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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식 Jul 23. 2018

2. 애착: 최초의 놀이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워즈워츠 


  한 아기가 웃고 있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이 빛나는 웃음으로 화답하며 아기를 어른다. 서로 마주보는 두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아무리 완고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따스해질 것이고 숭고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지고 분석하고 설명하려 한다. 아이는 왜 웃을까? 아이는 자신이 보는 모습이 엄마인지 그냥 돌덩이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두 사람이 저렇게 웃는 동안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자이자 소아정신과 의사인 존 볼비는 ‘애착attachment’이론을 만들었다. 

  일상에서 애착이 있다거나 애착을 느낀다고 말하면 뭔가에 끌리거나 몹시 사랑하여 집착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에서는 젖먹이 아기가 엄마 또는 양육자에게 끌리는 감정이나 둘 사이의 관계를 말한다. 육아를 다루는 글에 자주 나오는 ‘만 세 살까지 엄마가 키우는 게 좋다’고 하는 게 바로 애착이론이다. 모든 인간은 어려서 애착을 형성하게 되어 있다. 육아라는 작업이 더할 나위 없이 힘들면서 동시에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엄마 또는 양육자가 아기에게 안정적인 유대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만 애착이 제대로 형성된다. 애착이론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나중에 살필 양육가설 비판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애착이론을 유아기 결정론이라고 비판하고, 유아기 이후의 여러 경험들의 영향이 또한 크다고 보았다. 

  그러나 아기가 태어나면 몇 년간은 양육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생존이 가능하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자신을 살려주고 보호해 줄 존재가 누구인지 확인해야 한다. 아기들은 얼굴에 집착한다. 갓난아기들은 다른 무엇보다 사람의 얼굴에 반응한다. 현란한 색깔과 다양한 소리와 특이한 모양을 가진 물체를 가져다 주면 젖먹이들은 잠시 반응하기도 한다. 그러나 별 특색 없는 ☺같은 그림 쪽에 더 오래 시선을 던지며 웃음을 짓는다. 인간의 갓난아기는 사람의 얼굴이나 사람의 얼굴과 비슷하게 생긴 모양을 계속 바라보도록 정향되어 있다. 애착은 이렇게 형성되기 시작한다. 양육이란 아기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고 불편한 점을 해소하는 것 이상이다. 유아들은 자신에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상호작용을 꾸준히 많이 하는 양육자에게 애착을 가지게 된다. 다시 말해서 따스하고 부드럽고 같이 놀아주는 어른을 자신의 보호자로 인식하게 된다. 

  애착이 형성되는 시기에 제대로 된 양육을 받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는 마약중독자의 아이들이나 부실한 고아원의 아기들이다. 이 아기들이 성장한 다음 평생 불안에 시달리기도 하고 정서가 불안정한 경우도 많았다. 태어나서 2~3년 간 애착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아기가 나중에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에 일생의 손상을 받았다는 사례도 있다. 안정적인 애착 형성은 이렇게나 중요하다. 어떤 아기가 양육자의 얼굴을 못 보고 자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문제가 되는 지점은 애착이 확고하냐 불안정하냐 이다. 애착이 잘 형성되어 있는가 혹은 애착 형성에 문제가 있는가 하는 것이 애착이론과 육아에서 관건이 된다. 

  신경생리학자들은 마주보고 웃는 등의 동조놀이를 할 때 우측 대뇌 피질이 활성화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뇌를 스캔 해도 얼굴을 인식하는 영역과 타인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영역은 겹친다. 애착 형성은 ‘사회성’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만 3세 전에 애착이 잘 형성된 아이는 평생 사회성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도 한다. 불안정한 애착이 형성된 불행한 아이들의 뇌에는 감정과 유대감을 담당하는 뇌 부분이 활발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70년대 500명 이상이 참여한 대규모 실험에서도 어머니가 아기에게 주는 애착과정이 아기의 신체적 인지적 수행능력과 확실한 관계를 맺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실험이 계속되었고 결과는 모두 애착 과정에서 놀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결과는 빈곤층과 중산층 아동들이 신체능력이나 정신능력에서 초기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상당수의 경우를 설명해준다. 

  이론가들은 이렇게 일어나는 애착을 ‘동조놀이attunement play’라고 부르며 인간이 하는 최초의 놀이이자 놀이상태의 근본 토대로 본다. 모든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 하는 놀이인 애착은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영장류도 하는 놀이다. 잠정적으로 수백 만년 단위의 시간 동안 계속 되어온 놀이이다. 이 동조놀이를 할 때 한국어로 ‘까꿍’이라는 추임새를 보통 넣고 영어에서는 ‘피카부’라 한다. 이런 말들은 인류의 조상이 최초의 언어를 사용하기 전단계의 신호음이라 해도 무색할 만큼 원시적 음운을 가진다. 억측이나 막막한 상상이겠지만 먼 옛날 인류의 조상들도 아이를 어를 때 크게 다르지 않은 소리를 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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