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생태학, 사람이 무서울 때

마음생태 복원기(8) : 산 귀에는 거미줄 치더라

by 성낙필

[부제] 산 귀에는 거미줄 치더라



오늘 아침의 출근 시간

늘 보던 지하철 풍경이 여지없다.


우리의 지하철 동지들은 대부분

휴대폰에 인사하고 있다.


휴대폰 없이 일주일 살아볼래?

아니면 커피 끊고 일주일 살아볼래?

이렇게 질문하면


대부분 커피를 포기한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나는 직업상

1년에 최소한 20일 정도는 휴대폰 감옥에서

쫓겨나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일반 등산객의 발걸음을 용납지 않는 높은 산,

민통선과 같은 통신단절 지역에서

생태계 조사를 하는 시기이다.


대부분 홀로 그 침묵의 감격을 즐겼고

때로는 칠점사(까치살모사), 장수말벌,

내 얼굴보다 큰 말굽버섯과도 함께했다.


이런 내 직업을

아이돌 바라보듯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의 하나는


“혼자 다니면 안 무섭니?”


나는 단호히 말한다.


“무서운 것? 있지! 있어!.”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야.”


“아마도 그런 깊은 숲에서 사람을 만나면

서로 놀라 성형수술로도 불가능한

눈 크기가 될 거야.”




20여 년 전

조카딸이 울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작은 아빠, 학교에서 선생님이

‘그림자놀이’를 하자고 하면서

오늘부터 ○○는 그림자다.”


그게 내 조카딸이었던 거다.


한때(?) 유행했던 ‘왕따’를

선생이 시연한 것이다.


나도 그 왕따가 된 적이 있었다.


각설하고,

내가 이직한 회사의 경력 1년 차 후배가

‘텃새 놀이’, ‘기득권 지킴이’라는 명목으로

후배들을 선동하고 점심값을 살포하면서

나를 점심시간에 그림자로 처리한 것이었다.


나는 그때

점심시간의 서식지를 회사 근처 헬스클럽으로

이전했다.


운동 먼저하고

혼밥을 한 달 정도 먹었다.




아마도 그는

내가 무너지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더 건강해졌고, 밝아졌다.


결국 공동 서식지를 먼저 떠난 사람은 그였다.


내가 처음 이직했을 때

형, 형을 반복하며

둘도 없는 반려견처럼 나를 따르던 그였기에


그 상처는 내게도 컸고,

아마도 그 사건은 내가

‘사람’을 무서워하게 된

여러 계기 중의 하나일 거다.


또 외부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말’들은

왕따 놀이의 정점으로 나를 밀어붙였다.


그가 사표를 던질 때

내 팔에서 웃고 있는 알통과 달리

내 안에 통쾌함이란 전혀 없었고,


그가 왜 그랬을까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 해답을

오로지 내게서 찾으려 마음고생하고 있다.




멀리서 숲을 바라보던,

등산로를 따라 트래킹을 하던

숲은 언제나 침묵하듯 보인다.


하지만 숲은

빛 한 줄기, 토양의 물 한 모금,

뿌리의 공간을 두고

또 숲의 주인 자리를 두고


소리 없는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 경쟁에는


뒷말이 없다.
질투가 없다.
모략이 없다.



환경이 허락하면 자라고,

허락하지 않으면 물러난다.


그 결과는

감정이 아니라 조건이 만든다.


숲에서 만나는

오색딱다구리와 동고비는

같은 먹이를 두고 경쟁한다.


하지만 오색딱다구리는

나무의 아래에서 위로 오르며

나무를 두드리고

동고비는 앉을 때부터 위에서 아래를 향해

먹이를 찾아 내려간다.


이들에게 왕따는 없고,

서로를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자연은

그 법칙을 소리쳐 알리지 않는다.


그저 시간 속에서

결과를 드러낼 뿐이다.


아래로 향하는 동고비, 위로 향하는 오색딱다구리



사실 3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근래에도

‘사람’은 무서웠다.


내가 속한 조직 내에서도

그 지긋지긋한 공감 능력 제로의 사람들,
열정이란 1도 없이
‘Ctrl+C, V’만 반복하는 직원들,
그런가 하면 나름의 ‘욕망’으로 가득한 이들은


내 머리에 혼돈을 주고

속 터지는 답답함을 주고

다시 숲으로 떠나고 싶은 에너지를 돋구어

스스로를 무섭게 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생태계에서 배운 자연의 지혜를 통해

조금씩 방법과 방향을 달리해 가고 있다.




소리 없는 전쟁의 숲에

‘이해’라는 게 있을까?


빛을 먹이로 하는 식물들이

안정된 숲에서 체계적이고 다양한

식물사회를 이루고,


나무 속 벌레를 먹이로 하는

동박새와 오색딱다구리가

위, 아래의 층위를 달리해서

먹이를 찾아가는 것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서만 가능한 것일까?


모든 갈등을

이해로만 풀어갈 수 있다면

갈등 없는 사회는,


고승들이 모인 선원(禪院) 혹은

수도자들이 모인 수도원에서나 가능할까?


같은 자리를 두고

같은 방식으로 서 있으려 하면

어느 한쪽은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말로 이기려 하기보다

자리를 달리하는 선택도

하나의 생태적 전략일 수 있다.


내가 점심시간마다

헬스장으로 향했던 것은 도망이 아니라

서식지 이동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왕따 시키려는 그를

왕따 시키려 했던 그를

굳이 내 안에서 이해하려 하는 것은

최소한 ‘나’ 자신에겐 사치이고

자학일지도 모른다.



파리와 모기도

사람에게는 성가신 존재지만

생태계에서는 분해자이자 먹이 자원이다.


쓸모없는 생명은 없다.



다만

우리의 기준에서만 불편할 뿐이다.


사람도 그렇다.


이해되지 않는 사람을 설득해 바꾸려 하기보다
그가 그 자리에 존재하는 이유를
그대로 두는 것.



그것이 더 건강한 선택일 수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습관

이것은 무시가 아니라 '개체 인정'이다.






우리는 흔히

산 입에 거미줄 안 친다는 말을 가끔 한다.


그런데 나는

산 귀에는 거미줄 친다는 걸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아주 옛날(?)

웨딩촬영을 몇 시간 앞둔 초여름 저녁.


한옥 마루에 누워 있다가

내 귓속을 서성이는 낯선 소리에 놀라

참기름과 후레쉬를 총동원한 후에

결국 응급실에서 채굴한 그 녀석이 바로 거미였다.


나는 최근

침묵을 패배로 생각하지 않는다.


침묵은
뒤로 딴생각을 품는 시간이 아니라,
조건을 읽는 시간이다.



그 침묵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귀로도 해야 가능하다.


단, 거미줄을 쳐야 한다.

그래야 ‘무시’가 되지 않고

‘공감’을 놓치지 않는다.


숲은

억지로 여름을 붙잡지 않는다.


가을이 오면 색을 바꾸고,

겨울이 오면 잎을 놓는다.


나는 사람 사이에서도

그 리듬을 배우고 있다.


모든 말을 다 하지 않고,

모든 감정을 다 설명하지 않고,

시간이 조건을 바꾸도록 기다리는 것.


그렇게 살아보니

내가 누굴 왕따 시키지도 않고

누가 나를 왕따 시켜도 ‘인정’이라는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된다.


깊은 산에서

내가 무서워한 것은 뱀도, 벌도 아니라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람도 결국

환경 속에 놓인 하나의 존재라는 것을.


그를 이해하지 못해도

그 자리를 인정할 수는 있다.




자연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이기는 법이 아니라

균형을 유지하는 법이었다.


그것이

내가 숲에서 배운

침묵의 생태학이다.


간헐적 침묵~!!!
해보니 참 편하더라.