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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원식 Sep 03. 2018

30. 놀이 다형성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은 많이 놀아야 한다. Whoever wants to understand much must play much. 

–– Gottfried Benn. German physician 1886-1956 


놀이생태계를 복구한다거나 복원한다는 표현 대신에 놀이 생태계를 최적화한다는 표현이 좋다. 기준은 놀이 다형성 play diver-balance이다. 이는 다양성diversity과 균형balance을 합친 개념이다. 놀이 다양성play diversity는 실내외의 여러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놀이 레퍼토리를 보다 풍성하게 확장해야 한다는 개념이며 놀이 공간과 시간의 풍부함을 포함한다. 

놀이활동의 종류는 다양하고 풍부해야 한다. 보통 취학 연령을 기준으로 전조작기와 조작기를 나누는데 취학 이후의 조작기 아동은 그 이전의 단계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감각’을 나타낸다. 학령기가 되면 아동은 발달의 여러 측면에서 두드러진 변화를 보이면서 논리적·상징적 사고와 사회·정서적 면에서 1년 전의 모습과 확연히 다른 점을 보여준다. 이 때부터 놀이의 다양성이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성별에 따라 선호하는 놀이 활동이 다르고, 아동의 발달 단계에 따라 선호하는 놀이가 달라진다. 같은 성별에 같은 발달 단계의 아동들도 성향에 따라 경쟁적 요소가 강한 놀이, 우연적 요소가 강한 놀이, 기교 놀이를 선호하는 정도가 다 다르다. 다양성은 이러한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균형점이라는 기준에는 안정성stability이 포함된다. 안정성은 다시 두 겹의 의미를 가진다. 넓은 의미에서 놀이생태계를 이루는 어린이들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말하고, 좁은 의미에서 연령이나 발달 단계 별로 안정적인 놀이 레퍼토리를 의미한다. 놀이 다형성은 놀이생태계 안의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동시에 그리고 결과적으로 인지적인 면과 사회적인 면에서 풍요로움을 주게 된다.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는 또래집단과 다양한 놀이 레파토리와 안정적인 공간 등은 ‘가족과 돈’이라는 한국 사회의 행복 기준을 넘어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감수성을 촉발할 수 있다. 

풍요가 넘쳐나는 현재 상태에서 어린이들이 시험과 학업고문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놀이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공간이 있다고 해도 놀이생태계가 최적화된다는 보장이 없다. 외래종놀이에 이미 익숙해진 아이들은 여럿이 한 공간에서 어울려 놀이하는 일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수험산업이 완전히 와해된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골방에서 몰입도가 높은(중독성 강한) 게임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어린이들은 밖에서 또래들과 놀이를 하더라도 매우 쉽게 해체된다. 필자가 관찰한 바로는 아이들끼리 놀도록 내버려 두었을 때 한 가지 놀이를 오래 하는 경우는 드물다. 모여 있다가도 재미가 없으니까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서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 장에서 살피겠지만 플레이 바웃play bout이 매우 짧았다. 

따라서 놀이생태계를 최적화하기 위해서 어른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여기서 몇 가지 참고할 사항이 두 가지 있다. 먼저자원봉사자건 플레이리더이건 어른과 아이 사이에 흔히 신뢰감이 쌓여야 한다. 필자를 포함해서 여러 어른들이 재밌는 놀이를 가르쳐 준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에게 접근했을 때, 많은 낭패를 본 부분이 바로 신뢰감이다. 기성 세대가 예전에 어렸을 적에 몇 시간씩 즐겁게 놀았던 놀이가 지금 어린이들에게 재미없다고 느껴질 수 있다. 과거와는 생활공간과 생활감정이 완전히 달라졌기에 옛놀이가 똑같은 재미와 쾌락을 제공하지 못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성인의 개입도이다. 놀이에서 성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놀이의 주도권이 가급적 어린이에게 있어야 한다. 주도권이 어린이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성인이 개입했을 때 적절한 수준은 지원적 개입이 된다. 개인적인 경험 속에서 필자는 어른이 아이들에게 놀이를 가르치면 안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연구에 따르면 성인이나 교사의 개입이 부정적인 경우도 30% 가까이 나오기도 한다. 역시 또래집단 중 선배들이 재미있게 놀면서 놀이맥락이 형성되는 찰나에 신참 어린이들이 어깨 너머로 놀이의 정수를 이어받아야 놀이의 신성성을 느낄 수 있다. 

안전하고 풍부한 놀이 환경을 어린이에게 제공하는 일은 이제 의도적인 수준에서만 가능하다. 다양한 놀이를 제공해서 놀이생태계 구성원들이 취사선택을 할 수 있게 놀이 레퍼토리를 늘려줘야 한다. 어떤 한 놀이가 모든 어린이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또한 또래집단에서 소외되거나 놀이에 부정적 인식을 가진 아동들을 가급적 격려해야 한다. 지원적 개입 전에 아동들에 대한 관찰이 있어야 한다. 교란된 놀이생태계라도 나름의 맥락과 틀을 가진다. 그 흐름을 읽지 못하고 성인이 막무가내의 개입을 한다면 오히려 놀이를 방해할 수 있다.


[1]

놀이 다형성을 논할 때 남아와 여아의 성별에 따른 차이는 매우 민감한 부분이다

양성평등이라는 당위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아동에게 나타나는 생물학적 정향성은 무시할 수 없다

여자 아이에게 ‘여자답게 놀라’는 말을 해서는 곤란하지만

여아들과 남아들이 선호하는 놀잇감과 놀이의 종류가 성인의 개입 이전부터 나타날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수많은 연구에서 생후

 10

개월부터 남녀의 성차가 놀잇감 선호에서 나타난다는 것은 성차가 문화적인 면이 물론 있지만 생물학적 측면을 도외시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놀이에서 성차는 유아기를 넘어 아동기 전반에서 관찰된다. 성인의 문화적 영향력이 있으리라 생각하기 어려운 영유아기 행동의 특성을 살피면 여아와 남아 사이의 차이와 공통점은 또렷해진다. 예를 들어 놀이 중인 동성간의 갈등이 나타나는 양상과 빈도와 그 해결방식을 보자. 일상적인 관찰을 봐도 세심한 연구한 결과를 봐도, 남아 사이의 갈등 양상과 여아 사이의 갈등양상은 어느 문화권이나 비슷하게 나타난다. 남아는 격렬한 논쟁과 물리적 충돌이 두드러진다.  

여아들의 갈등 양상은 관찰자 입장에서 알아차리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남녀 모두 갈등의 빈도는 비슷하다.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들에 비해 더 많은 갈등상황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여자 아이들도 남자 아이들만큼 또래집단 내부의 갈등을 겪고 느낀다. 단, 물리적 폭력을 동반하는 경우가 드물기에 성인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 따름이다. 마지막으로 갈등의 해결에 대해서는 남아들이 여아들에 비해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는 데 좀더 능숙한 것으로 나온다. 여자 아이들은 갈등에 직면하는 것보다 갈등 상황을 회피하거나 갈등이 심화되기 전에 무마하거나 아예 갈등이 심화되기 전에 관계를 단절해 버리는 전략을 취한다. 취학 이후 남아와 여아는 학교 같은 인위적인 상황이나 마을에 아동이 몇 명 안 되는 특정한 상황이 아니면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놀이를 하지 않는다. 성별에 따라 놀이생태계가 분화된다. 성차와 놀이생태계는 중요한 테마가 될 수 있다. 놀이생태계의 교란 이후에 성장한 세대에서 ‘알파걸’이라 불리며 남학생들에 비해 여학생들이 여러 면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 있었다. 여아들의 놀이생태계가 남아들의 놀이생태계에 비해서 과거와 단절된 모습이 적어 교란이 비교적 적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런 성차에 대한 이해를 깊어야 각 성별의 놀이생태계를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으며 그에 더하여 놀이 다형성이 충분히 규명될 수 있다. 


          

[1]

성인의 개입도가 커지는 순서로 성인의 역할을 유형화하면 다음과 같다

비참여자

방관자

공동놀이자

환경구성자

놀이안내자

지시자

/

교수자

놀이생태계가 최적화된 수준에서는 성인의 개입도가 낮은 편이 좋지만

현재로선 중간의 네 역할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넘나드는 것이 지원적 개입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놀이 환경을 구성한 뒤 여러 놀이를 제공한 뒤 아동들이 익숙해지면 때론 공동놀이자로 함께 놀다가 힘이 부치면 방관자로써 아이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수준으로 물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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