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친애하는 지구에게>
부처님 오시는 날이니만큼, 붓다의 생애에 관해 떠올려 본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한평생 중생에게 복덕을 베풀며 나무 그늘 아래서 열반에 이르기까지, 그 역시 오랜 세월 자연을 곁에 두고 의지해 왔다. 사실 자연이야말로 대자대비 그 자체가 아닐까. 지구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에게 아무 대가 없이 빛을 비추고 물을 내리고 숨을 불어넣어 주니까 말이다. 풍요롭고 자비로운 자연을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극단으로 치닫는 인간의 욕망이다.
달라이 라마(1935~)는 위와 같은 인류의 현실에 경종을 울리고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친애하는 지구에게>라는 책을 썼다. 패트릭 맥도넬(Patrick McDonnell, 머츠(Mutts)의 작가)이 그린 이 책의 삽화는 잠언과도 같은 그의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는다. 이야기의 시작은 기후변화로 인해 보금자리를 잃은 대왕판다가 맡는다. 그는 티베트고원 대나무 숲에서부터 인도 다람살라까지 한걸음에 달려 달라이 라마를 찾아오고, 달라이 라마는 그를 벗 삼아 함께 산책을 떠난다.
달라이 라마는 먼저 자연이 존재 자체로 우리에게 소중함을 전한다. 인간과 자연은 오랜 세월을 함께 겪어 왔고, 숲을 거니는 것만으로 우리는 영혼의 평온을 되찾는다. 야생화는 자유로움과 행복의 향을 내뿜고, 쑥쑥 자라고 성장하는 자연의 생명력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근원적인 행복을 얻기 위해서도 자연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나 가슴 한켠에 자연과 함께한 행복의 기억을 품고 있을 것이다.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푸른 하늘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 순간, 갑작스런 소나기가 지나가고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발견했던 순간, 봄에 피어난 꽃을 보고 향을 음미하던 순간, 흩날리는 벚꽃잎 사이를 걷던 순간, 팔랑거리는 나비를 좇는 강아지를 눈에 담던 순간, 그밖에도 여름철 바닷가며 가을철 단풍이며 겨울철 나리는 눈이며…. 무수한 찰나의 순간 속에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한 행복이 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자연에게 행복은커녕 고통과 불행을 안겨주고 있다. 공장이며 차에서 내뿜는 연기가 하늘을 먼지로 자욱하게 뒤덮고, 비를 새카맣게 물들인다. 각종 화학약품이 대지를 오염시키고 피어나 자라는 모든 식물이 대를 잇지 못하게 만든다. 마침내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재앙을 일으키고 지구상 모든 만물의 삶을 어지럽히고 괴롭힌다. 인간이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어쩌면 이 세상은 훨씬 더 평화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인간의 잘못으로 일어난 자연의 고통과 불행을 덜어줄 수 있는 것 또한 우리 인간의 힘이라는 점이다.
인간이야말로 지구를 멸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유일한 종족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지구를 멸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보호할 힘도 함께 가지고 있는 셈이에요.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달라이 라마는 책 속에서 마음가짐의 변화를 우선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이것을 "자비로운 혁명"이라 일컫는다. 연민과 자애, 그리고 이타심이 세상의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는 열쇠라는 것이다. 마음의 변화라…. 정말 그것만으로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깨달음이 부족한 중생인 탓일까, 나 역시 달라이 라마의 해결책에 대해서는, 그건 너무 단순한 해결책이 아닌가? 디즈니 영화에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얘기가 아닌가? 하는 각종 의구심이 먼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내 단순해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마음을 바꾸는 일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고, 어쩌면 이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다면, 지구를 더 이상 아프지 않게 지켜주는 일 또한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이어졌다.
마음 자체를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거나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등 도덕책에 나올 법한 규범적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의식적 명령에 따라 선행을 수행하는 것도 물론 훌륭하지만, 모든 행동의 바탕이 되는 마음가짐 자체가 연민, 지혜, 이타심 등으로 발현된다면,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건 저절로 그리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자비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선악의 판단이 이루어지기 전에 내가 하는 행동이 다른 생명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항상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다. "쓰레기를 주워야지"라는 도덕적 학습에 의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썩지 않는 쓰레기를 품고 견뎌야만 하는 땅의 고통을 생각하고 이타심에 그러한 행동을 저절로 하게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행복은
다른 이들이 얼마나 행복하기를 원하는가에 의해 좌우되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은
나 자신이 얼마나 행복해지기를 원하는가에 의해 좌우된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가짐은 대단한 성인만이 품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달라이 라마는 말한다. 무지와 탐욕에 물든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누구나 지혜롭고 자애로운 사람을 동경하고 사랑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 만물을 향해 연민, 자비, 사랑의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고귀한 존재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은 그들에게 가능한 최대한의 친절을 베푸는 데서 시작된다. 이는 우리 모두가 지닌 각자의 책임이다. 우리는 사실 매 순간 생명을 마주하지 않는가. 그 순간마다 생명을 인식하고 이 생명에게 내가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것이다. 밤에 자연불빛에 의지해 움직이는 나방을 방해하지 않도록 늦은 밤엔 불을 끄는 것도 친절이겠고, 다 쓰지도 않은 화장품을 버릴 때 내용물이 바다에 흘러들어가 자칫 물고기들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도 친절일 수 있다. "인류와 우리가 살아가는 행성인 지구에게 유용한지 혹은 유용하지 않은지 늘 살피며 행동"하는 것이 자비로운 혁명의 시초인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가짐의 변화는 지금 당장 누구나 시작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일 년 365일 중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은 단 이틀뿐입니다.
하루는 어제이고 또 다른 하루는 내일이지요.
오늘은 사랑하고 믿음을 나누고 행동하고
다른 사람을 도우며 긍정적으로 살아가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