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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식 Jul 23. 2018

1. 호모 루덴스

문화는 놀이 안에서 놀이로써 생겨나서 전개된다. Culture arises and unfolds in and as play. 

–– Johan Huizinga. Dutch historian 1872-1945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을 가지는 『호모 루덴스』는 유럽에서 파시즘이 거세게 발호하던 1938년에 출판되었다. 역사학자인 저자 호이징가가 이 책에서 놀이의 특징으로 꼽은 것은 다음의 네 가지이다. 


⑴ 자유 

⑵ 탈일상적인 일시적 활동 

⑶ 제한된 시간과 장소 : 놀이는 ‘매직 써클’이라 불리는 격리된 장소인 신성한 금역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 이루어진다. 

⑷ 놀이는 질서를 창조하며 질서 그 자체인 완벽성을 가져다 주는 활동이다. 또한 율동과 조화라는 미적 요소와 공정성의 윤리적 내용을 가진다. 


  ‘자유’는 자발성과 자율성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어 무리 없이 받아들였지만 나머지 세 특징에 대해 이후의 이론가들은 호이징가가 제시한 개념을 비판하면서 놀이연구를 확장하였다. 특히 호이징가가 과거 고전시대의 놀이는 상찬하는 반면에 도박 같은 우연적 놀이를 제외하거나 현대의 놀이를 폄하하는 등 귀족적 면모를 보인 것은 호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호모 루덴스:놀이와 문화에 관한 한 연구』의 방점은 놀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명에 찍혀 있었다. 그는 문명이 전개되는 토대로 놀이를 주목하여 역사 인식의 틀을 흔들었다.  

  “문명은 놀이 안에서 놀이로써 생겨나 놀이를 떠나는 법이 전혀 없다.”라는 명제를 역사학의 방법으로 증명하기 위해 호이징가는 『호모 루덴스』를 썼다. 그에 따르면 네 가지 특성을 가진 놀이의 활동이 분화하면서 언어, 신화, 제의(축제·의식), 종교, 경기, 내기, 상거래, 덕성, 법률(재판·소송), 전쟁의 규칙, 철학적 사고, 시, 희곡, 음악, 무용, 조형예술, 정치가 되었다. “문화는 놀이의 한 형태이며, 놀이가 사회구조 그 자체이다.” 언어학자 촘스키에 따르면 모든 언어에 보편성과 공통점이 있으며 이를 언어의 심층구조라 한다. 이처럼 인류 문명의 심층구조에는 놀이라는 문화 전단계의 원형이 존재한다. 놀이질서는 인간세계와 문명이라는 거대 생태 체계의 심층구조이자 보편문법이다. 놀이라는 미시적이고 활동을 역사와 문명이라는 초거시적인 범주와 엮는 게 무리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놀이이론서에서 호이징가는 최고의 고전이지만 좀처럼 언급되지 않는다. 호이징가는 역사 놀이의 확장형임을 논증했다고 믿었지만 후세의 학자들에게는 선언으로 여겨졌다. 

  호이징가는 결론에서 “놀이 정신이 없을 때 문명은 존재할 수 없다”고 하였다. 책을 마무리하면서 사뭇 비장하게 말한다. “진정한 문명은 어떤 놀이 요소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문명은 자제와 극기를 전제로 하며, 또한 그 자신의 경향을 궁극적 최고 목표와 혼동하지 않는 능력, 그리고 자신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어떤 일정한 한계 안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능력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문명은 어떤 의미에서는 항상 어떤 규칙에 따라 행해지는 놀이일 것이며, 진정한 문명은 항상 페어플레이를 요구할 것이다.” 그에게 놀이의 타락은 문명의 타락이었다. 그가 이 책을 준비하던 시대는 유럽의 극우파들이 준동하면서 전쟁의 암운이 짙게 깔려있었다. 호이징가가 문명의 미래에 대하여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놀이와 문명의 관계처럼 큰 주제는 한 동안 학자들이 기피하였으나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중 하나인 제레미 리프킨은 저서 『접속의 시대』 (한국에서는 『소유의 종말』로 번역됨)에서 "놀이는 간단히 말해서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사람의 상상력을 해방시켜 공유할 수 있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놀이는 인간 행동의 가장 근본적 범주에 해당한다. 놀이가 없으면 문명도 존립할 수 없다"라 하면서 호이징가의 명제를 이어 받았다. 결론부인 ‘놀이의 변증법’에서 놀이마저 상업화되면 우리 문명이 붕괴된다고 하여 상업화된 놀이를 경계하였다. 시장과 정부라는 기제는 문화라는 바탕이 없다면 작동할 수 없으며, 그 문화의 원천이 되는 것은 호이징가가 밝혔듯이 놀이이고, 우리는 놀이 안에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체득하게 된다. 역사나 문명보다 더 거시적인 진화론의 안목에서 보아도 놀이는 중요한 실체이다.  호이징가는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노력을 정지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 하였고 리프킨은 "놀이에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즐거움과 삶의 본능을 긍정하는 것"이라 하였다. 놀이는 인간이 가장 순수해지는 활동이다. 정신의 휴식, 여가, 휴식, 빈둥거림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그리스어 ‘디아고게’는 문명의 차원이 아닌 개인의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여기에는 ‘지적이고 심미적인 몰두’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동양 전통의 한(閑), 즉 느긋함과 비슷한 느낌과 의미를 준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는 말에는 생계와 생존을 노동의 목적으로 삼는 인식이 드러난다. 그런데 노동의 목적은 바로 삶의 목적이다. 먹고 사는 것이 목적인 삶과 놀이와 느긋함을 누리며 사는 삶 중에 어느 쪽이 바람직할 지는 자명하다. 그렇다면 성숙한 놀이 안에서 삶을 누리는 것을 방해하는 자들은 누구일까? 호이징가는 극우세력을 지목하였고 리프킨은 글로벌경제를 옹호하는 세력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그에게 성숙한 놀이는 “정치적 성격을 띠었건 상업적 성격을 띠었건 제도화된 권력의 무분별한 횡포에 저항하는 힘”이다. 놀이하는 인간은 삶의 목적을 잊지 않고 이를 방해하는 권력에 저항하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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