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할 때 우리는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게 된다. In our play we reveal what kind of people we are.
놀이는 인간에게 가장 유용한 몰두(관심사)였다. Play has been man’s most useful preoccupation.
‘한 바탕의 놀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플레이 바웃play bout은 한 가지 놀이를 시작한 다음 그 놀이가 끝날 때까지 걸린 ‘놀이 지속 시간’을 말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이 어떤 놀이를 가장 좋아하는 지도 알 수 있으며 어떤 놀이가 특정한 놀이생태계에서 잘 받아들여지는 지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딱지치기를 하더라도 개인끼리 승부를 내도록 하면 놀이 지속 시간이 1~2시간에 불과할 수 있지만 모둠으로 승부를 내게 하면 3~4시간이 훌쩍 간다. 같은 놀이라도 방식이나 구성원에 따라 놀이 지속 시간이 다르게 나온다.
어른이 전혀 개입하지 않거나 개입할 필요가 없는 상태에서 여러 놀이가 진행되는 것을 관찰하여 플레이 바웃을 측정하면 놀이생태계의 안정화 척도를 알 수 있다. 놀이생태계의 안정화 척도는 다시 말하여 문화적 슈퍼에고의 척도라 할 수 있는데, 이 점을 잘 고려해야 한다. 문화적 슈퍼에고가 낮으면 사회가 혼란스럽게 되겠지만 그 반대로 높으면 사람들은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해 볼 여지를 갖기 힘들다.
흥미롭게도 소꼽장난 등의 가장놀이를 하는 각 아동의 플레이 바웃을 측정하면 그 아동의 상상력이나 학습능력, 문화적 상징을 다루는 능력등이 정확하게 측정이 된다는 연구가 있다. 인간은 학습을 할 때 놀이 과정과 놀이 원리 안에서 작용 하게 된다. 시대와 상관없이 중요한 것을 학습할 때는 그러하다. 그런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가장 궁극적인 학습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 등의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을 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인간은 스스로가 아닌 척 하면서 놀이를 하는 동물이다. 총싸움을 하고 인형놀이를 하는 아동들은 자신이 군인이나 엄마라고 착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연기한다. 이런 연기는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한 인식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역할을 흉내 내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놀이는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힌트를 얻어내는 과정이다. 놀이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변하면 놀이도 따라 변하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도 인간은 스스로에 대한 앎을 놀이 과정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 타인이 타인을 볼 때 족보를 보기도 하고 대학 졸업장을 보기도 하고 어떤 동네 몇 평짜리 어느 아파트에 사는가를 보기도 한다. 그러나 한 인간이 자기자신을 평가할 때 이것만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는 사람은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자신의 삶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놀이 과정과 놀이원리에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얹었는가이다.
주변의 어른들이 이끄는 길만 밟고 성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어른들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고 어른들이 좋아하고 인정하는 것을 해왔다. 자발성의 결여로 나타나는 놀이실조다. 이들은 대체로 대학을 졸업하거나 직업을 구하거나 배우자를 구할 때까지는 아주 멀쩡하다. 주위에서 인정하는 것을 계속 추구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놀이실조를 겪은 이들이 스스로의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되면 판단력이 중지되는 궁지에 몰릴 수 있다.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해왔는지 이들은 알 지 못한다.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선택하지 않고 남들이 원하는 것을 선택해왔기 때문이다.
플레이 바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많다. 게다가 놀이생태계에 성인의 적절한 개입이 이루어지면 플레이 바웃은 현격히 늘어날 수 있으며 플레이 바웃의 전반적인 증가는 아동의 여러 능력과 기술이 앞으로 얼마나 향상될 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놀이 지속 시간을 늘리는 방법을 잘 익힌 플레이 리더가 필요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잘 논다’는 말이 학술적으로 의미가 있으려면 플레이 바웃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더불어 놀이생태계가 최적화되었다는 판단 역시 플레이 바웃을 한 척도로 삼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