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나에겐!
최근 나름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한 작가의 책에서 고전 리스트를 발견했다. 뭐에 꽂혔는지 그 중 칼 융의 <레드북>을 덜컥 구매했다.
나는 이사를 자주 다닌 편이었다. 소장하고 있는 책이 너무 많아 이삿짐 비용으로 책값만 100만 원 넘게 추가 비용을 내곤 했다. 어느 날 문득 '이 책들을 나중에 다시 보게 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꼭 보관하고 싶은 책만 남겨두고, 읽고 싶은 책은 전자책이나 도석관 책을 이용한다.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기존의 책을 처분하는 방식으로 책을 량을 조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런 원칙 아닌 원칙을 고수하던 내가 그날은 뭐에 꽂혔던 건지....
<레드북>은 정말 빨간책이다. 빨간 표지와 함께 두께감도 일반책의 두 배에 가깝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 그 빨간색 때문인지 무척이나 묘한 끌림이 있는 책이었다. 책이 오자마자 마음을 다잡고 읽기 시작했다.
아...
눈으로 글을 따라가고 있는데 머릿속은 계속 하얘진다. 분명히 나는 집중해서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글의 내용이 무슨 의미인지, 도대체 작가가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당체 알아먹을 수가 없다.
'이거 읽으라고 쓴 책 맞지? 책꽂이 장식용인가? 이거 다 읽은 사람이 많을까? 번역가는 정말 이걸 이해하고 번역을 했을까?'
순간 번역가가 정말 존경스러워졌다. 그리고 완독자가 대단해 보였다. 칼 융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다 읽지 않았을까? 정말 대단들 하다. 나의 전공 서적이 아니었음에 감사하고 싶어진다.
<레드북>을 그래도 읽어보겠다고 붙잡고 있었던 시간은 오늘까지 꼬박 일주일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도 비싸게 주고 산 책이니 조금이라도 읽어보자는 생각에 며칠을 노력했다. 오늘은 어디 카페에 앉아서 집중하면 분위기상 더 잘 읽어지지 않을까 싶어 <레드북>만 들고 카페에 갔다. 가끔 한 문장 정도씩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여전히 전체적인 내용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오기를 부리고 이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시간에 더 재미나고 즐거운 책을 읽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집에 와서 과감히 나는 <레드북>을 알라딘 중고책 판매사이트에 업로드했다.
이미 올라와 있는 책들보다 더 저렴하게!
나보다 더 <레드북>을 아껴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주인에게로 하루라도 빨리 보내주기 위해!
분명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눈에서 붉은 기운을 빨리 가시게 하기 위해 사놓았던 다른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우연인가! 이 작가 또한 나와 같은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읽으라고 쓴 책이 아닌 책'에 대한 이야기!
<존재와 시간>
물론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 사실 이 책을 그전에는 전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작가가 언급한 책의 무게는 어쩌면 나의 <레드북>의 무게 보다 더 무거워 보였다. 그래서인지 <레드북>의 무게로 짓눌려있던 나의 마음 한 구석이 물 위로 부상하듯 가벼워졌다.
'읽으라고 쓴 책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되는 책'을 경험한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동질감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읽으라고 쓴 책' <모든 요일의 기록>을 열심히 읽는 중이다.
저의 푸념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부족하여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레드북>을 재미나게 읽으신 분이 이 글을 읽으셨다면, 책에 대한 깊이가 부족한 이가 쓴 푸념이겠거려니 생각하시고 넓은 아량으로 깊은 이해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