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아침저널 2-23 천기누설은 우리 부부의 몫
오전에 사무실을 출근하고 보니 너무 피곤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출근시간에 일상에도 변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피곤함은 뭐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난다. 아들의 기말고사 기간이다.
내 아들은 중2다. 세상 무서울 것 없다는 중2다. 하지만 그리 명성과 걸맞게 요란한 중2를 보내고 있지는 않다. 요란한 중2가 아닌 이유 중 하나는 아마 학원을 다니지 않는 여유로움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아들이 유일하게 하는 것은 수학학원 그것도 동네 공부방 같은 곳에서 과외를 받는 정도이다. 취미처럼 다니는 미술 레슨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다. 그 덕분인지 아들은 그리 '무서운 중2'는 아니다.
아들이 무섭지는 않은데 내가 무서워진 건 아들의 시험기간이다. 아들은 중1을 자유 학년제를 보내고 초등학교 내내 시험이 전혀 없는 학교를 졸업한 관계로 올해 중2에 처음으로 '시험'이라는 것을 치렀다. 중간고사는 몇 과목 되지 않아 별 부담이 없었고 첨이라 실력껏 보라고 했더니 정말 '실력껏' 봤다. 중간고사 이후 아들은 시험 점수를 산정하는 방법을 알고 나더니 이번 기말고사를 잘 보지 못하면 성적이 엉망일 거라고 스트레스를 받아하기 시작했다. 소화도 안되고 가슴이 답답하단다. 가만 둬서 될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을 보내지 않았으니 저 스트레스를 풀어주려면 우리 부부가 발 벗고 나서야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을 다니면 학원 선생님이 어떻게 '천기누설'이라도 해주실 터인데 우리는 남편과 내가 과목별로 나눠가며 천기누설 아닌 천기누설을 하기로 했다.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며...
아들의 기말고사는 이번 주 수, 목, 금요일이다. 그래서 월요일 저녁부터 우리는 속성 족집게 과외를 시작했다. 먼저 아들의 기말고사 범위를 파악한 뒤 나올만한 부분과 요점정리를 목소리를 높여가며 주입시키기 시작했다. 저녁마다 거의 세 시간씩 아들에게 과외 아닌 과외를 하다 보니 아침이면 녹초다. 몇십 년째 보지 않던 교과서는 우리가 공부할 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고 내용도 전혀 다르다.
어제는 도덕을 가르치는데 내용이 정말 시대의 변화를 실감 나게 한다. 주요 내용이 컴퓨터 게임 중독과 왕따를 시키면 안 된다부터 대화를 할 때 공감능력을 키워야 하며 타인의 말에 경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일을 하기 위해 통일 비용이 들고 세계 평화를 위해 통일을 해야 한다는 내용은 반공 교육을 받았던 세대로서 도덕책 내용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을 만들겠다는 근본 취지는 비슷할는지 모르겠지만 세부 내용이 시대에 따라 참 많이도 변했구나 싶어 재미나다. 한자를 잘 모르는 세대인 아들은 한자의 의미를 알아야 파악이 쉬운 도덕책의 정의들을 어려워한다. 한자만 알면 설명이나 이해가 쉬울 터인데 그것을 일일이 다시 설명해주어야 하는 것도 손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도덕을 마치고 남편은 기술가정을 가리킨다. 다행히 수학은 과외를 다니니 그곳에서 어찌어찌했나 보다. 오늘 수요일 시험은 이렇게 수학과 기술가정, 도덕이다.
그제는 금요일 시험인 국어를 정리해 주는데 국어 또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시 구절과 소설이다. 그리고 예시가 요즘 유행하는 가요들이라는 것도 재미나다. 오늘 세 과목 시험을 마치고 돌아오면 저녁에는 과학과 영어를 정리해 주어야 한다. 좀 더 일찍 아들에게 요점정리를 해줄 걸 하는 후회가 생긴다.
아들의 사교육을 최소화시킨 결과는 오롯이 우리 가족의 시험에 대한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아들도 시험기간이 다가옴에 따라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커졌다. 그것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 우리 부부는 발을 벗고 나설 수밖에 없다. 시험 덕분에 아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힘들지만 그래도 보람차다.
너무 대단한 사춘기를 보내지 않는 아들에게 감사하며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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