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황장애 힙스터(hipster)다

마음생태 복원기(3), 완벽주의라는 가시 속에 웅크린 고슴도치

by 성낙필

나는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다.

오히려 나만의 독특한 문화를 추구하며

결과적으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내는···.


아마도 당신은 직관적으로 ‘또라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것이다.


No. 요즘엔 힙스터(hipster)란 고급진

이름이 있다~^^.


최근 들어 ‘공황장애’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정치인부터 시작해서 유명한 연예인들이

그 병과 증상을 대중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난 힙스터로서 2002 월드컵 때

선구적으로 그 질병과 첫 만남을 하였고

현재까지 24년간 동거하고 있다.


하지만,

작년에 있었던 특별한 사유와 경험을 통해

이제 그와의 이혼 해법을 찾아가고 있다.


그중에 가장 큰 모멘텀은

나의 성격이나 성향에 대한 이해이고

그 뿌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지인들은 때때로 나를 두고

예민하다,

책임감이 지나치다,

생각이 너무 많다고 말한다.


나는 크게 부정하지 않는다.


실수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
관계를 지나치게 신경 쓰는 사람,
모든 가능성을 미리 계산하는 사람.



나는 그런 말들에 크게 반박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 자신도

내가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그 완벽함이라는 단어가

내 삶의 결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혼 때, 나는 달동네에 살았다.


거의 매일 밤 12시가 넘어 퇴근했고,

골목은 늘 차들로 가득했다.


보통의 사람들은

남의 집 앞이든 옆이든 가장 가까운 자리에

차를 욱여넣고

“잠깐인데 뭐”하고 올라갔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 자리가 정말 공용 공간이었는지,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와는 상관없이,

집주인 입장에서는

‘자기 자리’라고 느낄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미 그곳을 지나쳤다.


대신, 그 늦은 시간에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 곳에 차를 세우고

20~30분을 걸어 언덕을 올랐다.


눈은 썰어놓은 마늘처럼 감겨오고,

몸은 익은 파처럼 늘어졌지만

억울하지는 않았다.


갈등이 생기지 않는 선택이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길이었으니까.



하지만

내 잘못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 시비를 걸어오면

나는 그걸 참지 못했다.


이해하려고 애쓰지도 못했고,

용서라는 말도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내가 조금 피곤하더라도

할 도리를 다하는 건 용서가 되지만,

억울해지는 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존재가 있었다.

고슴도치였다.


30년 넘게 전국의 자연을 눈으로 보며 알고

아는 만큼 이해하려는 직업으로 살아왔지만

현장에서 고슴도치를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만난

고슴도치는 싸움을 원하지 않는다.


가능한 만큼 몸을 둥글게 말고

세상과의 마찰을 최소화한 채 살아간다.


가시를 세우지 않기 위해
먼저 웅크리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물러설 곳이 없을 때,

더 이상 도망칠 공간이 사라졌을 때,


그때 고슴도치는

망설임 없이 가시를 세운다.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



그것은 상대를 찌르기 위한 공격이 아니라,

“제발 더는 다가오지 마세요.”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처절한 방어벽이다.

갈등으로부터 내 마음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나는 매일 밤 가시를 갈고 닦았던 것이다.


그렇게 이해해 보면
나는 그저 단순한 ‘완벽주의자’가 아니었다.


갈등의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먼저 나를 접어온 고슴도치였다.


설명해야 할 상황,

오해받을 가능성,

억울해질 수 있는 순간을

사전에 차단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늘 한 발 먼저 물러났고,

그래서 늘 ‘괜찮은 사람’으로 남았고,


그래서 결국

내 마음의 공간은 점점 좁아졌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완벽주의는 고장이 아니었다.

성격의 결함도 아니었다.


오래 살아남기 위해 몸에 밴

나만의 생존 방식이었다.


그리고 생존 방식은 상황이 바뀌면

조금 달라져도 된다.


요즘 나는

이제 내 안의 고슴도치를 탓하는 대신,

팽팽해진 그의 등을

가만히 쓸어내려 주기로 했다.


애썼다.
네가 날카로웠던 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평화롭게 살고 싶어서였지.

.


웅크리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는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어 보려 한다.




하루를 마치며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 나는 가시를 세우지 않고도

살아냈다는 것을.


조금 늦게 답했고,
조금 덜 설명했고,
조금 더 나를 남겨두었다.


고슴도치는 늘 웅크린 채로만 사는 동물이 아니다.


위험이 지나간 숲에서는

가시를 숨긴 채 천천히 걸어 나올 줄도 안다.


나도 이제 그걸 배우는 중이다.



가시를 숨긴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조심스럽게 인정하면서.


이런 것들이

24년간 공황 동거와의 헤어질 결심이다.


오늘도 나는 완벽해지지 않았고,
어쩌면 그래서 무난히 하루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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