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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식 Jul 23. 2018

프롤로그 2014

놀이의 생태학을 위하여


1. 

비유를 들어 보자. 오염된 공기를 마신 아이들의 호흡기가 망가져 간다. 오염된 저질의 물을 마시고 아이들은 여러 가지 질병을 앓게 되었고 체질도 나빠졌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 좋은 식사를 하고 적절한 약을 복용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일부 아이들은 건강을 되찾기도 했다. 이런 사례만 들어서 “알고 보니 오염이란 별거 아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해도 될까? 많은 사람들이 공기와 수질이 악화되는 것은 시대가 그렇게 변해서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아무 것도 안 할 순 없으니 아이들에게 더 좋은 음식과 약품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걸로 된 걸까? 정말 그 정도로 충분한 것인가? 건강을 잃은 후에 좋은 공기, 깨끗한 물을 마신다고 이전 상태로 되돌아 갈 수는 없다. 문제는 점점 나빠지는 공기와 점점 더러워지는 물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는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 세대이다. 비유라 하였지만 비유가 아닐 수도 있다. 좋은 음식은 나중 문제고 좋은 신약은 더 나중의 일이다. 우선 아이들의 몸과 폐에 깨끗한 물과 공기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거친 음식이라도 정갈한 찬과 밥을 제 때 차려주면 된다.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놀이를 통해 성장한다. 취학 전 아이들에게는 숨 쉬고 물 마시고 밥 먹고 똥싸는 것 조차 놀이가 된다. 잠자는 것 빼고 잠자는 시늉조차 놀이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한데서 재우고 오염된 공기와 물 속에서 키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한 짓이 그렇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 말하면서 좋은 밥과 찬과 약으로 아이를 키우려 한다. 인류 역사상 매우 드문 일이고, 아둔한 애비와 어미들이다. 

부모라면 아이들이 자신보다 행복해지길 원한다.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의 행복과 그 부모세대가 어릴 적 느낀 행복이 어디가 어떻게 같고 다른지 생각해본다. 아이 시절의 행복이란 일생 느끼는 행복감의 원형이 되기 때문이다. 풍요롭지만 행복과 멀리 떨어져 아이들이 산다면, 경제성장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데 누리지 못하는 무엇이 있는 게 아닐까? 지금 아이들에게 진정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그러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함께 궁리하고 상상하고 힘을 합쳐서 그 무엇을 현실로 초대하여 볼 수 있지 않을까? 


2. 

책을 읽는 행위는 여행을 떠나는 행위이다. 익숙한 사고라는 일상을 떠나 접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만나서 정신의 살과 피로 받아들이는 행위가 바로 독서이다. 이 책이 준비한 여정에 동참하자고 권유하고픈 이들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는 이 시대의 환경이 과연 어린이들의 바람직한 성장을 돕는 것일까 고민하고 회의하는 이들, 주류적 방식을 멀리 하거나 주류적 방식을 따르면서도 ‘이건 아니잖아’라는 느낌을 자주 받는 분들에게 잠시 짬을 내어 함께 여행을 떠나자는 권유를 하고 싶다. 여행을 준비하는 데는 다만 몇 분간의 상상력 연습이 필요하다. 

자녀가 있는 경우라면 자신이 다시 아동기로 돌아가보는 상상을 해 보자. 다만 예전의 그 시절을 잠깐만 거쳤다가 지금 눈앞의 이 아이들의 세상에서 한참을 머물러보자. 아토피와 천식으로 괴롭지만 학습지에 학교와 학원 숙제도 매일같이 해야 한다. 매일 같이 보는 학원 시험을 준비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야단도 맞고 칭찬도 받는다. 용돈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때로는 맞기도 한다. 매일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쫓아 다녀야 하니 당장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참아야 한다. 중간에 다른 곳으로 빠졌다가는 당장 저녁에 불호령이 떨어진다. 춥고 어두운 겨울 저녁이면 재미나게 보던 만화책을 접거나 하던 게임을 종료한 다음 따스한 집을 나와 자신의 몸통만한 가방을 둘러메고 학원에 가야 한다. 낙이라곤 짬짬이 하는 게임과 카카오톡과 학교와 학원에서 짬짬이 나는 토막 난 쉬는 시간뿐이다. 

자녀가 없는 경우라면 최홍만보다 더 큰 거인들이 우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이상한 나라로 떠나보자. 이 거인들은 때론 살갑고 때론 무섭기 그지없다. 남자거인은 우릴 사랑한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별 관심이 없는 듯 하다. 가끔 어쩌다 가끔 화를 내고 그보다는 자주 짜증을 내는데, 성질 맞춰주기 진짜 힘들다. 힘도 무지하게 쎄서 그 거인이 맘 제대로 먹고 한 방 친다면 우린 죽을 지도 모른다. 화가 날 때는 이것 저것 집어 던지거나 등짝을 때리거나 우리 손가락 만한 몽둥이로 때리기도 하는데, 맞은 그 자리는 최소한 멍들거나 피가 나게 된다. 재수가 없으면 맞을 때 아프다고 울어도 계속 때리는 정말 성질 더러운 거인을 만나게 된다. 이 남자 거인은 우리에게 관심 가질 시간이 그닥 많지 않다. 그에 반해 여자 거인은 우릴 때려 죽일 정도의 힘은 없는 듯 하다. 그 대신 집에 있을 때면 늘 잔소리를 한다. 이상한 거인 나라의 직장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시험을 보는데 동료들보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30분씩은 잔소리를 들어야 하고, 때론 맞기도 하고, 월급감봉 조치를 다반사로 당해야 한다. 직장에도 거인들이 있어 집에 있는 여자 거인에게 우리의 행동거지를 이른다. 또 우리가 딴짓 할 때마다 이런저런 협박을 가하기도 하고 때리기도 한다. 적어도 이런 생활을 10년은 계속해야 한다. 세월이 그만큼 지나야 우리가 거인만큼 힘이 쎄진다. 그 때까지는 무조건 참고 무조건 적응해야 한다. 주변을 보아도 모두 어찌어찌 적응하는데 가끔 어디 사는 누군가가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사라졌다는 풍문이 돌기도 하지만 곧 잊혀진다. 혹시나 그 거인들의 나라가 세상에 둘도 없는 지옥이라고 생각하시지 않길 바란다. 어린이들은 사소한 일이나 하잘 것 없는 농담에도 함빡 웃는다. 아주 작은 일이나 별거 아닌 말에도 어른들보다 훨씬 큰 상처를 받고 괴로워한다. 우리 아이들이 지금 같은 환경에서도 대체로 크게 탈 없이 잘 자란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정신이 강하고 위대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 인간은 어디서든 적응 잘 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생물이다. 특히나 우리의 어린 것들은 더더욱 그러하다. 아이들은 정말 유연성이 높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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