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아침저널 3. 8월 21일
"밥 먹어~~~~~"
늦게 돌아온 아들에게 저녁을 먹으라고 부른 지 벌써 30분째다. 아무런 말이 없다. 급기야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에 앉아 무얼 하는지 핸드폰만 만지고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들 밥상 차려 주겠다고 퇴근 후 부랴 부랴 시간에 맞추어 달려온 나의 노력을 모른채 하는듯 한 아들의 행동에 일순간 나도 모르게 폭발했다.
" 아들, 너 뭐해? 배고프다며... 근데 왜 계속 변기 붙들고 앉아 있는 거야.. 당장 나와!!!!"
솔직히 말해 일순간 아들의 행동에 화가 났지만 나는 그속에서 남편과 시아버님과 그리고 얼굴도 뵌 적 없는 시할아버지와 그리고 그 윗대의 어르신들이 투영되었다. 그랬다. 변기를 붙들고 마냥 앉아 있는 것은 남편 집안의 내력이었다(남편으로부터 얻어 들은 정확한 이야기이기에 나의 과장은 포함되지 않았음을 밝힌다). 남편도 시아버지도 그 덕에 치질 수술을 하셨다. (그 윗대에는 치질 수술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그 고통을 오롯이 견디며 사셨을 것이다. ) 변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남편의 변론에 의하면 절대 화장실에 굳이 그리 오래 앉아 있을 필요는 없는데 약간의 습관인 거 같다는 것이다. (그 변론도 결혼하고 10년이 넘는 동안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는 것으로 수없는 다툼을 거친 후에야 털어놓은 속내였다.)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그곳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나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혼 이후 가장 잦은 부부 싸움 중 하나가 바로 화장실 문제였다.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는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늘 빨리 나오지 않는 남편 때문에 자주 다투었다. 목욕탕을 사용해야 하는 데 변기에 버티고 앉았으니 늘 다툴 수밖에. 한 시간여 동안 변기를 붙들고 있다 나온 목욕탕은 다음 사람이 사용하기에 그리 상쾌한 분위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핸드폰이 없을 때는 남편은 신문을 들고 들어가서 화장실에서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앉아 있다 나왔다. 그래서 몇 번의 부부 싸움 끝에 나는 신문 구독을 포기했다. 그런데 모바일이 나오면서는 그것을 붙들고 들어가 그날의 뉴스를 모두 보고서야 나왔다. 이젠 남편은 사실상 거의 포기 상태라고 봐야 한다. 이미 치질 수술을 한 터이고 자신의 상태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라 잔소리도 의미가 없어 보여서이다.
제발 아들은 저런 생리적 문제는 닮지 않기를 바랐건만 어느 순간 아들도 아빠와 같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 조만간 아들도 수술대 위에 거꾸로 누운 치욕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리라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순간 소리를 냅다 질렀다. 아들도 남편과 같은 전철을 밟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하니 정말 억울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닮다 닮다 이제는 거기까지도 닮았단 말이던가!!! 씨도둑은 못한다더니 아들은 절대 닮지 말았으면 하는 남편의 '치명적?' 단점을 닮았다. 그래도 어쩌랴. 이제 조만간 아들을 데리고 치질 수술을 하러 가야 할지도 모르니 잘 하는 병원을 알아두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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