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garden of Saint Rémy hospital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된다. 만일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그런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그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행위일 뿐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진지하게 작업을 해 나가면 언젠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
빈센트 반 고흐, 1882.7
작가노트
'나는 나의 귀를 스스로 잘랐습니다.'
떠나려는 고갱의 마음을 잡지 못한 빈센트는 아픈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곧 정원이 너무나 아름다운 한 병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자연은 아니지만 그래도 생의 빛과 소리가 넘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는 그가 느낀 모든 감각들을 캔버스에 가두어 우리에게 선물로 남겼습니다.
저는 이 일련의 스토리를 욕망이라는 단어를 통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욕망이란 아주 많은 경우에 부정적인 의미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욕망이 없는 인간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인간으로 태어나 이 세상에 발 딛는 순간 우리는 단 한순간도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어제 개봉한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를 보고 빈센트의 욕망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그는 우선 예술에 대한 높고 지치지 않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어제 그에 관하여 확신이 섰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그의 욕망이었습니다. 그는 늘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 빈센트에게 사람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재능은 조금 부족했습니다. 저는 좀처럼 다가갈 수 없었던 '사랑'에 대한 욕망이 빈센트를 아프게 했을 한 가지 이유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빈센트가 과감히 그 '사랑의 욕망'을 포기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포기한 빈센트 반 고흐는 존재할 수 있지만, 그가 남긴 그림들은 결코 존재할 수 없음을 곧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늘 자신이 보고 느낀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습니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그림을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빈센트의 그림 속에는 늘 사람에게 다가가려는 사랑의 마음이 숨어 있었습니다. 빈센트가 그 아픈 시절에도 아름답다고 느끼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늘 이 '다가서려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빈센트를 힘들게 했던 욕망은 단지 자신의 내면을 채우기 위한 허황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술과 사랑이 결합된, 결국엔 선물이 된 욕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