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마사지, 야경 구경 없는 방콕 여행에서 호텔이란?
나의 아들은 초등 5학년이다. 주말에 가족 나들이를 가도 우리 가족은 백화점에 잘 가지 않는다.
아이 아빠도 아이도 쇼핑을 무척이나 지루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물며 방콕이라고 예외일리는 없다.
하지만 혹시 마사지는?
방콕에 도착해서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니 방콕의 일반적인 마사지 샵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누가 무슨 마사지를 받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구조였다. 물론 건전한 마사지샵인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리라. 하지만 우리 아들은 그것을 보더니 식겁을 했다.
도대체 저기서 뭐 하고 있는 거냐고....
5학년, 이제 6학년이 되는 아들은 사춘기의 문 앞에 있다. 그런 아들에게 마사지를 함께 하자고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애초에 엄마인 나는 마사지를 하겠다는 생각은 접고 방콕 여행을 계획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나의 예상은 맞았고 기대가 없었기에 그리 실망도 크지는 않았다.
쇼핑과 마사지가 없는 방콕 여행....
그러기에 우리의 방콕 여행은 달라야 했다.
물론 야경으로 유명한 루프탑 바도 일정에 넣을 필요가 없었다. 늦은 밤 방콕 시내를 돌아다니기에는 5학년 아들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낯선 곳에서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아들은 호텔 방에서 조용히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국내에서도 제주도나 강원도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 가족은 저녁 시간에는 대부분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도 가만 생각해보면 어릴 적 저녁 늦은 시간에 차를 타고 낯선 곳엘 가게 되면 언제나 불안하고 언제 집에 가게 되나 걱정 아닌 걱정을 했던 기억이 있다. 마치 이 길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고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나도 아들에게는 저녁 나들이를 그리 권하지는 않는 편이다. 특히 낯선 도시로의 여행에서는....
방콕으로의 여행에는 쇼핑과 마사지 그리고 야경 구경은 제외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방콕에 호텔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많아도 너무 많다.
나는 호텔을 선택하면서 결정장애의 끝판왕이 되고 말았다.
국내 여행에서 호텔 선택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격과 네임벨류에 따라 선택하면 그렇게 실수를 하거나 실패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5성급만 수백 개에 달하는 방콕에서 그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처음 방콕을 여행하는 여행객에게는 세상에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을 것만 같았다. 특히 사춘기 초입에 들어서는 아들과 여행하는 엄마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호텔을 결정하기 위해 태국과 관련된 사이트와 카페 블로그를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를 거의 일주일.
총 7박 8일의 여행을 한 호텔에서 모두 머무를 것인지, 3박 또는 4박씩 나눌 것인지부터가 고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호텔 조식도 일주일을 먹으면 질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한 곳에 몰았다가 그 선택이 최선이 아니라는 후회가 생기면 어쩌나 싶기도 해서 나는 결국 고민 끝에 두 곳의 호텔을 선택하기로 했다.
방콕은 사실 마사지나 퇴폐(?) 여행 그리고 골프 투어로 성인 남성의 선호도가 높은 여행지이다. 그러다 보니 그런 류의 업소들이 많지 않은 지역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날씨가 너무 덥다는 후기들이 많다 보니 최대한 전철역과 가까운 지역의 호텔을 선택했다. 적어도 하루에 한 곳 정도는 나갔다 와야 하고 수영장은 넓어서 아들이 놀기에 너무 지루하지 않아야 하고 조식도 적당한 구색을 갖추어야 한다는 나름의 기준으로 호텔을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국내 사이트나 후기 블로그보다는 구글맵과 트립어드바이저를 중심으로 호텔을 찾아보았다. 이런 검색 방법을 선택한 것은 아이와의 여행으로 국한하다 보니 국내에서 후기를 찾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아이와의 여행은 어린아이들 특히 유치원생이나 저학년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아이와 호텔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중심으로 하거나 전철과 바로 연결되어 쇼핑을 여행의 주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가 어리니 재워 놓고 마사지를 고민하기도 하고 유모차에 태워 쇼핑을 즐길 만반의 준비가 된 그런 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초등 5학년 아들과 함께 방콕에서 무엇을 함께 보고 느끼고 즐겨야 할지를 고민하는 후기는 참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거나 중국인이 너무 많아 번잡스러운 곳도 피하고 싶었다. 대부분 전철에서 연결된 호텔들이 그런 부류에 속했다. 그래서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전철역에서 도보 10분 정도를 감내하겠다고 생각하고 보니 조금은 한적하고 편안한 호텔을 선택할 수 있었다. 우리는 완전 중심가에서 전철로 한 두정거장 떨어진 전철역 인근 호텔에 4박을 예약했다. 그리고 나머지 3박은 짜오프라야 강가에 있는 곳으로 선택을 했다.
두 곳을 다 경험해 보고 난 지금의 생각은 강가에서 일주일 모두를 보내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 하지만 비교를 할 수 있었기에 강가에서의 시간이 더 값졌을지도 모른다는 위안을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강변이 갑 중 갑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는 없다.
지상철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호텔
방콕의 전철은 지상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노선과 지하철로 이루어진 노선 두 가지가 중심이다. 대부분의 쇼핑센터와 호텔은 지상철을 중심으로 위치해 있다. 우리가 선택한 호텔도 이 지상철에서 도보 10분 정도의 위치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은 미국과 베트남 대사관 중간에 위치하고 있고 주변이 거의 대부분 사무실로 구성된 빌딩 숲 사이에 있었다. 지상철 까지는 15분에 한 번씩 셔틀이 운행했다. 우리가 여행을 갔던 시점은 1월이었기에 한낮의 햇살만 아니면 오후 나절의 도보는 그리 힘겹지는 않았다. 그래서 셔틀은 거의 호텔에서 나와 지상철로 갈 때만 주로 이용했다. 호텔로 돌아올 때는 늘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이 덕분에 우리는 전철역 인근에서 맛있는 식당들을 찾을 수 있었고 작지 않은 슈퍼마켓도 발견했으며 그 동네 사람들이 보드게임을 즐기는 보드 방도 2개나 찾을 수 있었다. 그 호텔의 위치는 우리나라로 본다면 여의도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그곳의 호텔은 출장을 간다면 딱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참 많이 주었던 호텔이었다. 위치도 그렇고 투숙객들도 그렇고... 그러다 보니 넓은 수영장에 아이들은 거의 없고 한적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그냥 서울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가 방콕에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는 참 많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가끔 담벼락에 기어 다니는 도마뱀을 보거나 오토바이 택시들이 호객을 하거나 빌딩 사이의 판자촌을 볼 때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다시 방콕에 간다면 이런 빌딩 숲 사이의 호텔을 선택하지는 않을 듯하다.
그래도 아들은 호텔로 돌아가는 길가에 있던 보드 방에서 태국 가족들과 보드게임을 즐겼던 시간이 참 재미났다고 지금도 이야기하곤 한다. (조만간 재미나게 놀았던 보드 방과 그 옆에 있던 식당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짜오프라야 강변 호텔
4박을 마치고 우리가 옮겨 간 곳은 차오프라야 강변에 있는 아주 오래된 호텔이었다. 100년은 족히 넘은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한 순간 우리 두 사람은 모두 외쳤다. 우와... 여기가 방콕이구나...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수상버스를 타고 왓 아룬을 향했다. 저녁노을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야경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의 욕심에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작년부터 시작한 왓 아룬의 외부 보수 공사는 끝이 나질 않고 있었다. 우리는 야경으로 유명하다는 바를 찾아 들어가는 대신 저녁이라 조용한 왓 아룬 건너편 선착장에서 석양을 맞이했다. 정말 이곳이 방콕이구나 하는 느낌을 물씬 물씬 풍겨주는 조용한 선착장에서 집 없는 고양이와 함께.... 이렇게 우리는 5박째 진정한 방콕을 찾아갔다.
숙소를 선택하는 것은 정말 힘들지만 그만큼 중요하다
여행지에서의 숙소는 선택이 힘들지만 그만큼 여행의 가치를 달리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아이와의 여행에서는 말이다. 어른들끼리야 어디에 묵든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내니 방이 뭐 그리 중요하랴... 그리고 교통이 뭐 그리 대수이겠는가... 좀 걸으면 그만이지... 하지만 아직 밤길이 무섭고 더위에 강하지 않은 아이와 함께 여행을 간다면 숙소가 거의 여행의 질을 좌우한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된다. 앞으로 한 두해만 지나면 이젠 아들이 나보다 키가 훌쩍 더 클 것이다. 그때는 좋은 숙소보다는 그곳의 느낌을 보다 더 물씬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에서 '살아보기'를 해 보고 싶다. 아마 아들도 그것을 더 원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