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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선호가 Jul 17. 2020

[5]머스크의 테슬라

칼럼 카피 / 매일경제 / 장종희 논설위원/ 20200715

7월 들어 미국 전기차 테슬라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일본 도요타를 제치고 차업계 시가총액 1위에 올라 최고가 행진중인데 생산량 이익 등 실적에선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증시 스타여서겠지만 테슬라를 전기차로만 인식하는 경향도 짙다. 국내에선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에 가려 더 뛰어난 발명가였던 니콜라 테슬라를 모르는 이가 적잖다. 에디슨이 '99%의 노력'을 강조한 노력파였다면 테슬라는 '발명 DNA'를 타고난 천재였다. 


옃 해 전 영화 '커런트 원'엔 테슬라와 에디슨 간 갈등의 일단이 엿보인다. 테슬라는 전기 축음기 영사기 등을 만든 에디슨이 생각하지 못했던 무선통신 형광등 레이더 라디오 등을 고안했다. 교류 전기의 가능성을 확신한 그는 직류를 고집하던 에디슨 밑에서 일하다 마찰 끝에 결별했다. 이후 조지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전류 표준을 두고 에디슨과 싸워 승리했다. '커런트 워'에선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의 술수와 암투를 부각하느라 테슬라에 초점을 맞추지 않은 게 아쉬운 대목이다. 


 테슬라에겐 맞다 싶으면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 기질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 물정엔 어두워 독특한 아이디어를 쉽사리 노출했다가 뺏기거나 사기를 당하곤 했다. 현실적이고 계산에 치밀했던 에디슨이 1500여 개 특허를 거머쥐고 사업을 키운 것과 대조적이다. 테슬라는 결국 뉴욕 맨해튼의 한 호텔에서 빚더미를 안고 홀로 세상을 떠났다. 일론 머스크가 전기차 이름을 '비운의 발명가' 테슬라에게서 딴 건 그의 기질도 다분히 테슬라와 맞닿은 게 아닐까 싶다. 


다만 민간 우주여행 시대를 열어 젖히 집념을 보면 현실의 머스크는 에디슨 이상으로 사업가 본능이 강한 듯 하다. 머스크의 테슬라는 증시에선 각광을 받지만 국내 전기차 소비자 일부에게선 자율주행시스템 오류와 품질 하자 등으로 불만도 사고 있다. 잊혔던 테슬라가 머스크로 인해 재조명받는 게 흐뭇하면서도 사업에 이용당하는 불행의 반복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에디슨 그늘에 가린 빛나는 천재, 테슬라 


미국의 주간지 ‘라이프 매거진’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의 한 사람으로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를 꼽았다. 이보다 앞서 2005년 말 크로아티아는 테슬라 탄생 150주년을 맞아 2006년을 ‘니콜라 테슬라의 해’로 정했고, 세르비아는 2006년 3월 베오그라드 국제공항이름을 ‘테슬라 공항’으로 바꿨다.

테슬라를 두고 미국, 크로아티아, 세르비아가 서로 자기 나라의 발명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856년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세르비아인으로 젊은 시절 미국으로 이민 간 테슬라의 특이한 이력 때문이다. 과학자 테슬라, 그가 어떤 사람이기에 세계가 이렇게 새롭게 주목을 하는 것일까?

테슬라는 현대 전기문명을 완성한 천재 과학자다. 현대 전기 문명의 근간이 되는 교류를 발명했으며, 수많은 전기 실험으로 ‘거의 모든 현대기술의 원조’라는 칭호를 갖고 있다. 시대를 앞선 과학적 통찰력과 독특한 삶 덕분에 많은 문학과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의 업적을 대표하는 교류발전기와 송 · 배전 시스템은 웨스팅하우스사(社)에서 일하면서 만들어냈다. 교류는 전기가 흐르는 방향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전기다. 직류에 비해 적은 손실로 전류를 보낼 수 있는 장점이 있어 현대 전기 문명을 일으킨 원천기술이다. 이 발명은 1895년 웨스팅하우스사가 나이아가라 폭포에 교류발전기를 사용한 수력발전소를 만들면서 빛을 보게 된다. 지금 보고 있는 컴퓨터, 인터넷은 등 수많은 전기문명이 테슬라의 교류 전기시스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1891년에는 유명한 테슬라코일(Tesla Coil)을 제작했다. 테슬라코일은 간단한 장치로 수십만 볼트의 전압을 만들어내는 장치다. 당시 60Hz에 불과했던 가정용 전기를 수천Hz의 고주파로 바꾸며 엄청난 고전압을 발생시킨 것이다. 이를 사용해 테슬라는 최초의 형광등과 네온등도 만들었다.

고주파를 발생시키는 테슬라코일은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심지어 테슬라코일을 이용하면 물체에 자기장을 걸어 순간이동 시킬 수 있다는 황당한 이론까지 나올 정도였다. 지난해 말 개봉한 ‘프레스티지’(Prestige) 영화를 보면 마술사 로버트가 순간이동마술을 펼치기 위해 테슬라를 찾아가 테슬라코일을 얻는 장면이 나온다. 테슬라코일의 유명세와 신비주의를 따르는 추종자 덕분에 테슬라는 ‘몽상가’, ‘미친 과학자’, ‘마술가’ 등의 호칭도 갖고 있다.

또 테슬라는 한 발 앞선 발명가로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을 알려 줬다. 그가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후대 과학자들이 테슬라의 이론으로 만들어낸 기기들은 무궁무진하다. 그는 테슬라코일을 이용한 실험 도중 라디오 신호를 같은 진동수로 공명시키면 송수신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원리는 현재 라디오나 TV 등에 응용돼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무선조종장치를 연구하던 테슬라는 현대 로봇의 가능성도 언급했다. 제 1차 세계대전 무렵 잠수함을 탐지하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2차 대전에서 레이더로 실용화됐다.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들은 그의 발명노트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하고 있다.

테슬라의 발명을 헤아리자면 끝이 없다. 그는 전기기계용 전류전환장치, 발전기용 조절기, 무선통신기술, 고주파기술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전기시스템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그리고 전자현미경, 수력발전소, 형광등, 라디오, 무선조종보트, 자동차 속도계, 최초의 X선 사진, 레이더 등도 그의 작품이다.

많은 발명품을 만들고 현대 과학기술을 예견하고 아이디어를 준 테슬라는 그의 업적만큼 살았을 때 인정받지 못했다. 특히 라이벌이었던 에디슨 때문에 그의 업적은 많이 가려졌다. 1882년 테슬라가 에디슨 연구소에 들어가 발전기와 전동기를 연구할 때부터 에디슨은 천재적인 테슬라의 재능을 질투에 불타는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애초 에디슨은 테슬라에게 전기를 싼값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하면 거액을 안겨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테슬라는 에디슨의 직류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며 교류시스템을 만들었다. 하지만 에디슨은 테슬라에게 돈을 주기로 한 약속을 어겼고, 테슬라는 에디슨에게 사표를 던진다.

직류방식을 고집한 에디슨은 테슬라의 교류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고압 교류로 동물을 죽이는 공개 실험을 하고, 교류 전기의자로 사형집행을 했다. 이 과정에서 테슬라는 교류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자신의 특허권을 포기하기도 했다. 1915년 뉴욕타임즈에 테슬라와 에디슨이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기사가 났지만 결국 둘 다 노벨상을 받지 못했는데, 테슬라가 에디슨과 함께 상 받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기이한 삶처럼 그의 성격도 특이했다. 식사 전 광택이 나도록 스푼을 닦아야 하는 결벽증이 있었고, 손수건은 하얀 비단으로 된 것만 썼다. 호텔방의 호실은 3의 배수여야만 했고, 비둘기에 집착해 말년 그의 호텔방에는 비둘기 새장이 가득했다고 한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발명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테슬라는 1943년 뉴욕의 한 호텔에서 쓸쓸히 숨을 거뒀다.

그러나 세상은 시대를 앞서갔던 테슬라를 잊지 않았다. 1961년 국제순수 및 응용물리학 연맹(IUPAP)의 표준단위 및 그 정의에 관한 위원회는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테슬라의 이름을 딴 T(Tesla)1)를 쓰기로 했다. 전기를 이용한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었던 테슬라의 이름에 걸맞는 단위라 하겠다. 이를 통해 테슬라의 이름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살아나게 되길 기대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디슨 그늘에 가린 빛나는 천재, 테슬라 (KISTI의 과학향기 칼럼)



웨스팅하우스일렉트릭 [ Westinghouse Electric Company ]미국 종합전기기기 제조회사.            


1886년 에어브레이크 등의 발명가였던 조지 웨스팅하우스(George Westinghouse:1846∼1914)가 교류전기 시스템을 구축하고 판매하기 위하여 웨스팅하우스일렉트릭컴퍼니(Westinghouse Electric Company)라는 이름으로 설립하였다. 1945년부터는 회사 이름의 컴퍼니를 코퍼레이션(Corporation)으로 바꾸었다.
당시 미국에 사용되던 직류보다 건강과 안전에 더 큰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람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면서도 전기의 생산으로부터 이용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관여하면서 번영하였다.
1907년에는 파산의 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하면서 조지 웨스팅하우스가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후 전기의 생산, 송전, 배전, 제어 등에 사용되는 일체의 기기 및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전기산업의 주요 공급업체가 되었으나 가전제품의 판매에서는 줄곧 제너럴일렉트릭(General Electric Company)에 뒤짐으로써 1975년부터는 그 시장에서의 경쟁을 중단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상업용 원자로의 대표적인 제조업체가 되었으며 또한 미해군 잠수함용 원자로를 생산하였다. 군용기, 잠수함, 군수품에 사용되는 레이더 및 기타 전자 장치들도 생산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방송국도 인수하였다. 그리고 방송국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1995년에는 미국의 주요 방송망인 CBS(Culumbia Brodcasting System)를 매입하였다.

이듬해에는 방위산업용 전자 부문을 노스럽그러먼(Northrop Grumman
Corporation)에 매각하고, 인피니티방송(Infinity Broadcasting Corporation)을 매입하여 CBS(CBS Corporation)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원자력발전 부문은 1999년 영국의 핵연료 회사인 BNFL(British Nuclear Fuels)에 매각되어 BNFL의 통제를 받고 있다.
CBS의 본사는 뉴욕주 뉴욕에, 웨스팅하우스일렉트릭의 본사는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웨스팅하우스일렉트릭 [Westinghouse Electric Company] (두산백과)



영화 ' 커런트 워'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40656




GE에 몸을 담았던 사람으로서 에디슨의 사업 이전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나의 관심을 끌었다. 칼럼에 소개된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에 대해 자료를 찾으면서 세계적 기업이라고 각광 받았던 GE의 가려진 속살을 들여다 본 듯 하다. 


웨이팅을 해서라도 테슬라 차를 한 번 타고 싶었는데 아직은 시기상조가 아닐까? 


아래 질문은 작가 송숙희씨의 칼럼베껴쓰기 책에서  가져왔다. 칼럼을 바라보는 시각이 아직 미숙하여 답변도 무척이나 짧고 옹색하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조금 더 깊은 사고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1. 이 글은 무엇에 대해 쓴 글인가? 

전기차 테슬라와 발명와 테슬라

2. 이슈가 된 사안은? 

연일 테슬라의 주가가 고공행진 중이다. 그런데 실상 테슬라의 실적을 보면 의문 투성이다. 과연 주식시장에 반영되고 있는 테슬라의 주가는 의미로운 것일까? 

3. 시안을 바라보는 필자의 관점은? 

살아서도 이용당한 테슬라가 죽어서도 이용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4. 칼럼 메시지

에디슨에 가려 잊혀졌던 테슬라가 머스크로 인해 재조명 받고는 있지만 여전히 살아서의 그의 운명을 답습하고 있는게 아닐까

5. 메시지에 대한 나의 생각?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는 정말 그 가치를 발하고 있는 것일까? 포장만 요란한게 아닐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속 빈 강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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