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아침저널 2-24 따릉아 있어줘서 고맙다
회사 사무실 앞에 초록색 자전거들이 늘 한 줄로 늘어서 있다. 서울시 공유 자전거 ‘따릉이’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곳이다. 출퇴근 시간에 늘어선 자전거를 보며 속으로 공유 자전거들이 저거구나 하면서도 막상 그 자전거를 타보려는 생각을 하지는않았다. 우선 요즘의 극심한 미세먼지가 나를 막았고 더운 날씨도 그랬고 출퇴근 복장도 선뜻 자전거를 이용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지는 않았다.
지난 주말에는 집 근처 중고서점인 알라딘에 가서 책을 사고 싶었다. 그런데 이것저것 분주하게 시간을 보내고 보니 서점에 가는 것을 깜빡했다. 집에 읽고 싶은 책이 똑 떨어진 상태다. 마음속에서 계속 알라딘에 가자고 나를 재촉한다. 어떻게 하지? 걸어가야 하나?
내가 있는 사무실에서 알라딘은 집을 가는 길 중간쯤에 있다. 지도상에서는 퇴근길 정중앙이지만 대중교통이 가는 길이 아니다. 알라딘은 걸어가야지만 가능한 위치다. 사무실에서 집까지 걸어가면 꼬박 40분이 걸린다. 날씨가 좋은 날 한번 걸어보자 싶어 구두를 신고 걸었다가 며칠 동안 발바닥에서 불이 났던 경험이 있던지라 선뜻 다시 걷고 싶어 지지가 않는다. 그러다 문득 따릉이가 생각이 났다.
그렇지~~~
그날은 출근하면서부터 복장을 단단히 했다. 오늘은 기필코 따릉이를 타고 알라딘을 가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기에 용이한 복장으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웹사이트에서 따릉이 홈페이지를 찾아 이용 방법을 숙지했다. 생각보다 굉장히 편리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나왔다. 나의 예상과 달리 따릉이는 인기가 많았다. 딱 하나 남은 따릉이를 예약하고 나섰다. 따릉이는 집에 있는 내 자전거와는 달리 바구니도 달려있고 생긴 모양새는 동네 마실을 나가야 할 것 같은 그런 비주얼이다. 샤방샤방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바람에 날리고 말이다. 하지만 실상 나는 '결연하게' 정장 바지를 입고 구두를 신은 직장인 모드다. 그래도 어떠랴 나를 알라딘으로만 인도시켜 준다면야. 웹사이트에서 일일 정기권을 천 원에 결재했다. 따릉이에 드디어 생명이 불어넣어졌다. 나에게 한 시간이 허락된 것이다. 늘 타던 자전거와 달리 따릉이의 모양은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완전히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타야 하는 모양새다. 조금 뒤뚱거리면서 당황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가뿐하게 탈만해졌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 유유히 알라딘을 향했다. 따릉이를 타고 가다 보니 나와 같이 따릉이를 타고 있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왠지 모를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대로변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버스로 차로 지나만 다니던 길을 자전거로 달리니 또 새롭다. 바람도 시원하고 오늘따라 공기도 상쾌하다. 오늘은 정말 따릉이를 타기에 최고의 날씨다. 퇴근길의 페달을 돌리는 발에 힘이 들어간다. 그렇게 주변 경치도 구경하고 사람들도 보면서 즐겁게 알라딘에 닿고 보니 아뿔싸! 20분이나 경과했다.
갑자기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마치 한 시간 안에 이 모든 '거사'를 치루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옥죄어 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여유로움은 사라지고 갑자기 핸드폰에서 타이머를 맞추기 시작했다. 알라딘에서 책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은 10분 남짓이다. 책을 고르고 결재하고 다시 따릉이를 타는 데까지 적어도 20분 안에 모두 마쳐야 한다. 그래야 남은 20분으로 집 근처 거치대에 따릉이를 시간 안에 반납할 수 있다!
알라딘에서 사고 싶은 책을 책 목록에 이미 저장해 둔 터라 책을 고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책이 있는 곳을 찾아 책을 훑어보니 그리 마음에 드는 책이 없다. 최근에 급하게 고른 책에서 실망이 너무 컸던 기억이 있었던 지라 선뜻 책이 골라지지가 않는다. 십 분은 금세 날아갔다. 어쩌지? 뭐라도 하나 사야 하는데... 마음이 급하다. 이러다 또 실수하는 거 아닐까? 초초하게 서가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우연히 읽고 싶었던 고전이 한 권 눈에 들어왔다. 그래, 고전이다! 잽싸게 한 권을 계산하고 나오니 생각한 20분이 경과한 상태였다. 다시 따릉이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까와는 달리 주변이 눈에 들어오지가 않는다. 신호등이 너무 많다. 가는 곳마다 신호가 걸린다. 자전거를 타는 시간보다 횡단보도 앞에 서있는 시간이 더 많다. 신호를 기다리며 시계를 보니 58분이 경과한 상태다. 그런데 아직도 횡단보도는 2개가 더 남았다. 제길! 한 시간을 넘길 판이다.
마지막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황망히 60분을 넘긴 타이머를 보았다. 웹 지도에서 자전거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분이라고 했지만 자동차의 내비게이션과 달리 웹 지도는 자전거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간과한 것이다. 오롯이 자전거를 타는 시간만을 계산하고 횡단보도에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 것이다. 따릉이는 정해진 시간을 초과하면 10분당 200원이 추가 과금이 된다. 공연히 200원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을 파봐라 200원이 나오나! 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했다. 위험하다! 이럴 때일수록 넘어지거나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그리고 200원이 뭐라고. 그게 내 생명보다 더 소중하단 말인가? 그리고 내가 왜 따릉이를 빌렸던가?
애초 내가 왜 자전거를 빌리고자 했는지 그 이유부터 다시 생각해보았다.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고 주변도 돌아보면서 알라딘에 가서는 즐겁게 책도 고른 뒤 퇴근하고자 했던 게 나의 초심이었다. 그런데 나는 어느새 한 시간이라는 족쇠에 갖쳐서 그 시간 안에 거사를 치르겠다는 일념으로 나를 채근하고 있었다. 그냥 그 순간을 즐기면 될 텐데 말이다.
한 시간을 조금 넘기면 어떠랴! 또 언제 이런 즐거운 일탈을 해보겠는가! 즐겁게 200원을 더 쓰자고! 나를 다독이고 마지막 페달을 밟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짧지만 남은 여정이 즐거워졌다. 다시 주변 경관이 들어왔고 비탈지지 않은 자전거 도로가 축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힘들지 않게 한 시간을 즐길 수 있었던 잘 정비된 자전거도로가 감사했고 그래도 새로운 읽을거리를 하나 찾은 것에 감사했고 무사히 거치대에 자전거를 반납할 수 있는 상황이 감사했다.
한 시간이 경과한 것이 아쉽긴 했지만 즐겁게 자전거를 반납했다. 반납하고 보니 2분이 경과되었다. 그런데 따릉이가 초과 과금에 대한 아무런 반응이 없다!
‘헐!'
10분을 채우지 않았기에 초과 과금은 없었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200원'을 번 것만 같다. 이 몇 분 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를 생각하니 우습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리고 저녁나절 내내 오늘의 따릉이와의 한 시간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이 계속 생각이 나고 기억에 남는다.
나는 따릉이와 함께 한 그 시간을 내 머릿속에 새로운 기억으로 남긴 것이다. 늘 반복되는 일상 속에 오늘의 퇴근길 일탈이 내게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아주 짧은 몇 분 동안 이루어졌던 나의 번뇌가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고 삶의 교훈을 주었다. 요즘 들어 시간이 정말 유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은 그 유수와 같은 시간 속에 잠깐 멈춤을 경험했고 그 멈춤 속에서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남은 날들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따릉아~ 있어 줘서 고맙다.'
따릉이는 서울시의 자전거 공유시스템입니다.
사진 출처 : https://www.bike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