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기술 _ 풍경

알랭드보통의 여행 에세이3

by 진심발자욱

시골과 도시에 대하여

장소 : 레이크디스트릭트

안내자 : 윌리엄 워즈워스


우리가 도시에 살면서 가끔 시골을 가고 싶어지는 이유가 뭘까? 왜 나는 가끔 시골을 동경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주말에는 시골에 갔다와야 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걸까? 나만 그런 걸까? 이런 의구심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부분이다. 책을 읽어 가면서 드보통의 시각적 묘사에 감동하게 되고 그와 같은 묘사를 흉내내고 싶어지는 문구들이 자꾸만 보인다. 여행의 기술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마치 여러곳을 함께 여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니 기술이겠지.


남웨일스몬머스셔틴턴수도원%282%29.jpg 워즈워스가 부제를 달기도 했던 틴턴사원


우리는 영국의 등뼈를 따라 위로 올라갔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시골의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니자나 차창은 길고 검은 거울로 변하여, 우리는 창문에서 우리 자신의 얼굴밖에 볼 수 없었다. 179


아주 단순한 문장일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도 많이 묘사하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드보통의 글에서 어두워지는 기차 안의 창을 묘사하는 이 문장에서 밑줄을 치지 않을 수 없었고 어둠에 대한 묘사를 꼭 한번쯤으 이렇게 따라 써 보고 싶었다. .... 우리는 칭문에서 우리 자신의 얼굴밖에 볼 수 없었다.


열차 안의 승객들은 졸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그들에게 레이크디스트릭트는 수많은 정거장 주 하나일 뿐이었다. 책을 읽다가 잠시 고개를 들어 플랫폼을 따라 대칭으로 배열된 콘크리트 화분들을 보고, 역의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간혹 거리낌 없이 하품을 하고, 이어 글래스고행 열차가 다시 어둠 속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읽던 책의 새로운 문단으로 고개를 돌리는 곳. 180


기차 여행을 하다보면 흔히 반복해서 보게 되는 장면이다. 다음 이런 묘사를 해야 하는 대목이 있다면 꼭 이렇게 써보고 싶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찰나를 이렇게 맛깔스럽게 그리고 깔끔하게 써내려간 그의 문장이 탐이 난다. 여행의 기술을 읽으면서 글쓰기의 기술도 배운다.


한때 그렇게 빛나던 광채가
지금 내 눈에서 영원히 사라진들 어떠랴.
풀의 광휘의 시간, 꽃의 영광의 시간을
다시 불러오지 못한들 어떠랴.
우리는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라.

<영생불멸의 노래 Ode, Intimations of Immortality>


시인은 도시가 생명을 파괴하는 여러 감정을 만들어낸다고 비난했다. 사회 위계에서 우리의 지위에 대한 불안, 다른 사람들의 성공에 대한 질투, 낯선 사람들의 눈앞에서 빛을 발하고 싶은 욕망. 워즈워스의 주장에 따르면, 도시 거주자들은 뚜렷한 관점이 없기 때문에 거리나 저녁 식탁에서 이야기 되는 것에 귀를 곤두세운다고 한다. 그들은 먹고살기가 편해도 자신에게 진정으로 부족하지도 않고 또 자신의 행복을 좌우하지도 않는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이런 혼잡하고 불안한 곳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진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어려워 보였다. 고립된 농가에 사는 것이 오히려 유리했다. 190


워즈워스가 지적한 도시인들의 삶. 그 속에 내가 있다. 도시가 나의 생명을 파괴하는 여러 감정을 만들어내고 있다. 내가 가지는 심리적 불안이 어쩌면 이 도시로 인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도시를 떠난다면 조금은 해방감을 맛볼 수 있을까?


"이 수많은 풍경들이 내 마음 앞에서 둥둥 떠다니는 지금 이 순간. 내 평생 단 하루도 이 이미지들로부터 행복을 얻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큰 기쁨이 밀려온다. "

이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수십년 뒤에도 알프스는 계속 워즈워스 안에서 살아남아, 기억속에서 그곳을 불러낼 때마다 그의 영혼은 힘을 얻었다. 이렇게 알프스가 그의 기억 속에 계속 살아남게 되자 워즈워스는 자연 속의 어떤 장면들은 우리와 함께 평생 지속되며, 그 장면이 우리의 의식을 찾아올 때마다 현재의 어려움과 반대되는 그 모습에서 우리는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연 속의 이러한 경험을 "시간의 점"이라고 불렀다.210


우리의 삶에는 시간의 점이 있다.

이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점에는

재생의 힘이 있어.....

이 힘으로 우리를 파고들어

우리가 높이 있을 때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하며

떨어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내 기억 속에는 어떤 시간의 점들이 있을까? 가까운 것으로는 방콕의 차오프라야 강변에서 바라봤던 저녁 노을이지 않을까? 그리고 춘천 중도를 바라보는 풍경... 이런 소소한 기억들이 시간의 점이 되어 우리 기억속에 자리를 잡고 이런 자연의 기억들이 우리가 어려움과 맞닿았을 때 반대되는 그 모습에서 우리는 해방감을 맛보게 되는 것이리라....


도시의 "떠들썩한 세상"의 차량들 한가운데서 마음이 헛헛해지거나 수심에 잠기게 될 때, 우리 역시 자연을 여행할 때 만났던 이미지들, 냇가의 나무들이나 호숫가에 펼쳐진 수선화들에 의지하며, 그 덕분에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의 힘들을 약간은 무디게 할 수 있다. 2000년 9월 14~18일, 레이크디스트릭트를 여행하고 나서213


자연속에서 시간의 점을 찾았다면 이렇게 정확한 순간과 장소를 기록해보고 싶어진다. 워즈워스가 자신의 시에 부제를 달듯이 드보통이 그 부제를 흉내내 보듯이 나도 그 흉내를 내어보고 싶다. 멋지지 않는가!!!




숭고함에 대하여

장소: 시나이 사막

안내자: 에드먼드 버크, 욥


Phillip_James_De_Loutherbourg_-_An_Avalanche_in_the_Alps_-_Google_Art_Project.jpg <알프스의 눈사태> 필립 제임스 드 루테르부르 1803


내가 차지하고 있는 작은 공간을.... 생각해본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또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한히 광대한 공간들이 이 작은 공간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생각을 하면 내가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다는 것이 무섭고 놀랍다. 나는 저기가 아닌 여기에 있을 이유도 없고, 다른 때가 아닌 지금 있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여기에 갖다 놓았는가? <팡세> 단장68.

워즈워스는 우리 영혼에 유익한 감정들을 느끼기 위해 풍경 속을 돌아다녀보라고 권했다. 나는 작아진 느낌을 얻기 위해 사막으로 출발했다. 217


사춘기의 문턱에 들어서려고 하는 아들이 가끔 내게 넋두리처럼 하던 말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도 그만할 때 이런 고민으로 날밤을 새웠던 생각이 든다. ㅋㅋㅋ

그의 글을 읽다 보니 나도 사막에 가고 싶어졌다. 작아진 느낌을 얻고 싶다. 사막에 대한 그의 표현.... 숭고 sublime. 왠지 나도 사막에 선다면 숭고하다는 표현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그곳에 가면 적절한 한 단어로 표현하기 쉽지 않을 것만 같다. 숭고하다는 말 이외에는....


런데 왜 기쁨일까? 왜 이런 작아지는 느낌을 찾게 될까? 그 리고 심지어 그 안에서 기쁨을 찾을까? ......그래서 바위와 정적만 있는 곳에 이르러, 도망자처럼 거대한 바위 밑의 빈약한 그늘에서 해를 피해야 할까? 화강암 바닥, 뜨겁게 달구어진 자갈이 깔린 분지, 용암이 굳어버린 것 같은 산맥이 가없이 뻗어나가다 산정들이 강렬한 파란색 하늘의 가장자리에서 스러지는 것을 바라보며 왜 절망이 아니라 환희를 느낄까?

한 가지 대답은 우리보다 강한 것이 모두 우리의 미움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의 의지에 도전하는 것은 분노와 원한을 자극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경외와 존경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것은 그 장애물의 도전이 고귀하냐 아니면 너저분하고 무례하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안개에 싸인 산의 도전은 존종하지만, 건방진 문지기의 도전은 용납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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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막에 있지 않을 때도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우리 자신의 결함을 보고 스스로 작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굴욕은 인간 세계에서는 항상 마주칠 수 있는 위험이다. 우리의 의지가 도전받고 우리의 소망이 좌절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따라서 숭고한 풍경은 우리를 우리의 못남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익숙한 못남을 새롭고 좀 더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해준다. 이것이야말로 숭고한 풍경이 가지는 매력의 핵심이다.

숭고한 장소는 일상생활이 보통 가혹하게 가르치는 교훈을 웅장한 용어로 되풀이한다. 우주는 우리보다 강하다는 것, 우리는 연약하고, 한시적이고, 우리 의지의 한게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우리 자신보다 더 큰 필연성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는것.

이것이 사막의 돌과 남극의 얼음벌판에 쓰인 교훈이다. 이 교훈은 아주 웅장하게 쓰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장소에서 우리를 초월한 것에 짓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그러한 장대한 필연성에 복종하는 특권을 누리고 돌아올 수 있다. 경외감은 어느새 숭배하고 싶은 욕망으로 바뀌어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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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세상이 불공정하거나 우리의 이해를 넘어설 때, 숭고한 장소들은 일이 그렇게 풀리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바다를 놓고 산을 깍은 힘들의 장난감이다. 숭고한 장소들은 우리를 부드럽게 다독여 한계를 인정하게 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한계에 부딪힐 때 불안과 분노를 느끼겠지만.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은 자연만이 아니다.

인간의 삶도 똑같이 압도적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훌륭한 태도로, 가장 예의를 갖추어 우리를 넘어서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은 아마 자연의 광대한 공간일 것이다. 그런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 삶을 힘겹게 만드는 사건들, 필연적으로 우리를 먼지로 돌려보낼 그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243


장대한 필연성에 복종하는 특권을 누려보고 싶다. 경외감이 어느 새 숭배하고 싶은 욕망으로 바뀌는 그런 곳을 찾아가 보고 싶다. 사막이 될 수도 알프스가 될 수도 오로라를 보러 가서 일수도 .... 아니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Albert_Bierstadt_-_The_Rocky_Mountains,_Lander's_Peak.jpg <로키산맥, 랜더스 봉우리> 알베르트 비어슈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