318_114200218.jpg 중고가게는 아니지만 H&M에서도 옷을 기부하면 알아서 재활용해주고 할인 바우처까지 준다


한편 뉴질랜드에서는 대부분 주택생활을 한다. 그리고 주택에는 대부분 정원이 딸려 있다. 그래서일까. 여기서는 가드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유독 높다고 느낀다. 거의 모든 도시에 식물원(botanic garden)이 있고 여느 도서관에 가면 가드닝만으로 분류된 서가가 따로 배치되어 있을 정도다. 잔디 깎는 기계나 관목을 다듬는 전기톱이 어느 집에나 있고, 다들 어떻게 하면 정원을 예쁘게 꾸밀 수 있을까 열과 성을 다한다. 본격적인 가드닝을 하지 않는 사람도, 주기적으로 전기톱을 들고 제 집 정원에 자란 수풀을 다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줄곧 아파트에서만 자라 정원을 손수 돌본 경험이 없는 내게 이런 문화는 매우 신선하고 신기하게 다가왔다.


제 입맛에 맞게 자연을 가꾸고 관리한다는 점에서 가드닝을 100% 생태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모든 자연 생태계가 완벽하게 차단된 아파트보다야 인위적이라 할지라도 자기 스스로 살아있는 자연을 옆에 두고 체험할 수 있는 주택이 훨씬 건강해 보였다. 식물을 돌보고 손에 흙을 묻히고 꽃의 향기를 맡는 등의 경험은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 와서야 관상용 장미도 수십수백종에 달하며 그중에 iceberg라는 이름을 가진 백장미 향기가 무척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며 자연에 대한 심미안을 기르는 뉴질랜드 주택살이가 하나의 낭만으로 다가온 이유다.


KakaoTalk_20240305_100150862.jpg 가드닝에 관한 책들로 서가가 빼곡한 모습 @Turanga library


어쩌다보니 자연스레 뉴질랜드의 의(衣) 문화(-중고로 저렴하게 사 입는 경우도 꽤 많다-)와 주(宙) 문화(-주택에 살며 정원에 대한 관심이 드높다-)의 일면을 다루게 되었으니, 식(食) 문화에 대해서도 한 번 살펴볼까 한다. 나는 현재 완전 채식은 아니지만 육고기를 지양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 나라를 가건 식당에 베지테리언 옵션이 있는지를 자연스레 살피게 되는데, 뉴질랜드에서도 웬만한 식당에는 한 두가지쯤 V 표시가 된 채식 메뉴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실질적으로 채식 문화가 아주 발달되어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뉴질랜드도 어디까지나 주 소비대상은 육류이고 양고기가 소나 돼지만큼 일반화되어 있다. 채소나 과일 값이 고기 값에 비해 비싸고, 비건 카페나 채식 전문 식당도 그 수가 많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채식을 한다고 해서 맞춰주기 까다로운 식성이라고 눈총을 받는다든지 고기 안 먹으면 영양 균형이 깨진다는 둥 잔소리를 늘어놓는다든지 그런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과반수까지는 아니지만 채식을 한다는 사람도 종종 마주칠 수 있었고, 그들은 대개 채식을 택한 자신의 권리를 눈치보지 않고 요구했다. Vegeterian&vegan friendly를 요구받는 업체 입장에서도 정당한 피드백으로 받아들이고 개선 의지를 보이는 느낌이었다.


별개로 사실 뉴질랜드 음식에 대한 기대는 별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 뉴질랜드 대표 음식이라고 해봤자 피쉬앤칩스나 램요리 정도고 뛰어난 맛집도 찾기 힘들다. 현지인들도 한식당이나 일식당, 태국요리나 인도커리 같은 아시안 음식을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고, 맥도널드나 KFC, 도미노피자 같은 패스트푸드점이 가장 인기가 좋다. (*홍합 요리나 크레이피쉬는 맛이 좋지만 가격이 꽤 나간다는 것이 단점.) 이런 와중에도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좋은 평을 듣는 뉴질랜드산이 있다면, 그건 바로 유제품(Dairy food)이다. 우유, 버터, 치즈, 요거트 등은 종류도 많고 맛도 좋다. 사실 도시를 빼놓고 뉴질랜드 땅 대부분은 소, 양, 말 등 가축을 키우는 데 이용되고 있으니 유제품 생산 및 소비, 나아가 수출까지 활발히 이루어질 만하다. 비좁은 축사에서 스트레스받으며 자라는 우리나라 동물들에 비하면, 드넓은 초원과 평야에서 느긋하게 풀을 뜯으며 자라는 뉴질랜드 동물들은 그나마 축복받은 편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달걀 역시 모두 "range free"기 때문에 더럽고 비좁은 닭장을 떠올릴 때 드는 죄책감을 덜 수 있었다. 맛뿐 아니라 동물권 역시 보장된 뉴질랜드산 유제품과 동물복지 달걀은 한국에 가서도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다.




남부럽지 않은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나라, 뉴질랜드. 나는 이곳에서 1년을 머물며 뉴질랜드의 자연 그리고 문화에 대해 위와 같은 것을 느끼고 겪었다.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할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신세가 많았기에 부족하지만 위와 같은 생태학적 소감문을 남기며 나름의 작별인사를 건넨다. 아쉬운 마음 가득하지만, 난 10년 후에도 이곳의 자연환경이 깨끗하고 아름답기를, 멀리서 소망하고 염원할 것이다.

(*본 글은 객관적 수치와 과학적 조사가 동반되지 않은 개인의 감상과 견해에 따른 Just 소감문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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